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동안 틈날 때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 – 웃으며 춤추는 연습을 했다. 웃는 데 집중하다 보니 안무를 자꾸 잊어버렸다. 안무는 못 외워도 된다고 했지만, 어찌 안무를 외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안무와 순서를 생각하며 연습했더니 역시나 굳은 얼굴이 되었다. TV를 보고 책을 읽으며 동시에 밥을 먹을 정도로 멀티태스킹에 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보다. 안무를 기억하며 미소를 유지하는 간단한 두 가지가 한 번에 안 되다니... 타고난 몸을 원망했지만 방법이 있나, 그저 더 연습할 밖에...
1주일이 지나고 숙제 검사를 받았다. 안무와 웃는 얼굴, 동시에 신경 쓰느라 삐걱댔지만 어쨌든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선생님은 두 번째라 그런지 여유가 있다며 칭찬했다.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환한 미소가 자연스럽다며 역시 두 번째라 다르다고 또 칭찬이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공연 당일, 확실히 첫 번째보다는 덜 떨렸다. 정말 두 번째라 여유가 생긴 걸까? 아무래도 무대가 훨씬 작은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무대에 압도되지 않으니 긴장이 좀 덜 되었다. 예쁜 의상을 입게 된 것도, 메이크업이 잘 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다른 댄서들에 비하면 여전히 소박했지만 적어도 저승사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왠지 잘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파트너가 아직 안 왔다. 정해진 시간에 리허설을 해야 되어서 혼자 무대에 올랐다. 리허설이 끝난 뒤 전화를 하니 아직도 미용실에 있다고 한다.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는가. 기왕에 하고 있는 거, 예쁘게 하고 오시랄 수밖에... 그녀는 전화를 끊고도 한 시간쯤 지나서 도착했다. 미용실에서 늦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추어 댄스 공연이 아니라 미스코리아 경연에라도 참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화려한 메이크업과 멋진 헤어를 한 댄서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다른 아이들이 아무리 예쁘게 화장과 머리를 한다고 해도 그래봤자 엄마들이 해주는 거라 전문가가 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우리 팀이 눈에 띄니 다행이라고 쳤다. 화를 가라앉히고 같이 연습하자며 밖으로 나왔다. 조금 있으면 마지막 리허설인데 적어도 한 번은 맞춰봐야 했다. 연습은 절망적이었다. 그녀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안무를 다 외웠고 둘이 잘 맞았던 것 같은데... 밤새 모두 잊어버렸나 보다. 갈수록 내 얼굴은 굳어만 갔다. 미안하다는 사과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번째 공연도 망칠 것 같다는 불안감만 커졌다. 몇 번의 연습을 더 하고 리허설을 마쳤다. 다행히도 그녀는 안무가 기억이 난 듯 제법 잘 맞췄다. 이번에는 내가 문제였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도무지 돌아오질 않았다. 화는 풀렸지만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떨림이 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라 여유는 무슨...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반면에 그녀는 여유가 넘쳐 보였다. 넘어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등 농담을 하며 나를 웃게 만들려고 했다.
우리의 순서가 되었다. 옆에 있었기 때문에 앞만 보는 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여유가 느껴졌다. 나도 한결 편안해졌다. 갑자기 객석에서 환호와 웃음이 터졌다. 아마도 그녀가 뭔가 재미있는 걸 했나 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따라서 같이 웃게 되었다. 곧 다시 어색한 얼굴로 돌아왔지만... 어쨌든 웃으면서 공연을 마쳤다.
분장실에서 그녀는 내 덕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며 고마워했다. 아까는 자신이 실수를 해서 사람들이 웃었다며 미안하다 했지만 덕분에 나도 웃었기에 내가 더 고마웠다.
아들이 공연을 보러 온다고 해서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그녀의 바람은 성공한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난 후 아들에게서 가장 크고 예쁜 꽃다발을 받았다.
나도 나름 성공했다. 어쨌든 잠깐이나마 웃으면서 춤을 췄으니까. 잠시 후 더 큰 성공이 있었다. 마지막 전체 인사 때 팀 별로 다시 무대에 올라 인사 겸 간단히 15초쯤 춤을 추었다.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관객에게 인사했다.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진심으로 즐거웠다. 나중에 영상을 확인해 보니 본공연보다 무대 인사할 때 훨씬 더 잘해 보였다. 15초에 불과했지만 무대에서 즐긴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댄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