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엄마들
아이들에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걱정하라고 가르치기 전까지, 아이들은 즐겁게 춤을 춥니다.
-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
두 번째 공연이 끝나고 1주일 뒤, 무사히 공연을 마친 자축 겸 송년회 겸, 그동안의 노력을 칭찬하는 파티가 열렸다. 공연 참가자의 대부분이 어린이들이었으니 파티 참가자도 거의 다 어린이와 그들의 엄마들이었다. 보호자가 아닌 성인은 선생님과 나, 딱 두 명뿐이었다. 함께 무대에 올랐던 파트너는 아쉽게도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시 볼 수 없었다.
학원에 모여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날 누가 잘했다', '누구 의상이 정말 예뻤다', '화장이 잘 됐더라.' 이런 말들을 주고받다 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연 때 했던 춤을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유치부 아이들부터 시작했다. 한 번 해보라고 시킬 필요도 없었다. ‘XX이가 그날 정말 예쁘게 잘했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칭찬의 주인공이 일어서더니 음악도 없이 그날의 춤을 다시 보여줬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누가 말하기도 전에 일어서서 자신의 춤을 자랑했다. 유치부 아이들과 초등 저학년의 순서가 모두 끝났다. 이제 스스로 일어나는 아이는 없었다. ‘OO이도 한번 해봐. 너도 잘했잖아’라고 엄마가 부추기자 그제야 초등 고학년 어린이들도 일어서서 본인의 춤을 보여줬다. 개중에는 엄마가 아무리 옆구리를 찔러도 고개를 흔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백 명의 관객보다 동료들의 눈이 더 무서웠던 걸까? 아니 의상과 화장, 조명 없이는 나의 춤을 보여줄 수 없다는 프로 정신이었던 걸까?
모두들 환호하며 즐겁게 댄스파티를 즐기는 와중에도 웃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나였다.
‘혹시라도 아이들의 순서가 끝나고 나도 한번 해보라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바쁘다고 말하고 일어설까, 그냥 조용히 사라질까’ 고민되었다. 적극적인 아이, 소극적인 아이, 끝내 거부하는 수줍은 아이까지 모든 어린이들의 순서가 끝났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땀이 나고 공연 전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나를 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이나 그들의 친구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마 선생님이 나도 한번 해보라고 했지만, 파트너가 없다는 변명과 프로 정신을 언급하며 손사래를 쳤다. 선생님도 두 번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나를 건너뛰고 선생님의 춤으로 댄스파티의 공연이 끝났다. 이제 공연 음악이 아닌 그냥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역시나 가장 어린아이들이 나와서 안무가 아닌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진정한 파티 타임이다.
신나기는 했지만 안무가 없어서인지 초등학생들도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데 엄마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공연 때마다 아이들의 의상과 화장을 담당하고, 무대 뒤에서 동선을 체크하는 등 스탭처럼 일하는 엄마들이었다. 예쁘고 화려한 아이들에 비해 화장기 없고 아무 옷이나 입는 엄마들은 상대적으로 늘 초라해 보였다. 늘 아이들의 멋진 공연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만 봤던지라 그냥 아이들로 대리 만족하는 엄마들로만 생각했었는데...
아이들의 끼가 어디에서 왔을까? 그날의 엄마들은 그동안 보았던 무대 뒤의 아줌마들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신나게 본인의 흥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안무도 의상도 화장도 필요 없었다. 변명이나마 프로 정신 운운했던 내가 참으로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신이 난 엄마들 틈에서 나도 일어섰다.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안무 대로 잘하지 않아도 진짜로 즐거운 춤을 맘껏 출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날은 3년 가까이 학원을 다니면서 보냈던 수 백 시간 중에서 가장 나 다운 춤을 춘 시간이었다.
그림 출처: https://www.thespruce.com/how-to-plan-a-musical-party-for-kids-1197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