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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탈 Feb 27. 2017

재미도 좋지만 의미도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잊지 말아야 할 대전제

얼마 전 정기구독하는 주간지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맨 뒤표지에 나온 한 보험사의 어린이용 보험상품 광고의 문구때문이었다.


"차만 타면 보채는 아이, 차만 타면 보태는 아이"


광고주나 광고대행사는 "보채는 -> 보태는" 이라고 한 글자 바꾼걸 재치있는 신의 한 수라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보는 순간 어처구니없고,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없지만 조카들은 여럿 있는 입장에서 내 조카를 물질화시킨 그 단어가 너무나 불쾌했다. 보채고 귀찮은 아이가 돈을 벌어다 주는 착한 아이가 됐다는 문구를 보고 자식을 가진 부모가 옳다구나! 하며 그 상품을 가입하고 싶을까? 아이란 존재 자체로 소중한게 아니라 살림에 보태줘야 이쁘고 애틋한 존재가 되는가?


이와 같은 맥락의 사건이 얼마 전 또 있다. 최근 출생율 저하, 노령화 관련한 기사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는데, 한 언론기사는 출생율이 떨어졌다는 기사 제목을 "한달치 아이가 사라졌다"고 뽑아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 표현이었다. 한달치 아이라니, 아이들이 물건인가? 치라는 단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경우가 아니면 뒤에 항상 사물이나 수량을 표현하는 단어가 동반된다. 한달치 쌀, 한달치 물량 등 흔히 사용하지만 사람을 한달치 두달치 이렇게 표현한 것을 본적이 있는가?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 본 치 ;

치 [의존명사]  

1.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2.어떠한 특성을 가진 물건 또는 대상.

3.일정한 몫이나 양.


한달 동안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를 무어라 표현할지 모른다면 기자로서 어휘력이 빵점이라는 자인이고, 그 표현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하는 경우 기본적인 지식부족이라 사용법을 모르는 것이라면 기자로서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알고도 썼다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으니 언론인이라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큰일이다. 광고인이고 언론인이고  왜 이렇게 언어 사용이 경솔한 것일까?



Serial Killer? Cereal Killer!



시리얼 serial 킬러는 심각한 범죄자이다. 하지만 아침식사로 먹는 시리얼 cereal 킬러는 기업 입장에서 감사해야 할 헤비유저다.  친구사이에서 나 시리얼킬러야! 라고 한다면 다같이 웃고 말겠지만, 만약 발화자가 알고보니 진짜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때는 심각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런 소설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보며 이 이미지를 보면 웃게 되는 한편,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따져보면 꽤나 과격하다는 생각을 한다. 많이 먹는다고 말할때 난 xx킬러야 라고 하는 표현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는데, 사실 킬러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살면서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 아닌가.. 언어가 점점 과격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말장난을 영어로는 pun이라고 하는데, 이미 단어 자체에서 fun/pun의 장난부터 연상된다. 외국에서도 다의어, 유사발음 등을 가지고 장난들을 많이 친다.


아이고 힘들다..


위의 이미지는 구글에서 찾은건데 너무 웃겼다. 앞발 두개를 가지런히 모으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곰의 사진에 맨/곰손으로 이걸 만들었다고 라는 문구가 너무 유머러스하다. 이 곰 사진에는 이 문구 말고도 여러가지 문구가 많이 붙어 있는데, pun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잘 어울리는 문구인 것 같다.



말장난의 목적


직장인의 로망


우리나라 각종 포탈에서 많이 떠돌았던 각종 짤방들을 보면 빵빵 터지는 재치있는 것들도 있고, 마음이 짠한것, 절묘한 비꼼이 예술의 경지인 것들도 많다.  웃고 넘어갈만한 것도 있지만 잘못 사용될 경우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비하가 되는 것도 많다. 특히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기업이 광고를 하면서 말장난을 칠 때는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기업은 무엇을 팔고자 커뮤니케이션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므로 항상 어떤 행위나 메시지에도 의도가 담겨있다고 간주되고, 의도에 대한 검증을 당하게 되고, 그 의도가 기업의 본심이라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실없이 세상이 아름다와요~ 하는 광고인것 같지만 사실은 그 세상을 우리 회사/브랜드가 만든다는 간접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나 커뮤니케이션들이다.)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말장난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몇가지 분명히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결국 이것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달성하려는 것이 있고, 거기에 말장난이라는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니, 말장난을 해 보는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기법으로 pun을 선택한 것임을 잊지 말자.

만약 신제품이나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기업이라면 이름을 알리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름만 알리면 된다는 생각에 화제성에만 집중한 캠페인을 하는 경우도 많다. 마케팅 자원이 충분하다면 시리즈로 캠페인을 만들어 일단 던지고, 정체를 알리며 혜택을 소구하는 방식으로 가기도 한다. 그럴 경우 소비자에게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반응은 웃기는데? 그래서 그게 뭔데? 라는 다음 캠페인에 대한 궁금함이다.  


