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몇 년 만에 다시 읽고
이 책이 사랑에 대해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번 독후감은 개인적으로 사랑을 배웠던 혹은 그 개념에 가까이 갔던 에피소드들로 구성해 보았다.
#1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우리 사귀자, 하고 몇 주는 지났을까? 만나고 대화하고 밥을 먹고 즐거웠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그 친구 먼저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내리면서 나에게 '사랑해'라고 말했는데, 그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내 목구멍으로 '나도 사랑해'가 나오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더 닫혔을 그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내가 왜 이러지라고 되묻고는 했다. 결국 나는 그 친구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고, 지금 생각해도 그 친구를 사랑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한 발자국 정도 느끼게 되었다.
#2
소개팅이라는 것이 아직 어색하기만 했던 시기에 두어 살 많은 사람을 만났다. 1차로 간단하게 음식과 술을 마셨고, 2차로 포차 같은 분위기의 술집을 갔다. 즐거웠고, 꽤 잘 통하는 것 같았다. 2차에서 한창 술을 마시며 웃고 있던 찰나 '아, 지금 내 앞에 ㅇㅇㅇ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ㅇㅇㅇ는 굳이 따지면 당시 썸을 타고 있던 친한 동생이었고, 나는 잘 통하고 매우 친한 사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소개팅 상대가 하는 말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냥, 그에게 연락했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었다. 사랑하고 있었던 거였다.
#3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로 이별을 말했다. 헤어진다는 현실보다 그동안의 긴 시간과 그동안의 '앎'이 부정되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것은 그저 내가 만들어낸 그 사람일 뿐이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 가장 아팠다. 내가 사랑하고 있던 사람과 그 사람이 다른 인물임을 깨달았고, 내가 사랑하는 방식과 깊이에 대해 고민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왜 우리는 헤어졌는지' '왜 나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지' '왜 나는 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 끝은 항상 '나는 어떤 사람인지'로 귀결되었다. 내가 원했던 것, 바랐던 것, 착각하고 넘어갔던 일들, 나와 그의 차이.. 사랑이라는 게 끝이 나면 남는 것은 '나'이고, 알게 되는 것도 '나'였다.
작가는 주인공 입을 빌려,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잘 알고 있는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아닌가. 알기 위해서는 수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그 답은 대체 누가 말해주는 것인가? 알면 알수록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사랑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