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을 수저로 옮기는 행동, '경청'
매일 아침 청사에 와서 민원을 제기하고, 오후에 다시 와서 부서마다 전화하는 민원인이 있었다. 그 민원인은 민원을 낼 때 서면으로 작성하는데 한자에 능통해서 한자로 작성했다. 한자로 작성된 민원서를 담당자가 읽지 못하면 ‘이것도 읽지 못하냐’라고 화를 내고 아무 부서에나 전화해서 민원을 제기하는 통에 부서들마다 힘들다는 이야기가 게시판에 올라왔다. 나에게도 예외없이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되었을까?
민원인은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주된 내용은 모 과장이 매우 열심히 일을 하니 칭찬해 달라는 것이었다. 모 과장은 바로 나이다. ㅎ
민원인은 자신이 서울시에 매우 많은 기여를 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려고 하는데 공무원들이 자기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경청’했을 뿐이다.
소통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모든 갈등의 해결은 소통에서 시작하고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경청에 있다.” 라고 했더니, 청중 중 한 분이 “바빠 죽겠는데 계속 듣고만 있어야 하면 도대체 일은 언제 하느냐?”고 반문한다.
조직에서 한 사람이 업무를 담당하는 시간을 생각해 보자. 하루 업무시간은 통상 8시간이다. 회의는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 한 시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관리자가 참석하는 공식적인 회의가 하루 최소 2회라고 가정했을 때 8시간 업무시간 중 4시간이 회의로 소요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업무담당자의 경우에는 그 보다 많을 것이다. 만약 업무 처리를 위해 현장출장을 나갈 경우를 포함하게 된다면 8시간의 업무시간은 이래저래 짧기만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의 이야기를 몇 시간씩 듣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문제는 그와 연관된 사람들 중에서 문제해결의 방향으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억울한 사람은 그 사람의 감정이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계속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 한다. 당사자는 맺힌 것이 너무 많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억울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정도는 점점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이 해소되어야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일까?
똑똑한 리더들은 혼자 말을 많이 한다. 직원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때로는 상대방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말을 끊는다. 한 두 마디 들어보면 그 다음 내용은 더 들어볼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뇌과학자 정 모 교수조차도 패널들에게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라고 한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전문가들은 특히나 남의 이야기를 듣는데 서투른 까닭이다.
전문가인 사람이 관리자가 되면 내용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시시콜콜 참견하고야 만다. 그것이 본인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듯 말이다. 직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말이라도 조언을 하지 않으면 그 프로젝트의 진행이 잘못될 것 같기만 한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의 표현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지시와 명령 또는 먼저 발언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불안감이 깃든 탓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서도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위에 걸맞게 먼저 축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축사를 하지 못하거나 축사 대상자에도 끼지 못하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적으로 행사에서는 행사주최측 보다는 초대된 사람이(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제일 먼저 축사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축사 등 인사말을 못하게 되면 일어나서 인사라도 할 수 있도록 소개해야만 한다.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리더’가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그리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이다.
특히 불만이 있는 사람, 억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 내 아이디어가 엉뚱한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는 사람, 상사에게 보고할 때 평상시보다 말을 더듬는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소통형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시청에 찾아오는 많은 민원인들은 그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사업담당자는 민원인이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법 근거가 없는 민원을 들어줄 수 없는데 끝이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시간이 없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시간 예고제’를 활용하는 것을 어떨까?
첫째,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음을 알린다. 예를 들어 “지금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 한 시간정도 여유가 있다. 한 시간 이야기를 듣고 다음에 오실 때 미리 시간약속을 하면 또 들어줄 수 있다.”와 같이 대화 전 시간 예고를 해주고 다음번 기회가 또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민원인들이 공공기관에 와서 민원을 이야기할 때나,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보고할 때에는 다음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기회 얻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 더욱 절박한 심정이 되는 까닭이다. 면담자가 자신에게 할애된 시간을 알고 있는 경우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고위직일수록 면담시간이 짧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해도, 그러한 경우일수록 대화 시간이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상대방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시청에 찾아온 민원인들과 면담할 상황이 생기면, “오늘 ○○정도의 시간이 가능합니다. 오늘은 먼저 선생님 이야기 듣고요. 오늘 다 말씀 못하시면 다음에 일정 맞추어 또 봬요.” 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민원인들은 그 순간 매우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다.
둘째,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대화의 마무리를 위해 정리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한번 만났을 때 그 만남에 대한 마무리가 있어야 한다. 작가 이기주는 「언어의 온도」에서 “시작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 때론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중간 중간 정리해주고 다음번에 어떻게 또 대화를 이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함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면담을 하고자 하는 배경이나 원인은 무엇인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상대방에 생각하는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있고, 그 문제로 인한 상대방의 인식, 어려움 등을 알 수 있으며, 앞으로 문제해결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파악할 수 있다. 쟁점은 쟁점대로, 대안은 대안대로 정리해서 하나씩 논의해 나가는 일정을 예정해 둔다면 ‘만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얼마 전 한 민원인을 만났다. 그 분은 왜 민원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본인의 심경을 토로했다. 한 시간 가까이 그 분의 말씀을 들어주고, 다음 일정을 가야하는 시간이 되어 양해를 구하면서 “다음에는 ○○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했더니, 민원인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동안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