둘째, 목적은 항상 본질과 결부되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선의를 알리는 캠페인일 경우, 그 선의가 말장난을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제품을 이야기하는 것이면 제품의 본질이나 강점이,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면 브랜드의 가치가 무엇인지 표현되어야 한다. 본질도 아니고, 목적도 불분명한 말장난은 그야말로 아무말대잔치이고, 돈들여 돈을 버리는 짓이다.


셋째, 사용하는 단어는 모두가 알고있는 것이어야 한다. 말장난의 묘미는 모두가 알고 있는 단어/문구가 다른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알고 있는 언어에 의외성을 주도록 배치해야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언어에는 감정이 있고, 역사성이 있으며, 지적인 요소도 있다. 적절한 상황에서 다른 요소와 의외의 논리적 연결이 이뤄질 때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


넷째, 말장난을 통해 어떤 누구도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개인에 대한 비하,폄하,공격,스테레오타입화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은 부당하고 비도덕적이다. 그러므로 사용하려는 언어의 함의와 맥락을 철저히 살펴야 한다.


아래 국순당의 막걸리광고는 문구에서 바나나와 반하나의 발음 유사 및 중첩을 통해 상품을 어필하고 있다.

바나나 막걸리가 나왔음을 알리는 목적으로 기획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막걸리에 바나나가 들어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반할만큼 맛있다는 건가? 하는 궁금증을 일으켜 구매를 유도한다.  이렇게 기업의 말장난은 자신이 내놓는 상품서비스의 장점과 차별점을 가지고 이뤄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 광고는 이전까지는 없던 바나나 막걸리라는 차별점, 반할 만큼 맛있다는 자신감의 두 가지 메시지를 소프트하게 잘 풀어냈다.


한번 먹어나 볼까..



이에 반해 가슴이 턱 막히는 사례도 있다.

이렇게까지 해서, 많이 팔렸는지, 정말 모르겠다..


위의 사례는 인스티즈에서 2년 전에 올라온 이미지였는데, 웃기는 짤방, 말장난의 사례로 게시자가 올렸다.

여성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고, 제품과 고객의 편익에 대해 아무 의미도 없는, 그야말로 말장난뿐인 제품명을 힘들게 농사지은 쌀과 잡곡에 붙여 판매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넘어 고구마 백개쯤 먹은 답답함까지 느껴진다. 도대체 농협은 무엇을 하는가 싶은 원망까지 들었다. 농민들이 농산물 브랜드화를 원하면 제대로 지도를 해주고 컨설팅도 좀 해주면 이런 어이없는 브랜드가 생길까 싶을만큼 이 이미지를 본 느낌은 참담했다.

이런 소위 아무말대잔치 브랜딩은 의외로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남들이 뭐라하던, 어떻게 생각하던말던 일단 튀어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판단이 초래하는 결과인 경우가 많다. 제품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땀과 정성, 제품을 사용하며 고객이 느낄 가치가 담겨있어야 한다. 아무리 농산물 시장에서 차별화하기가 어려워서, 한번이라도 쳐다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 해도 저런 식의 작명은 정말 곤란하다. 헬프미에는 그나마 사 달라는 간청이라도 담겨있다 치고, 키스미와 언니몇쌀은 대체 뭐라 해야할지 한숨만 나온다.



다시, "보태는 아이" 케이스로 돌아가보자.

어린이용 보험상품을 런칭하며 보채고, 보태는 언어유희를 통해 무엇을 달성하려 했는가? 부모들의 재정적 부담 경감이라는 메시지 전달인가? 1차적으로는 보험료가 나오니 맞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보험이든 목숨과 돈을 바꾸는 화법을 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그래서 얻게 될 가치가 무엇인가? 이다.

예를 들어 내가 먼저 암으로 죽더라도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미래, 그래서 얻을 내 마음 속 한조각의 안심 이런거다. 소중한 아이를 지킬 수 있다는 부모의 책임감, 안심 같은 것은 어디로 갔을까?

아이는 정녕 부모에게든 사회에서든 부담이 되거나 보탬이 되는 금전으로 환산되기만 할 뿐인 존재인가?

보험을 안들었을때는 보채는것마저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가 보험을 들면 부모가 몫돈을 얻을 수 있는 호구로 만들어버린 비인간적인 교환구도는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그 카피를 쓰고, 승인한 사람들도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삼촌,이모일텐데 자신의 아이가 그렇게 취급당한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았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상화해 버리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내 상황이 아니고, 내 가족이 아니고, 누군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되어버리면 너무나 쉽게 말을 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해버리는게 사람의 악한 모습이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보험회사가 소비자에게 광고를 그렇게 하면 될 일인가.

말재주 좋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진심이 있어야 하고, 진심을 담는 것이 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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