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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이 Jan 11. 2021

공무원이 뭐라고...(15)

업무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

SNS 에서 '출근하고 있는데 퇴근하고 싶다.' 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인지...


매일 매일 악성민원 고질민원에 시달리던 과장님이 얼마전 퇴직을 하셨다. 이제는 더이상 민원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점이 가장 좋다고 했다.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는 비단 공무원 조직만 그러할 것은 아니다. 민원이 없다고 해도 조직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이다. 만약 퇴사를 하면 스트레스가 없을까? 다른 이유의 스트레스가 또 있을 것이다.


나는 공직에 들어오기 전 프리랜서를 했다. 고정수입이 없기 때문에 다음달 수입이 어찌될지 알 수 없으므로 요청이 들어오는 일들은 모두 받았다. 한번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누가 요즘 바쁘냐고 물어보면 일이 없다고 했다. 안바쁘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 잠을 줄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루 평균 3-4시간 잤고 멀리 지방에까지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흔쾌히 달려갔다.


운전해서 새벽길을 가고 밤늦게 덤프트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운전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그저 일이 있어서 좋았고 행복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바쁘니까 좋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1학기는 3월-6월, 2학기는 9월-12월 각각 4개월씩 강의를 하는데, 한 학기 강의가 다 끝나기 전에 강의시간표를 짜는데 그 때 강의요청이 없으면 시간강의는 탈락한 것이다. 운좋게도 한 대학에서 강의를 못하게 되면 다른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시간강의를 못하게 되어도 공공기관의 연구 용역을 맡을 기회가 자주 있었다.  '나라장터'에 연구용역 입찰 건이 올라오면 제안서를 작성하고 때로는 제안발표도 했다. 이렇게 시간강의와 연구용역 하느라 정신 없었다.  일의 마감이 다가올 때 받는 스트레스 외에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공직에 들어와서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더 힘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였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공동작업을 하더라도 자신이 담당한 부분만 하면 되기 때문에 혼자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여기서는 부서장으로서 직원들과의 관계도 신경써야 하고 국장도 신경써야 하고 다른 부서의 과장들 관계도 신경써야 하고 심지어 윗 분들의 의중이나 의도를 관심법으로 알아채야 하니 항상 긴장상태에 있어 신경이 곤두섰다.


물론 나만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직원들도 나와 거의 비슷한 이유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한 직원이 앞 자리에 앉은 직원으로 인해 내내 힘들어하며 다른 부서로 가버렸다. 과장인 나는 그 직원이 간 후에야 왜 갔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직원은 한번도 내게 힘들다고 한 적이 없다. 항상 밝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무것도 몰랐다. 직원들과 나 사이에는 칸막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칸막이 너머 목소리는 잘 들렸는데, 실제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던 것이다.  


매사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 자기 업무를 매우 쉽게 옆 직원에게 떠밀어버리는 사람, 뒤에서 남 욕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 매일 5분씩 늦고 30분 먼저 점심 먹으러 가서 30분 늦게 들어오는 사람, 부서 내 사람들과 이러저러한 일로 자주 싸우는 사람, 하루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일은 안하는 사람


자유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의 유형들이다. 일이 힘든 것은 참겠는데 사람과의 관계는 항상 힘들다는 내용의 글도 자주 올라온다. 업무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들도 많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좋은데 막상 내 상황이 되면 이야기하기가 곤란하다. 언젠가 또 만날 수도 있고 내 평판에 흠결을 만들 수도 있다면 더욱 곤란하다. 직접 이야기하면 싸울 수도 있고 일방적으로 매도당할 수도 있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곤란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착할 필요는 없다.
나는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늘 한 박자 늦어서 상대방에게 당하고 난 뒤, 돌아서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 왜 이 말을 못했지?’ 하면서 열받아한다. 다음번에 또 그러면 정말 가만 안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막상 똑같은 상황이 되면 ‘버벅’거리면 말을 못한다. ‘왜 말을 못하니.....’

회의 같은 곳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따박따박 잘 하면서 꼭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늘 이모양이다. 나는 자주 비틀거리는 인간관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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