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일요일 점심, 마땅히 해 먹을 게 없어서 그럼 짜파게티? 이러고 끓일라 하는데, 그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내가 끓일께. (여보가 끓이면 이상한 거 막 넣잖아)”
나도 질 수야 없지.
“아아니야 내가 끓일께(당신이 끓이면 맛이 없어)”
(실제로 여보당신이란 호칭은 쓰지 않음)
나의 수를 들키지 않으며 냄비를 쟁취해야 한다! 10년간 드넓은 중원을 찾아 헤매다 드디어 만난 무림고수처럼 우리는 서로의 진짜 마음을 목구멍에 삼킨 채 간을 보고 있었다. 아이가 듣고 있으니 다정한 말과 낮은 데시벨로 옥신각신 하고 있는데 아이가 조용히 퍼즐을 맞추다,
“에효, 둘이 다투지 말고오.”
조용조용 말 했는데 그게 느껴진다고?
2. 그 날은 내가 서울 갈 일이 있어 고속버스를 타야 했는데 짝꿍이가 굳이 정류장에 가서 표를 끊어오겠단다.
“왜? 내가 좀 일찍 가서 끊으면 되는데? “
“아니야. 내가 끊는게 편해.”
“그래도 귀찮을텐데.”
물어보니 내가 표 끊는 기계를 못 다뤄서 차를 놓칠까봐 그런단다. 또 주말이라 표가 없으면 안 되니 가서 끊어야 한단다. 내가 그 정도로 못 미더운가? 여튼 알아서 하라 했더니 정류장에서 표를 끊으러 갔다. 나는 그 사이 하루동안 아이 먹을 거랑 설거지를 미리 해 놓으면 짝꿍이가 편할 것 같아 휘리릭 하고 있는데 그가 표를 달랑달랑 들고 왔다.
“이제 됐지?”
하며 버스표를 무슨 100억원짜리 수표처럼 턱 올려 놓는 그. 왠지 보호받는 느낌이 들어 흐뭇해지는데 아이가 한 말이 가관.
“엄마랑 아빠랑 마음이 같아!”
너는 그걸 어떻게 구분하는 거니. 정말 이런 미세한 억양과 감정을 아이는 귀신같이 알아채고야 만다. 그러니 부부가 싸우기라도 하면 아이는 얼마나 불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