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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Sep 24. 2023

댄스맘으로 산다는 건...

엄마의 꿈을 사는 아이


춤은 모든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춤을 배울 수 있는 건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입니다. 춤을 춘다는 건 너무나도 멋진 선물이자 재능입니다. 선물을 주신, 그리고 댄서가 될 꿈을 키우게 해 준 부모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 레인 프란시스 (춤을 추게 만드는 부모에게 감사해야 할 11가지 이유 중에서)


  두 번의 공연을 하면서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또 그들의 엄마들과도 안면을 트고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다들 예쁘고 귀여웠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었다.  여덟 살의 혜진이도 눈에 띄는 아이 중의 하나였다. 사실 처음에 혜진이를 봤을 때는 춤을 배우는 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큰 덩치 때문이었다. 1년 넘게 벨리 댄스를 배웠으면서도 아직도 그런 편견이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혜진이가 예쁜 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원 아이들은 공연, 대회 등을 위해 화려한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하는 등 예쁘게 꾸미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평소에도 화장을 하고 예쁜 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혜진이는 평소에 옷도 머리도 표정도 수수해서, 춤에 별로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공연 당일, 혜진이는 멋진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건 아닌지, 저러다 안 한다고 우는 건 아닐까 쓸데없이 걱정했는데, 진짜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무대 위에서 혜진이는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었다. 나는 며칠을 연습해도 안 돼서 절망했던 안무를 혜진이는 너무도 쉽고 예쁘게 하고 있었다. 흥미 없는 것처럼 뚱해 보였던 표정은 무대 위에서 도도하고 새침한 댄서의 표정이 되었다. 여덟 살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알고 보니 혜진이는 다섯 살 때부터 춤을 배운 한참 선배였다. 그것도 원래는 네 살 때부터 시작하려고 했단다. 혜진이 엄마는 네 살 꼬마였던 혜진이의 손을 잡고 학원에 왔다고 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를 가르칠 자신이 없었던 선생님은 말이라도 잘하게 되면 보자며 돌려보냈다. 진짜로 1년 후에 유치원에 다니게 되자 엄마는 다시 혜진이를 데리고 왔다. 이제 어느 정도 말이 통하게 되자 선생님은 혜진이를 가르치게 되었다고.

혜진이 엄마는 왜 말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춤을 가르치려고 했을까? 아직 20대인 젊은 혜진 엄마의 꿈은 발레리나였다. 발레리나의 꿈을 이뤄가던 중에 의도치 않게 혜진이를 임신했고,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얼마 후 태어난 혜진이는 사랑스러운 아기였지만 그만큼 밉기도 했단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만든 원인이 혜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좌절감을 모두 혜진이에게 풀었다고 했다. 혜진이는 표정이 어둡고 우울한 어린이가 되었다. 어느 날 거울 속 자신의 불행한 모습과 혜진이의 불행한 모습이 똑같아 보였다. 그제야 자신이 혜진이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즉시 혜진 엄마는 안 되겠다며 말도 못 하는 혜진이를 무용학원으로 끌고 왔다.



다섯 살의 혜진이는 유치부가 없어서 초등학생 언니들과 같이 수업을 받았다. 수줍어서 말도 못 하고 언니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지만 금방 따라잡았다고 한다. 역시 엄마의 DNA를 물려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혜진이가 배우는 걸 지켜만 보던 엄마도 곧 성인반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혜진이를 집에서 연습시키기 위해서 직접 배우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곧 엄마가 더 좋아했다. 엄마가 즐거워지니 혜진이도 즐거워졌다. 공연 연습도 해서 엄마와 딸이 같이 무대에 서는 건가 했는데 아쉽게도 둘째를 임신하는 바람에 곧 그만뒀다고. 하지만 더 이상 절망스럽지도 아기가 밉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둘째가 아직 아기라 아직 못하고 있지만 꼭 다시 하겠다고 한다.

조만간 엄마와 딸의 무대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림 출처: https://www.danceinforma.com/2015/04/01/11-reasons-thank-dance-mom-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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