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출, 차출, 또 차출 그리고 지원
공무원이 되고나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시청에 들어가기 전 나는 비가 오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비가 오면 창이 큰 카페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씩 조심스레 마시며 끊임없이 창에 부딪치며 흘러내리는 비를 감상하곤 했다. 눈이 오는 것도 좋아했다. 남이 밟지 않은 새하얗고 소복하게 쌓인 눈에 발자국을 찍으면서 걸어가는 것은 눈이 내릴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기쁨이기도 했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서 거뭇거뭇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정말이지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에서 그치지 않더라…
하지만 시청에 들어오고 나서는 매일 그 날의 일기를 살핀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무언가 해야만 하는 나의 업무인 것도 아니다. 다만, 우기때면 3교대로 돌아가면서 비상근무하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이고 눈이라도 올라치면 비상연락이 올 수도 있음을 예상한 까닭이다. 내가 공직에 있는 동안 비와 눈으로 인해 현장 차출된 적은 없다. 직원들은 자주 차출되었는데, 비나 눈은 물론이고 전철 파업이 예고되었을 때나 각종 민원으로 인해 현장 정리가 필요할 때 등등이다. 가장 최근에 차출된 경우는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나 역시 생활치료센터에 차출되어 지원근무를 나갔었다.
직원들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현장 점검을 나가거나, 확진자를 수용하는 생활치료센터에서 근무하거나 등등 차출되어 지원근무를 나갔다. 지원근무를 나가는 것은 별 문제 없어보인다. 문제는 누가 차출되는가에서 발생하였다. 어린 아이가 있는 경우 제외, 병원치료를 받는 경우 제외, 지병이 있는 경우 제외…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제외하고 나면 차출되는 직원은 누구인지 뻔하다. 조직 내 여러 역학관계에 의하여 신입이거나 젊거나 남성인 직원이 제일 먼저 차출된다. 한번이 아니라 거의 모든 차출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맨날 나만 차출…ㅠ.ㅜ
예전에는 이러한 상황을 참고 넘어가기도 했나본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반복적으로 차출되는 직원들 중심으로 불만이 제기되었다. 차출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각 부서들마다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았다. 어떤 부서는 무조건 순번대로 한다. 공무원조직은 팀장, 6급, 7급 순서를 기본으로 해서 그 부서에 들어온 순서대로 순번이 정해진다. 긴급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하여 과장과 팀장은 제외하고 나머지 직원 중심으로 차출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요즘은 자유게시판에 팀장을 주 공격대상으로 삼아 일을 안한다거나 팀장 직급을 없애야 한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데, 이러한 정서를 반영하여 팀장도 차출하여 지원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부서는 추첨으로 차출을 정했다. 추첨을 할 때에 제외되는 직원들이 있는 경우 또 불만이 제기된다. 이런 경우 반대 저런 경우 반대 어떤 경우는 불만 이렇게 이것 저것 고려하다보면 직원들의 불만은 늘어나고 잘못하다간 오히려 무능한 부서장이 되기 쉽상이다.
첫 차출에서 나는 예외대상 직원은 빼고 나머지 직원들은 모아 추첨을 했다. 당첨된 직원이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안된 상황이라 다른 직원이 대신 자원했다. 자원한 직원은 자신의 팀에서 시급하게 진행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중단하고 지원근무를 가야하는 상황이라 담당팀장이 굉장히 화를 내었다. 두번째 차출에서는 예외없이 팀장 포함 모든 직원이 순번대로 간다. 는 원칙을 정했다. 직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여 다른 직원과 차출 일정을 바꾸는 것은 모른 척했다. 이렇게 원칙을 정하고 나니 불만은 있으되 더 이상 문제제기는 없었다. 물론 아픈 직원도 있고 어린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직원도 있었다. 마음은 아팠다. 하지만 예외를 두게 되면 꼭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방지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직원들은 오히려 내게 공무원으로서 의무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가 있는 직원은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봐주기로 했다고, 아이를 봐줄 부모님이 없는 직원은 부부가 서로 일정을 맞추어 돌보기로 했다고… 부부가 모두 공무원이고 둘 다 현장지원을 나가야 한다면 어쩌나 더 걱정이었는데, 아이를 봐줄 분을 구했노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이렇게 일상적인 차출에 크게 불만이 없다. 당연한 의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차출에서는 조금 달랐다. 현장에 나가서 감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처음에는 마스크 지급이 늦어지거나(마스크대란으로 인해), 방역복도 없이 나가야 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도 확진자들에게 물건을 전달하거나 식사 제공을 할 때에도 처음에는 직원들이 직접 수행했기 때문에 직원들이 위험이 그대로 노출되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스템이 정비되고 하여 이러한 점들은 개선되어갔다.
헌법 제7조 제1항에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7장 복무 제56조(성실의무) 모든 공무원은 법령에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제57조(복종의 의무)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시민안전과 행복을 위한 비상차출인 경우 공무원은 이에 당연히 응하여야 하고 그래서 비상연락망을 수시 점검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는 체제를 갖추고자 한다. 그러나 그 차출이 균형적이고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조직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될 것이고, 조직을 통솔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