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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탈 May 21. 2018

잘 뽑는 것이 가장 큰 리더십

시작부터 정해진 결과

내가 꽤나 덜떨어진 인간이라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지 이십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고, 고민되고, 답답하다.
얼마전 또 제법 큰 고민 상황에 부딪혀 어찌해야 하나, 대체 뭘 어떻게 해야할까 머리를 쥐어 뜯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차피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바뀌지 않는데 리더십을 고민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신의 가치관 내에서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주위에서 아무리 옳다 해도 거부하게 마련이다. 사람의 판단은 옳고 그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게 얼마나 좋고 편하고 이득이 되느냐에 의해 내려지는 법이라 타인이 리더십을 발휘한답시고 참견하면 내심 귀찮고 같잖을 수 있고, 싫을 것이다. 게다가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면 더더욱.

왜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느냐, 남들도 모두 그렇게 결정했는데 왜 너만 튀느냐라는 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의 옳음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 말이지. 옳음이란 참으로 어려운 개념이다. 절대적으로 옳은것이 있을까,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생각은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 국가를 상대로 사업을 벌인 전임 대통령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한 정부, 가훈이 정직, 그러한 (거짓된?) 삶을 살아오지 않은 인생, 그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삶이 옳은 것이었을테니.

나의 행복이나 즐거움과 더불어 좀더 많은 사람의 행복이 함께 추구되고 획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신경을 조금이라도 쓰며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종류의 리더십이든 의미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백가지 리더십을 다 동원해 본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가능성을 스스로에게서 배제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리더십으로 접근해야 할까 고민하는 자체가 쓸데 없는 일일 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면 이해득실을 따져 레버리지가 될 것을 던져주면 되고, 그렇게 따라온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리더십을 고민하는 시간과 노력은 단순히 무위가 아니라 큰 손해다. 고민하지 않아도 될 시간, 노력을 더 들이고 그 대신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못하게 되고, 긍정적 시너지를 낼 수도 있었을 가능성마저 박탈당했으니. 그래서 다들 말한다. 잘 뽑는게 제일 좋은 교육이고, 조직문화에 기여하는 길이며 성과를 내는 방법이라고. 그거 진짜 맞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어떤 리더십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보스가 될 수 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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