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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May 23. 2024

겨울과 봄의 길고 긴 줄다리기

기다림의 힘

빠름을 노래하던 나는 어느새 느림에 익숙해졌다. 산책길을 걸으며 어깨를 펴기 위해 의식적으로 하늘을 다. 어깨가 굽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좀처럼 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쪼그라들던 나였다. 나를 들여다보며 알 수 있었다. 어깨가 굽을 때 시선은 언제나 바닥을 향했음을. 고개를 들면 어깨가 펴지는 단순한 사실을 하늘을 보나무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레 알았다.


고개 들어 본 우리 동네 산책길엔 플라타너스가 많았다. 그동안 관심 없던 동네 풍경이 순간마다 롭게 다가왔다. 생각을 즐기기 위해 그늘이 많은 산책로를 걷던 날 한참을 멈춰서 나무에 경의를 표했다. 속이 텅 빈 나무. 안이 썩어 문드러진 나무를 죽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선명하게 빛나는 초록색 잎을 봤다.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일까 작은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흔들거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자연의 위대함에 빠져들었다. 후에 나무가 텅 비어도 살 수 있는 이유는 물이 껍질 쪽으로만 흐르기 때문이라는 걸 알다.  


플라타너스는 두꺼운 껍질이 벗겨지면 얼룩덜룩한 속껍질이 보인다. 그 모양이 얼굴에 핀 버짐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버즘나무’이다. 몇십 년 전 얼굴에 핀 버짐은 가난을 증명했다. 재밌으면서도 쓸쓸한 이름이다. 가난하던 시절, 친구들 맛있는 거 먹는 모습을 보면서 침만 삼키던 내 과거 어느새 까마득하다. 80년 대 초, 그때만 해도 얼굴에 버짐 핀 친구들도 꽤 있었. 배고픔을 느낄 땐 배부른 것이 소원이었는데...


플라타너스도 나처럼 변신을 위해 두꺼운 껍질 옷을 입었으려나? 어른 손바닥보다 큰 나뭇잎은 호박잎을 닮았다. 넓은 잎을 키우기 힘들었을 텐데. 플라타너스의 뿌리는 그리 깊지 않을 것 같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길 위의 가로수라서. 높은 곳까지 물을 끌어올려 넓은 잎을 키우려면 쉽지 않았겠지. 힘을 주고 버텨주었기에 누릴 수 있는 여유이다. 큰 사랑만큼 넓은 잎은 여름에는 넉넉한 그늘을 주고, 가을엔 낙엽이 되어 바스락거리며 귀까지 즐겁게 해 주었다. 가로수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플라타너스가 더 좋았다.   


누군가는 힘 빼지 말고 그냥 살라고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공간을 공부하는 일은 포기할 수 없다. 어쩌면 삶의 이유이고 목적일지 모른다. 어깨를 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하듯이 한쪽에 힘을 빼려면 힘을 줄 다른 곳이 필요했다. 먹고사는 것에 힘을 주던 과거에서 멈춘 뒤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간 속 나를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쌓여 비로소 평온함을 만났다. 내가 버텨낸 방법을 나누고 싶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어깨가 펴지는 쉬운 방법을 바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울을 만나면서 나는 플라타너스를 잊었다.


벚꽃이 지고 새순이 돋아나는 4월 말이 되었는데 유독 앙상한 가지를 자랑하는 나무가 줄지어있다. 가로수를 점령한 플라타너스. 계절을 모르는 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시기를 모르는 건지, 감각이 없는 건지. 봄에 대한 시위라도 하는지 단체로 앙상다. 계절이랑 무슨 협상을 하는지 모르지만, 하루빨리 초록 잎이 나와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처럼 매일 산책로로 향했다. 요지부동. 변함없는 가지를 보며 어깨가 축 처졌다.


다림에 지쳐 잠깐 한눈팔다 며칠 뒤 찾아간 산책로에서 깜짝 놀랐다. 어느새 아이 손바닥만 한 잎들이 자라 있었다. 살아있는 나무라면 반드시 새싹을 틔우는 것이 이치인데….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일을 내 조바심이 못 견뎌 안달복달했구나.      


나도 기다리면 잎이 생길까? 멈춤이라고 느껴지는 일상이 너무 길었다. 겨울의 끝을 안다면 느긋할 수 있겠지만 삶의 계절은 달력이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너무도 당연한 답답함이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처음 멈추었을 땐 부족함이 많아 채워야 할 것도 많았다. 그때는 멈춤이 평화로움이었는데. 겨울을 받아들이고 세상과의 시간을 잠갔었다.     


'간절함' 무를 보며 느낀 간절함은 느림과 거리가 멀다. 나는 느리게 걸으면서 플라타너스에겐 빠름을 재촉했다. 동굴에서 뿌리를 생각하며 한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마음만 앞섰다. 앙상한 가지를 보며 답답한 내 현실보았었다. 똑 닮은 듯한 우리. 나는 세상과 무슨 타협을 위해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서 애쓰는 것일까.     


내 삶에도 머지않아 봄이 오려는 듯 자꾸 온몸의 세포가 간질거린다. 움직이고 싶고 세상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지금은 환절기일지도 모르겠다. 환절기라고 생각하니 다시 어깨가 펴졌다. 받아들임의 힘이다. 생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순간 기다림이 편안해졌다.      


겨울과 봄의 길고 긴 줄다리기. 결국은 봄이 이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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