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O 라는 아이덴티티
마케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으례 누구나 한 번 쯤 CMO를 꿈꾼다. CEO가 되기 위해 거치는 포지션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서도 매우 매력적인 포지션이다. 조직이 크던 작던 책임지고 있는 브랜드를 살리고 죽일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만큼 성공의 영광도 크고 실패의 대가도 명확한 자리다.
글로벌기업의 CMO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어마어마한 스톡옵션과 연봉으로 스스로 스타가 되기도 한다. 한편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제일 먼저 해고하는 포지션이 바로 CMO다. 영업을 못했으면 영업 임원을 제일 먼저 해고해야 정상인데, 어찌된 셈인지 CMO-영업임원-CSO(전략임원) 의 순으로 잘린다고 한다.
이래저래 파리목숨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래도 마케터가 1번이란건 총알받이가 된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최근 CMO라는 커리어 포지션에 조금씩 변동이 생기고 있다. 코카콜라는 얼마전 CMO 포지션을 없애버렸다. 대신 CGO(Chief Growth Officer)를 만들고, 마케팅 최고 책임자 역할을 포함시켰다. 다른 글로벌 기업도 CMO포지션을 없애고 CGO 또는 CCO(Chief Creative Officer) 라는 직책으로 역할을 재창조 하고 있다.
CMO가 없어진다니, 마케터의 커리어의 종말인가? 싶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전의 4P로 충분하던 시대, 디지털 1세대의 시대에 부여한 이름이 Revamp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연결의 시대고, 고객과도 engage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마케팅이 해야 할 일 역시 이전에 강조되었던 것과 당연히 달라지고 전향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단 CMO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아래 이미지는 IBM에서 밝혀낸 요즈음 CMO의 정체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CMO의 69퍼센트는 새로운 트렌드를 탐구하는데 예측적 분석방법을 사용하고,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외부에서 더 큰 경쟁의 위협이 닥쳐올 것이라 예측하고 있고,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을 제 1의 과제로 삼고 있기도 한다.
그 외 나머지 결과들도 쭉 살펴보면 CMO는 마케터가 나이 먹고 경력 쌓였다고 되는 존재가 아니라 고객과 시장의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리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dusruptive growth에 기여해야 할 CMO들이 실제 innovation 에는 신경을 덜 쓰고 있다고 주장도 한다. 60퍼센트 이상의 노력을 전통적 마케팅 활동에 쓰고 주어진 시간의 37퍼센트 정도만 이노베이션에 사용한다고 한다. 창의력과 out of box의 시각을 요구하는 이노베이션에 더 많은 시간을 써서 새로운 growth를 창출하거나 비즈니스의 또다른 돌파구 찾기는 원래 갖고 있었던 역할책임의 한 부분이긴 한데 현재의 CMO들에게 주어진 지상과제가 된 것 같다. 그 시각으로 생각해 본다면 포지션 네임에 대한 최근의 이슈는 합당한 것이기도 하다.
Growth, 창의성, Operation 모두 마케터의 과제
브랜드의 성장과 고객의 만족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마케팅의 목표니 CMO는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무언가 새로운것처럼 포지션명을 마케팅을 빼고 Growth를 집어 넣는 것은 최근 급속도로 디지털화 되고 속도가 빨라지는 시장에서 메이저 브랜드들이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자각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스타트업들과 언더독들이 듣도 보도 못한 제품서비스를 가지고 시장을 뺏아가는 상황에서, 기존의 제품서비스와 소통 방식, 고객에게 사용했던 tactic들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하는 일보다 궁극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포지션 네임에 넣음으로서 경각심을 갖게 하고, 시장과 경쟁사에 강한 시그널을 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마케팅이라는 function에서만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데서 벗어나 궁극적인 목적인 growth를 머리 속에 장착시키자는 기업 내부적 자성이나 일종의 리마인드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CGO보다 고민 되는 명칭은 CCO이다.
많은 마케터들이 크리에이티브 해야 한다는 강박, 그게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하며 일을 한다. 조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이 막히면 마케터에게 와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마케팅에서 좀 반짝하는 아이디어를 좀 내 봐"
마케터로서 살아가다보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이고 귀 따갑게 듣기 때문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심적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크리에이티브가 메말라감을 느끼며 저런 이야기에 반발을 느끼기도 한다.
고객들은 익숙함에 돈을 지불하면서 새로움에 매혹된다. 용기있는 사람들은 시도를 해 보기도 한다. 익숙함을 터전으로 삼되, 항상 새로운 오퍼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순이다. 바쁜 마케터들은 정기적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 챙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새로움을 만들어 내라니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CMO포지션에 크리에이터나 디자이너 출신들이 종종 자리하는 경우도 많고, CCO는 아예 당연히 크리에이티브 분야 출신이다. CCO는 창조와 파괴의 DNA를 갖고 뒤집어 볼 줄 아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직관적이며 감성적이다. 인간이 가진 3개의 뇌 층위 중 감성과 공감의 파충류의 뇌를 건드리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조직이라는 틀 속에 있으며 틀을 관찰하는 시선을 가지는 크리에이터들의 특성이 극도로 분절화된 마케팅 tactic 속에서 본질을 캐치하고 다른 각도로 반사시켜 주는 거의 유일한 존재들이라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 하다는 것은 반드시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무에서 유의 창조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의 마지막 꼭지를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창조적일 수 있다.
결국 새로운 것이 없는 재창조의 시대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크리에이티브를 강조하고, 마케터에게도 디자이너와 같은 영감과 표현방식을 가지기를 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CMO-CCO 자리의 혼란스러운 positioning은 계속 될 것이다.
