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한 노래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
다문화적인 배경을 가친채 자폐 스펙트럼 아이의 엄마로서의 역할이 겹치면서 이러한 고민은 더 깊어만 갔다.
오랫동안 나는 나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질풍노도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는데 정체성 혼란을 겪을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현실이 흔들리고 급변하면서 나의 정체성과 자아도 갈대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2년도에 받은 아이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은 30대 중반의 내가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영어 선생님 등 여러 이름표를 달아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했다. 아이의 발달지연을 겪으며 그 믿고 싶지 않은 현실 앞에서 난 매일 무너지고 있었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전무했다. 기도를 해봐도 원망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겪던 나는 현실도피라도 하듯 종종 대학교 때 친구와 함께 들었던 교양과목인 철학 강의를 떠올리곤 했다. 첫 강의의 주제였던 "What is real?" (현실이란 무엇인가)이란 교수님이 던진 화두가 잊히지 않았다. 존재론, 실재론, 인식론 등 다양한 관점을 배우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등에 대해 공부했는데 그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깊은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각자 그렇게 확고한 철학적 결론에 도달한 건지 너무나도 신기했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교수님이 던진 이 질문을 듣고 친구와 나는 곁눈질을 하며 피식 웃었다.
"뭐긴 뭐야. 지금 이 눈앞에 있는 게 현실이지"라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너도 나도 손을 드는 학생들이 주장하는 현실을 조목조목 반론 하는 교수님의 말에 우리의 웃음기는 싹 사라져 버렸다.
"저는 람보르기니를 타고 싶지만 돈이 없어요. 그게 제 현실이죠. 만약 람보르기니를 타고 있다면 그건 꿈일 테고요." 한 학생이 말했다. 그러자 바로 교수님이 반론했다 "네가 람보르기니가 없는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기세등등하던 학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순간도 꿈이라면? 지금 네 눈앞에 보이는 게 현실이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니?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진짜라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교수님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내 머릿속에 이런저런 반론이 떠올라 살짝 손을 들었다가 내가 내 생각에 가로막혀 다시 손을 내렸다.
99년도에 대흥행 했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올 법한 이런 질문과 생각을 우리는 평소에 단 한 번이라도 하고 살까. 별생각 없이 꽤나 안정적인 30대 아줌마로 살던 내게 아이의 자폐 스펙트럼이란 진단은 영화 속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현실이란 단순히 뇌가 해석하는 전기 신호에 불과할 수 있음을 설명하며 등장했던 씬처럼 나의 인생이란 판을 뒤집어놨다.
*매트릭스(The Matrix):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SF 영화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실제인지 시뮬레이션 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데카르트의 말.
그럼 나와 한 공간에 있음에도 등을 돌린 채 벽을 보고 웃고 있는 나의 아이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존재하고 있는 걸까. 말도 안 되지만 아이의 상태가 안 좋을수록 나는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며 이런 철학적인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안의 분열은 매일매일 커져만 갔다.
내 안의 코리안 맘이 구시렁거렸다. "쟤가 무슨 생각을 해 하기는. 존재고 나발이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이게 우리 현실인 거야? 왠 날벼락이야 이게. 죽고 싶다 진짜." 그러면 잠자코 있던 캐네디언 맘이 훈계했다, “너 그거밖에 안 돼?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줘야지! 네 아이가 좀 다르면 어때? 다르다고 틀린 거야? 너 캐나다 교육 다 잊었어?" 이런 식으로 나는 한 몸 안에 갇힌 두 엄마 인 채로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또 가슴 절절한 모성애가 넘치는 코리안 맘이 나섰다. “자식은 네 분신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거야? 엄마는 강하잖아. 엄마가 아이를 지켜줘야지!” 그럴 때면 캐네디언 맘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너의 행복을 찾아. 아이와 너를 동일시하지 마. 너의 아이와 너 자신을 각자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줘야 해." 그렇게 두 엄마는 매 순간 치열하게 싸웠고 나는 정체성이라는 중심 없이 이리저리 휩쓸렸다. 나를 모르겠으니 나의 아이가 누구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 와중 불행 중 다행히 세돌 정도부터 아이의 상호작용이 많이 좋아져서 난 좀 더 현실을 살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모르는 상태에서 듣는 아이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은 나를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트려 버렸다.
"로키는 자폐가 아니야"
"타고난 거지 뭐. 그리고 요새 자폐는 스펙트럼 이래잖아"
"너희 양육 스타일을 좀 바꾸면 좋아지지 않을까?"
등등 우리를 둘러싼 많은 얘기에 기분이 나빠야 할지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조차 막막했다.
