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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Sep 25. 2023

댄스맘으로 산다는 건... 2

딸의 꿈은 나의 꿈

댄스맘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딸이 공연이나 대회에 참가할 시점이 되면 이제 화장이나 옷과 관련해 많은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스팽글을 달거나 끈을 조절하는 단순한 일도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만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일들이 저절로 되지는 않으니까요.

    - 레인 프란시스 (댄스맘에게 감사해야 할 11가지 이유 중에서)



  4학년인 은비는 눈에 띄는 아이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예쁜 얼굴도 멋진 춤도 눈에 띄었지만, 특히 환하게 빛나는 미소가 눈에 띠는 아이였다. 은비는 엄마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 은비 엄마는 화장을 전혀 안 하고 옷도 아주 수수하게 입고 다녔다. 첫 번째 공연을 하던 날, 무전기를 들고 무대 뒤에서 동선과 조명을 체크하는 그녀를 보고 공연장 스탭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아이들의 엄마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도 은비의 엄마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만큼 그 둘은 안 닮았다. 은비의 뛰어난 춤솜씨와 환한 미소가 어디에서 온 걸까 궁금할 정도였다.

은비는 벨리댄스를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는데 벌써 지역 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다. 춤을 잘 추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표정연기가 뛰어났다. 은비가 활짝 웃으며 춤을 출 때는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연습을 한다고 해도 은비처럼 춤을 출 수는 없겠지만 그 아이의 표정 연기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안 되면 환한 미소라도 닮고 싶었다.

은비를 닮고 싶은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늘 그 아이가 무대 위에서 입는 옷, 화장법 등이 화제였다. 알고 보니 은비의 옷은 모두 엄마가 만들어주는 거였고, 화장 역시 엄마가 직접 해준다고 했다. 은비 엄마도 처음에는 메이컵 전문가에게 딸의 화장을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공연과 대회에 참가하는 숫자가 늘어나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직접 해주기로 했다고. 그런데 은비 엄마는 화장을 안 하고 다녔기 때문에 화장하는 법을 잘 몰랐다. 딸을 위해 문화센터나 화장품을 파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배웠고, 또 유튜브를 보며 공연 화장법을 익혔다고 한다. 공연복 또한 처음에는 기성품을 사서 스팽글이나 반짝이만 더 붙여주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좀 더 예쁘고 화려한 옷을 만들어 주고 싶었고, 아예 직접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옷 만드는 법 역시 동대문 시장의 공연복 장인에게서 직접 배웠단다. 은비가 무대에서 빛나는 건 춤을 잘 추고 예쁘게 웃어서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 아이의 옷도 더 빛이 나고 있었던 거다.



  은비 엄마처럼 춤추는 자식을 열성적으로 지원하는 엄마들을 댄스맘(dance mom)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자식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삶은 가뿐히 버릴 수 있었던 스카이 캐슬의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딸이 무대에서 좀 더 돋보일 수 있게, 좀 더 예쁘게 춤을 출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본인의 삶은 거의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은비 엄마는 딸이 학원에 올 때 늘 함께 왔다. 와서는 딸이 연습하는 걸 확인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옆방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공연복에 스팽글을 붙이거나 했다. 은비는 재능도 있었지만 열심히 연습하는 아이였다. 거의 매일 학원에 와서 몇 시간씩 연습을 했으니, 은비 엄마도 매일 몇 시간씩 학원에 같이 있었던 거다.

이런 엄마들을 보며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왜 딸의 꿈을 위해 본인의 삶을 희생하는지... 왜 본인의 성취가 아닌 딸의 성취를 통해 행복을 느끼려 할까? 이해가 안 됐고, 안타깝기도 했다. 어쨌든 은비의 옷이 부러웠기에 다음 공연에는 내 옷도 부탁했다. 사실 이미 은비 엄마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난번 공연의 메이크업은 은비 엄마가 해줬다. 덕분에 저승사자 같은 모습은 피할 수 있었다. 


4학년이었던 은비는 지금은 고등학생이다. 그동안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대상도 몇 번 받았다. 강사 자격증도 따서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베트남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도 참가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다. 은비의 엄마는 여전히 딸의 옷을 만든다. 화장은 이제 은비가 직접 한다.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 은비 엄마는 딸의 옷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옷도 만들고 있다. 우리 학원 사람들 옷은 물론이고, 은비의 공연복을 보고 문의가 늘어 이제는 주문을 받아서 제작, 판매하고 있다. 지난 6년, 은비의 춤이 발전하는 동안 은비 엄마는 공연복 전문가가 다 되었다. 딸을 최고로 돋보이게 만들려던 노력과 솜씨를 다른 사람의 옷에도 발휘하고 있다.

6년 전 은비 엄마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내가 자신만의 꿈을 실현하려는 동안, 은비 엄마는 딸의 꿈을 도우면서 본인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은비가 누구를 닮아 그렇게 멋진 댄서가 되었는지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은비가 엄마로부터 배운 재능은 춤 솜씨와 표정연기가 아니라, ‘노력하는 힘’이었다.



그림 출처: https://www.adanceplace.com/dance-parents-t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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