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몰된 손가락 끝에 차오른 사랑
다음 날 싱가폴로 귀국한다는 그녀에게 저녁으로 훠궈를 대접했다. 이지아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버블티 집까지 날 데려가 후식으로 버블티를 내게 대접했다. 훠궈를 먹을 때도 난 조금 위축돼 있었다. 그녀에게 너무 많은 걸 빚진 느낌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불안하고 우울한 모습,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 등 처음 보는 그녀 앞에서 별의별 꼴을 다 보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취약한 모습이 까발려졌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영어가 모국어인 그녀만큼 영어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의사소통할 수 없었던 것도 내가 방어적이고 경직되는 데 한 몫 했다. 격차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열등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위축되고 방어적인 상태라는 걸 알아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상태에 영향 받지 않았다. 내가 다치고 수술할 때 일관되게 담담하고 평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내가 위축되고 방어적일지라도 일관되게 명랑했고 밝게 날 대했다.
그녀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녀처럼 다른 사람들의 상태나 태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중심을 유지하면서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늘 그런 사람이 되고야 싶었지만 어떻게 될 수 있을지 막연했고 방법을 몰랐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그리고 직접 그 시범을 보여주는 사람이 대만에서 내 눈 앞에 앉아 있었다.
훠궈를 함께 먹으며 그녀에게 "오늘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그녀는 "고마워 하지 않아도 된다"며 다음에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우면 그게 자기에게 빚진 걸 갚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대답에 또 한 번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알고보니 그녀는 30대 중반인 나보다 7살이 어린 20대 후반이었는데, 나는 7년 전에 그녀처럼 시야가 넓고 이타적인 마음씨를 가졌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도피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대만 여행은 자아성찰을 깊게 할 기회를 준 영적 여정이 됐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던 난 3년 전부터 영성을 추구하며 이성과 호불호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와중이었다.
거의 매일 명상과 요가를 하며 내면을 탐구하고, 내 작은 자아 너머에 있는 더 큰 사랑과 연결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3년 가까이 소셜모임 '상처받지 않는 영혼들의 제철 베이킹' 모임장으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연결되고, 서로를 치유하며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나 존재보다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성취와 성과를 얻어온 30년의 세월과 그 이후 스스로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각도를 전환한 최근 3년까지 평생의 궤적이 하나로 이어지는 영적 여정이다. 대만에서 손가락이 칼에 썰린 사건과 이지아와의 인연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와 어린 시절까지 스스로를 깊게 성찰하게 했다.
한국에서 손가락 후속 치료를 한 성형외과 의사는 "피부 조직이 괴사했다"며 "손가락 끝이 동그란 모양으로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내 엄지 손가락은 원래 모습과 99% 동일하게 회복됐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예후가 무척 좋다"고 했다. 대만인 의사의 우려와 달리 손톱도 기형이 되지 않았다. 날 돌봐 준 모든 이들의 사랑과 우주는 함몰됐던 손가락을 동그랗게 채웠다. 하지만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얻은 건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내 영적 여정이라는 퍼즐의 빈 자리 조각을 찾아 과거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회복해 더 완전해진 것 또한 삶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총 3편으로 이뤄진 ��대만 여행기
<대만에서 잘려나간 손가락, 선물이 되다>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