모성애가 넘치지만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가득 한 코리안 맘과 다양성을 포용하지만 아이에게 너무 목메지 말라고 하는 캐네디언 맘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계속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지난 글에서 얘기했듯이 한 달쯤 캐나다를 다녀왔고 K 선생님을 만났던 것이 큰 변화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언젠간 돌아가려 했기에 도피처 같이 생각했던 캐나다에서도 아이와 함께 다니며 주눅이 들기도 하고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던 나는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편해야 아이가 편하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기본 공식 같은 이 말은 머리로는 알지만 모순 가득한 내 마음속에서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며 삶 속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행복한 삶을 가꾸어 나가기 위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신랑은 존재 자체가 본인의 정체성 아니냐며 꼭 정의를 내려야 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기필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왜 나는 군중 속 외계인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왜 우리 아이는 정상도 비정상도 아니라는 건지 꼭 알고 싶었다.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우리야"라고 하늘을 탓하던 자폐맘 초보 시절의 원망 섞인 의문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를 진정 알아내고 싶었다. 우리도 과연 어딘가에 속할 수 있을까?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곳이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라디오헤드의 노래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But I'm a creep, I'm a weirdo... I don't belong here, " (하지만 난 괴짜야, 난 이상한 사람... 난 여기 어울리지 않아).
*Radiohead(라디오헤드)-Creep: 이 노래는 소외감과 자기 비하를 담은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괴로움을 표현함
엉망진창인 나의 내면과는 다르게 해맑고 사랑스러운 로키는 로키만의 속도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한글도 쓰고 코딩도 배우는 6세 또래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며 일반 어린이집에서 유치원 특수반으로 옮기기로 결정을 하였다. 특수반 신청을 하고 심의를 통과하며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는데 이 현실이 나는 씁쓸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3년 넘게 이어져 온 예측 불가능 한 상황이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불안감을 더더욱 증폭시켜 왔었는데 드디어 우리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10년째 재외동포 거소증을 가지고 한국에서 생활하며 더 이상 한국인도 캐나다인도 아닌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장애아의 엄마도 비장애아의 엄마도 아니었다. 이 모호한 상태를 어떻게든 정의해야만 비로소 마음이 놓일 텐데... 해답이 절실했던 나는 나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기로 했다.
단번에 떠오른 건 나는 이상한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겉으론 수더분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단순히 “내성적인 성격이에요"라고 얘기하고는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비현실적인 감각이 들며 심장이 쿵쾅 대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어야만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신랑과 내가 단둘이 있을 때면 교포 특유의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언어를 구사하는데 내가 신랑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I'm so overstimulated right now" 일 정도로 과부하가 걸릴 때가 많다.
*I'm so overstimulated right now: 지금 너무 자극을 많이 받았어라는 뜻. 이 표현은 감각이나 감정이 너무 과도하게 자극되어 혼란스럽거나 불편한 상태를 나타낼 때 사용 됨. 예: 소음, 빛, 사람들, 정보 등 여러 가지 자극이 한꺼번에 들어올 때 쓸 수 있음
하지만 이렇게 감각적으로 예민한 내게 상반된 면도 있는데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애정하는 가수의 콘서트장을 가는 것도 즐긴다. 장르에 구분 없이 여러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내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렇게 흥겨운 나임에도 매너 없는 사람들이 쏙닥 거리고 부스럭거리면 아니나 다를까 신경이 곤두선다. 역시 제 아무리 아닌 척을 해봐도 나는 까끌거리는 스웨터가 불편하고 밝은 빛을 보면 두통이 오는, 이 세상의 오만소리가 다 들리는 참 예민한 사람이다.
나는 익숙한 잠옷만 고집해서 입는 편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여행지로 떠나는 것도 모두 예측불가 하기에 선호하지 않는다. 애초에 비행기 타는 것 자체가 무섭다.
