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의 추억

by 구수정


어릴 때 빨래를 널다 엄마 팬티를 본 적이 있다. 아빠의 트렁크와 동생의 캐릭터 팬티 사이로 작고 연약한 핑크색의 레이스 팬티. 언제 샀는지 닳고 달아 레이스의 실밥이 너덜거리는 팬티. 입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무줄이 늘어진 낡은 팬티.

“엄마야, 팬티 좀 새 걸로 사라.”

엄마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살 시간이 없다. 퇴근하면 가게 문 다 닫고.”

그땐 뭐 그리 바쁘게 살았을까. 주말까지 반납하며 우리 부모님 참 바쁘게 사셨다.

몇 년 전 부부싸움을 크게 한 데다 집안에 상이 나서 짐도 못 챙기고 친정 집으로 내려왔을 때가 있었다. 내 속옷이 없다며 밤중에 엄마가 당장에 나가 위아래 비싼 속옷 한 세트를 사 왔다. 빤쓰는 두 장. 그것도 내 취향과 내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싸이즈 일반적이지 않은데...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아 엄마 꺼나 사지.”
“야 난 요새 비싼 것만 입어.”
“싸이즈는 어떻게 알았어.”
“대충 내 꺼랑 보면 알지.”

나도 엄마가 있고 내 편이 있다는 안심이 들어서일까. 속옷 한 세트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조금은 웃을 여유가 생겼달까.


오늘 짝꿍이가 속옷 빨래를 너는데 짜꿍이트렁크가 다 닳아 빵구가 날 지경이었다. 건강을 위해 바꾼 손바닥만 한 내 면 팬티도 다 낡아 색이 바랬다.

“아이고... 우리 남펴니 바람은 못 피겠구만.”
“왜?”
“그렇게 낡은 팬티를 입고 누굴 만나겠노.”
“하하핫 그러게. 아무도 안 만나 주겠네.”
“빤쓰 좀 10장 사야겠다.”
“아직 입을 만 해.”

연애 때는 비싸고 예쁜 메이커 속옷 많이 사주기도 했는데... ck 아니면 입지도 않던 우리 짜꿍이.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서 내 빨랫대에 데자뷔처럼 낡은 빤스 한 쌍이 걸려있는 것이 뭔가 처연타. 참 이 나잇대에는 그렇게 팬티 한 장 사는 걸 잊을 정도로 정신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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