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관하여
내 생애 최초의 흰머리는 스믈아홉쯤으로 기억한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 있을 때였다.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이유가 뭐든 조금은 우울했다. 오른쪽 옆머리에서 언제 나기 시작했는지 모를 긴 흰머리카락을 발견하고선 미련 없이 뽑았다. 하아...나는 엉망진창인데 나이까지 들었나 싶어 서글퍼지곤 했다. 그 이후로 나기만 하면 가차 없이 뽑아 보이지 않게 했다. 종종 염색을 했는데 그건 흰 머리카락 때문이 아니라 우울한 몸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나면 얼굴이 조금은 밝아 보였으니까.
짝꿍이 미국 유학할 때 우리는 조그만 기숙사 침대에 누워 흰 머리카락을 고르는 것을 즐겼다. 밀린 빨래를 하고 늦은 청소를 한 후, 나른한 방학을 맞이했다. 온 방에 짙은 미국 세제냄새가 진동했다. 무릎을 베고 누운 그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에게 들은 농담으로 ‘개띠’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깔깔 웃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목표란 것이 생겨 흰머리란 흰머리는 모조리 뽑아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그의 머릿속을 다 뒤지곤 했다. 흡사 한 쌍의 원숭이들처럼 그렇게 털을 골랐다. 그러다 흰머리를 뽑지 않게 된 것은 마지막 방학 때일 것이다. 학기 중에 어찌나 시달렸는지 흰머리가 수백 개는 되어 보였다. 이걸 다 뽑다가는 두피가 뽑힐지도 모르겠단 두려움이 생겼다. 나는 다소 아쉬웠다. 그나마 있던 목표가 사라져서랄까.
아주 가끔 한 두 개 나는 흰 머리카락을 스스로 찾아 뽑아내는 것은 남모를 희열이 있었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은 아주 질색하지만. 특히 뒤통수에 길게 난 것을 발견해 뿌리째 뽑는 것, 머리카락은 개 산발이 되었지만 그 기쁨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찌 보면 뒤통수에 난 그것을 발견한 나는 최후의 발견자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그 머리카락을 뽑아주고 싶었겠지만, 혹은 말해주고 싶었겠지만 말 못 했을 수도 있으니깐.(사실 내가 그런 적이 있다)
임신 준비하고, 임신하고, 아이 낳고 모유수유하느라 염색 안 한지가 2년 가까이 되어간다. 내 머리카락은 비로소 자연모가 되었다. 염색 부분도 잘려나가고 파마 기운도 빠지고. 짙은 검정의 반곱슬 머리카락. 여기에 흰머리카락까지. 뽑다 뽑다 최초 흰머리 발견지인 오른쪽 옆머리는 흰색 브릿지를 한 것처럼 새하얗다. 여기 뽑았다간 땜방이 생길까봐 뽑지 못하겠다. 그러다 보니 듬성듬성 삐죽 흰머리가 탈출해있다.
강경화 장관의 백발 이후 나이듦의 상징이라 여겼던 흰머리카락이 다르게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나이듦. 거울 앞에 앉아 이리저리 머리카락을 헤쳐보다 문득 서글픔보다는 늙어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는 생각에 의외로 담담하다. 엄마는 내 나이즈음 외할머니가 흰머리가 난 자신을 보고 속상해하셔서 염색을 시작했다고 했다. 꽃 같은 자식의 나이듦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도 속상해하려나. 물론 앞으로도 우울한 몸을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할 것 같지만, 전처럼 서글플 거 같진 않다. 다행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