학생일 때는 미세한 소음이 들리면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이어폰을 낀 채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공부했고 잘 땐 귀마개를 꽂아야만 했다. 이제는 좀 둔감화가 되어 귀마개는 필요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안대 없이는 눈이 부셔 잘 수가 없다. 물론 청각적으로 예민 해진 것에 불을 붙인 건 부모님의 잦고 격렬한 부부싸움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태생부터 무던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예고 없이 울리는 전화보다는 문자가 편하고 공적인 통화를 할 일이 생기면 혼자 미리 중얼중얼 연습을 해보고는 한다. 누군가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건 늘 당황스럽고 미리 잡은 약속이 펑크 나면 아쉽기도 하지만 나만의 시간이 생겨 내심 좋기도 한 지극히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이런 내가 교우관계에서 또 사회생활을 하며 불편함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엄마는 한결같이 내게 말했다, "넌 왜 그렇게 예민하니?" 엄마의 이런 반응에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반면 나처럼 예민한 구석이 많은 아빠는 모든 걸 포기하라고만 했다. "그럼 그 친구는 만나지 마, 그럼 그런 장소는 가지 마" 등 해결책이 아닌 회피를 제시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 논리가 내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대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 극심한 편두통을 달고 살아서 새벽에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그래서 이완 및 스트레스 완화에 좋다는 말에 요가를 시작했고 그 후엔 요가와 아로마 오일에 푹 빠져 있기도 했다. 심신이 안정되는 그 기분이 참 좋았고 그만큼 번잡스러운 곳은 내게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하기에 애초에 친구도 많이 없지만 날이 서거나 마음이 불편할 땐 방에 콕 틀여 박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행여나 나의 예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더더욱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에도 친구들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친구들과 가끔씩 어울리는 건 즐거웠지만 빈도가 잦아지면 연락을 피하고 방에서 컴퓨터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나가서 좀 놀아'라고 하던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나도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 따분해지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시를 쓰거나 도서관에 가고는 했다. 도서관의 그 고요함과 반드시 정리된 모든 것이 너무나도 안락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런 내게 짧고 꽉 끼는 옷을 입고 클럽에 가자고 조르는 친구가 이해될 리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잠시 회사원으로 일할 때에도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비효율적인 낭비라고 느껴졌고 근무시간 외에도 동료들과 왜 연락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지극히 개인주인적인 캐네디언 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comfort zone을 벗어나 성숙한 사회인이 되고자 더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주말을 잘 보냈냐며 궁금해하는 척하고 새로 한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일부러 칭찬을 건네보기도 했지만 나는 늘 사람인척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어쩌면 나는 평생 마스킹을 해왔을지도 모른다.
*comfort zone: 익숙해서 안전하지만 성장을 제한하는 영역
*마스킹(masking): 자폐 스펙트럼뿐만 아니라 ADHD, 불안장애, 내향적인 사람들도 사회적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거나 조정하는 행동
하지만 어느새 30대보다는 40대가 가까워진 나는 예민해 보이지 않으려 무던한 척하며 진짜 나의 모습과 아이의 독특함을 “고치려는 일"에 신물이 나고 있었다. 애초에 우리 아이가 사람이 아닌 망가진 로봇인 것 마냥 고친다는 개념이 받아들여 지지도 않았을뿐더러 남들에게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 그냥 우리가 우리이고 싶어졌다.
불편했던 나의 과거의 일화를 쭉 떠올리니 로키는 그냥 나를 닮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자신 안에 갇혀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적 거리는 문화센터에 가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춤을 추고 싶지는 않은, 딱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애초에 나도 신랑도 인싸와는 머나먼 선택적 은둔형 인간이니 말이다.
*인싸: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사회적으로 활동적이고 교우 관계가 넓으며 유행이나 분위기에 잘 적응하는 사람을 의미함
이렇게 아웃사이더인 우리 부부가 즐겨 보던 프로가 있는데 바로 The Big Bang Theory라는 시트콤이다. 범생이에 사회성이 떨어지는 천재적인 과학자 쉘던과 그의 여자친구 에이미의 일화들이 너무 웃겼다. 어느 날 문득 신랑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쉘던이랑 에이미가 아이를 낳으면 로키 같지 않을까? 우리가 쉘던이랑 에이미 아니야?” 나는 큭큭큭 웃다가 영화 트루먼 쇼 속 짐캐리가 모든 걸 자각 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The Big Bang Theory: 2007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된 미국의 시트콤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감정적 문제에서 종종 서투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림
*트루먼 쇼(Truman Show): 주인공 트루먼이 자신의 삶이 실제가 아닌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상의 TV 쇼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야기
"나도 참 별나지만 우리 신랑은 더 한데? 더 뚝딱인데? 로키는 그냥 우리 둘을 합쳐 놓은 거잖아? 우리 가족 다 신경다양인인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중에 또 다룰 얘기이지만 사실 우리 신랑은 약 1년 전에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는데 모든 게 다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감각적 예민함, 사회적 마스킹, 감각적 과부하 같은 것들과 신랑의 ADHD 특징을 다 합하면 신경다양인이 탄생하지 않을까?
*성인 ADHD: 주의력 부족, 충동성, 과다 활동성 등으로 일상생활과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신경 발달 특성
처음에는 그저 자스맘으로서 스쳐 지나가듯 배운 이 주제에 나는 점점 더 매료되었다. 어쩌면 우리 세 식구는 English man in New York 일 뿐인데 여태 우리 자신을 creep이라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랑해 주지도 지지해 주지도 못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nglish man in New York: 1987년 스팅(Sting)의 유명한 곡으로 영국인인 스팅이 뉴욕에 이방인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짐
*creep: 라디오헤드의 노래 제목이자 괴물,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
나는 더 이상 로키가 어떤 색깔인지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진단 이후 내가 꼈던 흑백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로키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있는 그대로 본인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자 목표가 생겼다.
우리 가족 모두가 신경정형인과는 조금은 다른 신경다양인 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 해졌다. 우리는 외계인도, 이상한 사람도 아닌 그저 우리라는 게 드디어 내 안에서 받아들여졌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 세 식구의 행복한 미래를 다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밤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우울증 약 없이도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