어쩌면 COO
마케터는 전략을 수립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액션플랜을 준비해 흠집 없이 말끔하게 실행하는 능력까지 함께 요구받는다. 전략 수립만 하는 마케터라던가 실행만 하는 마케터, 준비만 하는 마케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입사원이거나 경험이 거의 없는 주니어일 때는 선배나 팀이 정한 업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시기를 잠깐 거치기는 하지만 그 경우는 좀 예외적이니 차치한다.
전략부터 실행까지를 책임지는 만큼 많은 부서들의 이해관계를 아우르고 뛰어넘어 조직의 목표와 업무 방향을 마케팅 목표에 Align시키고, 협력을 통해 성과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마케터가 한다.
보통 마케터들은 회사에서 자신의 브랜드나 펑션을 맡아 업무를 수행하고, 관련된 부서와 이해관계자들이 전사적으로 빧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서 적시에 적합한 부서와 협력하는 일이 일상인만큼 사실은 COO로서의 자질도 크게 요구된다.
보통 COO라하면 공장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효율화로 영역을 한정 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빨리, 더 빨리를 외치는 고객의 속도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COO의 역할 역시 제조생산의 운영효율이라는 협의의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객으로부터 시작한 밸류체인 전반의 효율제고와 그를 위한 리소스 운영의 총 책임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존의 협의의 OE 개념만 가지고는 그 역할 수행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마케팅을 하며 회사의 다양한 내부조직을 활용, 협조해 성과를 만들어 낸 사람이 한 분야에만 매몰되지 않는 시각으로 밸류체인 전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가장 큰 답답한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오퍼레이션은 거의 생산과 물류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실제 소비자의 니즈나 시장의 방향에 둔감하다. 오퍼레이션을 담당하는 C레벨들은 항상 기술지향적이고 내부조직 지향적이라 커뮤니케이션이 상당히 어렵고, 산하 조직과 협력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에게 소비자가 어떠하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하다,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봤자 알아듣지 못하거나, 이해한다 해도 기존의 체계 안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들기 때문에 거의 안된다, 불가능하다는 답을 듣는 것은 정해진 수순일 정도였다. 내가 과연 제대로 의사표현을 한건가 하는 의문까지 갖게 하는데, 단순히 조직간 언어의 차이라기엔 너무 깊은 골이 존재함을 느꼈다.
시간관리, 마케팅 경쟁력
약간 논외의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요즘 리소스의 낭비 중 가장 심각하고 기본이 되는 것이 시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이지만 다른 요소들의 크고 작음에 따라 시간의 길이가 다르게 체감되고 나오는 결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마케팅에서도 타이밍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너무 빨라서도 조금이라도 늦어서도 안된다.
생활용품마케팅을 할 때, 제품 출시 시기는 항상 봄, 3월이 베스트, 늦어도 4월이어야 했다. 그때가 봄 대청소의 시기라 세제류 매출이 피크고, 한 해의 장사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봄을 잘 경영하면 그 해 손익이 훌륭해지고, 고과를 기대해도 좋다. 그래서 경쟁사보다 하루라도 먼저 신제품을 출시하고, 프로모션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려고 늘 전전긍긍했다. 심지어 광고 온에어 날짜도 빨라야 했고, 3월 대대적 출시를 위해서 2월부터 죽어라 전국 영업부서를 돌며 교육하고, 샘플 뿌리는 일을 했다. 하루 늦게 도착한 물량에 소리지르는 지방 영업사원들 역시 그만큼 치열하게 타이밍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열정으로 인한 것이라, 그럴 땐 아무말 못하고 욕을 실컷 들어먹기도 했다.
"시간"은 실로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복리의 법칙도 시간이 바탕이 되는 것이고, 제품을 출시하거나 문제 발생시 기업의 입장을 밝혀 위기관리를 하는데도 right timing 이 있다. 물 들어 올 때 노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게 아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촌각을 넘어 나노초를 다투는 경쟁에서 기본을 놓치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리소스를 잘 관리하는 사람은 다른 리소스에도 밝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시 언제가 가장 효율적인 타이밍인지 알려면 핵심이 무엇인지, 부차적 요소는 무엇인지, 각 요소간 상관관계 파악은 필수기 때문이다. 그래서 CMO는 물론 모든 C레벨의 업무는 시간자원 효율성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십년 동안 마케팅을 했지만, 단 하루도 편하게 지냈던 적이 없다.
대체 왜 마케터한테만 유독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많은가 하는 억울함도 있었고, 그래도 회사에 마케팅 조직 아니면 그나마 새로운 트렌드나 아이디어를 전파하고 적용할 곳은 한 군데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혼자 부심도 부려보곤 했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마케터들을 이렇게 몰아부치고 있다.
"마케터 너희들에겐 GROWTH와 CREATIVE가 필요해!"
그리고는 마케터의 최고봉이라는 CMO 이름마저 바꾼다니, 이십년 묵은 푸념이 다시 나온다.
"왜 우리한테만 이러세요?ㅜ.ㅜ"
푸념이라고 쓰기는 했지만, 사실 이것은 CMO, 마케터의 아이덴티티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다.
이름이 바뀌면 외모도 태도도 성과도 바뀐다. 연예인들이 이름을 바꾸고 심기일전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처럼 마케터의 커리어의 완성지점인 CMO의 명칭 역시 심기일전의 시기에 도달한 것인 듯 하다.
그러나 이름이 무엇이라 바뀌든 결국 해야할 일은 하나로 결론난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서 성장하는 것.
CMO, CGO, CCO.. 다 좋다. 같은 문제를 더 잘 풀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