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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Feb 26. 2023

출간일지2<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기까지

선생님, 글이 너무 딱딱해요.


담당 편집자님이 제게 한 말이에요. 맞아요. 엄청 딱딱해졌죠. 그도 그럴것이 빡세다는 음악학 (이론)으로 박사과정 중이었고 매주 논리와 검증으로 점철된 발표문 및 소논문 형식의 과제를 쓰고 있던 터였지요. 말하자면 저의 뇌구조를 완전히 바꾸고 있는 중이었으니까요.


거기에 음악치료세션을 기록하는 세션일지 역시 전혀 감성적이지 않아요. 내담자의 상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분석해야 하니까요. 이를테면,


000(**세) 인사 노래를 위해 손을 잡았을 때 평소보다 온기가 없고 거칠다. 왼손 악력은 있으나 그에 비해 오른손은 떨림이 있음. 마라카스를 고르고 노래 박자에 맞춰 연주가 가능했다. 소리는 작고 의욕이 없음. 본인이 선호하는 00곡이 나오자 치료사와 눈맞춤이 가능해졌으며, 가사에서 떠오른 유년 시절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함 …..


이런 식이지요. 인정 합니다. 글이 딱딱해졌다는 걸. 순간 서운하면서 이런 기획출판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었지요. 아, 일단 노력이라도 해보자.



선생님, 너무 남의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편집자님은 이런 지적도 해 주셨어요. 무엇이 문제일까.  

음악치료사는 타인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돕는 직업입니다.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치료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 다시 관찰하여 분석하고를 반복합니다. 끊임없이 들어주고 들어주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일터에서는 나란 존재감을 최대한 지우는거에요.  일명 프로수발러죠.

편집자와 여러 대화를 통해 직업적 숙명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어요. 한편으론 직업에세이라는 이름 뒤에 제가 자꾸 숨으려고 하는 부분도 있음을 알았어요. 결국 내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을 시작하게 된 경위를 밝히려면 결국 내 상처를 다시 해쳐 내보일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결국 다 내려놓게 되네요. 그러고싶진 않았거든요.

마지막에 지나가면서 그러시더군요.


“선생님, 저는 이 정도면 훌륭하다 생각하는데 편집자회의에서 이렇게 의견이 오가고 있어요. 너무 깊은 고민은 하지 마시고 선생님 이야기를 좀 더 친절하게 한다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


그래, 이번 책은 온전히 그들에게 내맡겨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다시 컴퓨터를 켜고 빈문서를 열어 하얀 화면에 나의 이야기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렵진 않았어요. 여러번 몸에 새겨진 저의 이야기니까요. 한편으론 후련했습니다. 그렇게 프롤로그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바로 메일이 왔습니다. 계약서 파일이 첨부된 채로. 그게 2021년 8월이네요.



https://naver.me/54kH7AH4


#음악치료사 #마음을듣고위로를연주합니다 #직업에세이 #일하는사람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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