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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Jun 06. 2024

타임캡슐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조용한데.”

등 돌리고 선 시어머니의 말씀에 고개를 푹 숙였다. 남편과 시동생의 다툼을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하시는 말씀이었다. 혼잣말처럼 하시지만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형제 싸움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어머님이 그렇게 키우셨잖아요.’ 튀어나오려는 말을 마른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내 말이 불러올 파장이 두려웠다.     


형제가 왜 다투는지 나는 모른다. 남편의 시선이 문제라는 것만 알았다. 고지식함? 막냇동생에 대한 질투? 어쩌면 둘 다 섞였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남편은 방학 때 집에 가면 시동생이 부러웠다고 했다. 엄마도 오빠 바라기였기에 나도 이해하는 마음이다. 이유야 어쨌든 둘은 자주 다퉜고 그 책임은 언제나 나에게 돌아왔다. 내가 어머니께 한마디 한다면 남편의 총구는 나를 향할지도 모른다. 못 들은 척 있는 것이 제일 편하다.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야 보이지 않기에 괜찮을 것이다. 그나저나 불편한 시댁살이를 끝내고 싶었다.      

우리의 결혼은 남편에게 독립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2~3일씩 가서 지내는, 합가도 아니고 분가도 아닌 이상한 신혼 생활.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워서 남편의 말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기분 좋을 때는 하늘에 별도 달도 따줄 것 같은 자상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탱자나무 가시처럼 뾰족한 사람이 되어서였다. 단단하고 뾰족한 가시가 심장을 찌를 때면 참을 수 없었다. 싫다고 얘기하고 싶다가도 그의 자상함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포기했다. 시댁에서 입 닫고 꾹꾹 누르고 집에 오면 천국처럼 편안했다. 그의 감정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널뛰기하던 순간들이다.     


“가정교육 잘 받았다.”

이상하다. 말을 참고 나면 들리는 칭찬. 당신들도 모르게 뱉은 말이 나에게는 큰 상처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 보다. 불편한 칭찬 뒤 과한 친절은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다. 돌로 얻어맞고도 사고를 당하고도 억울함을 참아서 받는 칭찬. 참으로 이상한 논리이지만 그때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랫사람이니까. 이후로도 문제의 원인은 모두 내 책임인 듯한 말이 수없이 날아왔다. 참고, 참고, 또 참아 온 세월이다.   

  

상처의 씨앗은 어린 왕자의 바오밥나무처럼 무섭게 뿌리를 뻗어 내렸다. '너무 늦었을까?' 공부를 시작하면서 고민했다. 늦었다고 모두 만류하더라도 지금이라도 상처를 뿌리까지 뽑아내고 싶었다. 너무 깊숙이 내린 뿌리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는 화가 치솟았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왜 내가 혼자 풀어야 하는지 억울함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검은곰팡이가 펴서 냄새도 고약한데. 남이 뿌린 오물을 청소하려니 역겨웠다.     


매일 책상에 앉아 상처를 곱씹었다. 아무렇지 않게 쏘아대는 화살을 맨몸으로 받아낸 트라우마. 깨끗하게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래가 순탄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몇 날 며칠 고심한 끝에 문득 과거에서 왔지만, 희망을 품은 단어가 없는지 스스로 질문했다.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전하는 편지, 타임캡슐이 생각났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분명 아픔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 내 탓이다!” 이 말을 들으며 고민했다. 나는 무슨 잘못을 했던 것일까. 고민한 끝에 불현듯 어떤 질문이 떠올랐다.   

  

‘너는 누군가에게 상처 준 적이 없니?’      


역질문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잘 살아왔다면 나는 창문 위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뿌린 씨앗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만들었다. 남편과 아이들도 관계가 어렵다면 모두 내가 뿌린 씨앗일 것이다.      


다시 내 잘못을 고민했다. 내 죄명은 “말하지 않은 죄”였다. 눈치 보고 참아온 내습관. 바다에 돌 던지면 물결이 일지만 금세 보이지 않듯이 내 상처도 그랬다. 나만 참으면 모두가 편했기에 참았고 그로 인해 편하게 돌을 던질 수 있도록 했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데, 모두 받아주는데, 멈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물에 돌 던져도 물은 상처가 보이지 않으니. 물속 깊이 쌓인 돌무더기 주인만 힘든 것은 당연하다.     


폭력의 시작은 이성적이라고 한다. 한 번 때렸을 때 상대방이 가만히 있으면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이성적인 생각. 내가 참아온 숱한 세월은 결국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내 죄였다. 그리고 나도 잘못된 습관을 실천하는 못난 사람이었다.      


바오밥나무의 뿌리 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기억이라고 불리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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