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여전히 하원길에 모든 꽃들을 어루만져 주고, 풀들과 나무들의 이름을 모조리 불러주곤 한다. 가끔 엄마 모르게 뜯어 혼이 난다. 떨어진 나뭇잎과 꽃만 주우라고 주의를 주면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맞아, 나무가 아프대.” 라고 한다.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수집해 온 나뭇잎과 꽃잎, 버찌, 덜 익은 매실 등을 아파트 현관에 가지런히 놓고 말한다. “반가웠어. 안녕!” 사실 이런 의식은 아이가 하도 뜯어와 집안에 마른 풀들이 뒹굴어다니기 때문에 그게 꼴보기 싫어서 만든거다. 아이는 경건하게 초록 수집품들을 일렬로 세워놓고는 순순히 이별을 고한다.
요즘엔 장미꽃이 한창 피어서 종종 길을 돌아 들르는 곳이 있다. 장미가 잔뜩 핀 남의 집 담벼락이 보이기 시작하면 온 몸으로 행복함을 표현하며 소리를 지른다. “이야! 여기다! 장미꽃이다!”
토끼를 좋아하는 아이답게 토끼풀도 엄청 좋아하는데, 5월은 그야말로 토끼풀의 세상이다. 길에서 토끼풀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길 옆 공터에 핀 토끼풀꽃을 뜯어다가 꽃시계를 만들고, 꽃다발을 만들고 한참 시간을 보낸다.
옆에 서서 아이가 토끼풀로 노는 모습을 보다 문득 여기 네잎크로바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같이 쭈구려앉아 슬슬 뒤적였다. 엄마 뭐 찾아? 네잎크로바. 그게 뭔데? 봐봐. 이건 세 잎이지? 네잎 크로버는 잎이 네개야.
어?…어..어! 얼마 안 되어 정말 네잎크로버를 찾은거다. 나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봐봐! 있지 있지! 아이는 가만히 나를 보다 물었다.
“이건 왜 찾는거야?”
“네잎크로버는 얼마 없어. 이건 행운을 주는 거야!”
“그럼 세잎 크로버는?”
“음. 그건 행복이지.”
가만히 아이는 손에 쥐어준 네잎크로버를 바라보더니 냅다 뛰기 시작한다. 어… 어디가!!! 멀찍이 뛰어가 행운의 네잎크로버를 휙 던져 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아.. 세상에. 내가 힘들여 찾은 것을… 아이는 아랑곳하지않고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악당처럼 깔깔 웃었다.
“깔깔깔. 내가 행운을 던져버렸어!”
“아니 왜…”
나는 아이가 던진 길바닥을 더듬거리며 나의 소중한 네잎크로버를 찾았다. 나의 행운은 바짝 구겨진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다행히 잎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다. 깔깔 웃으며 재미있어하는 아이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제발 던지지 말아죠….
아이는 나의 알쏭달쏭한 표정이 재미있었는지 한번 더 강탈을 시도 했다. 이번만큼은 내던져질 수는 없지. 완벽사수에 벽이 막히자 아이는 길 위의 세잎클로버와 꽃들을 머리 위로 던지며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내가 행복을 던졌어!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네잎크로버는 지켜졌다. 아니, 그게 끝이라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아이는 내가 방심한 사이 네잎크로버를 잡아 휙 던져버렸다.
“왜 던져. 장난하지마!”
“왜 엄마? 집에 쓰레기통에 버릴려구?”
아뿔싸! 모든 풀들은 아파트 현관에 두고 와야 하는데, 아이는 의아한 것이다. 왜 엄마는 안 놓고 왔지? 내 꾀에 내가 넘어간 꼴이 되었다.
“응, 올라가서 버릴께.”
난 다시 차가운 대리석에 내동댕이쳐진 나의 행운을 소중히 집어들었고, 집에 오자마자 책 속에 껴두었다.
책 사이 초라하게 말라비트러진 나의 행운을 보며 허탈한 웃음이 난다. 무엇을 지키려 이렇게 애쓴 걸까. 그깟 행운이 뭐라고. 깔깔 웃으며 이렇게 행복을 던지는 아이가 내 곁에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