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04
여행을 가기 위해 휴학 후,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같이 일하며 친해진 A는 내게 일이 끝나고 가는 자신만의 단골 술집이 있다고 자주 말했다.
"새벽에 그곳에 가서 먹태 하나에 맥주를 마시면 맛이 죽이지!”
때때로 주말에 혼자 그 술집에 가서 소주를 몇 병이나 마셨는지 자랑스럽게 말해주기도 했다. A는 말했고 나는 들었다.
우리는 일하는 시간이 많이 겹치지 않았으나, 때때로 술집 마감 조로 함께 편성되는 날이 있었다. 손님들이 술잔을 다 비우면 가게의 문을 닫았고, 정리를 마칠 때 즈음이면 새벽 1시가 넘는 깊은 시간이었다. 우리처럼 일이 늦게 마치는 사람들을 위한 술집들이 근처에 몇 있었다. A가 말하는 건 바로 그런 술집이었다. 밤이 아니라 새벽에 열려있는 술집들.
A는 소믈리에였지만 와인을 그리 좋아하진 않다며, 소믈리에의 ‘소’는 소주의 '소'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웃었다. 소주를 좋아하기 때문에 와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사뭇 심각하게 주장했다. 함께 술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친했지만,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사이가 더욱 각별했다. 나와 A도 20대 중반의 동갑이라는 나이가 친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낯을 많이 가려 초면인 사람과 말을 잘 섞지 않았지만 A는 꾸준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너랑 친해지기 무척 힘들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을 덧붙이며.
우리는 느낌 있는 날엔 일을 마치고 늦게까지 열려있는 술집을 많이 찾아다녔다. 간장새우, 육회, 고기, 회 등 많이 돌아다녔지만 가장 좋아했던 곳은 양꼬치였다. 여긴 양꼬치 향이 세서 좋다고 말하며, 술잔을 짠 하고 부딪혔다.
이처럼 맛있는 안주와 술을 좋아하는 A가 말하는 단골 술집이라는 장소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집과 가까울 것, 원하는 시간에 열려 있을 것, 내가 좋아하는 시그니처 안주가 있을 것 마지막으로 혼자 마시기 부담스럽지 않을 것.
지금에서야 혼술, 혼밥이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이때는 아직 아니었다. 우리 나이대의 혼술은 정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사람들과의 술자리만을 좋아하고 분위기로 술을 마시는 나에게 혼자 술 마시는 단골술집이라는 개념은 생소했지만 흥미로웠다.
어느 날, 저녁부터 함께 술을 마셨지만 많이 취하지 않았다. 말이 나온 김에 A가 사는 동네에 위치한다는 단골 술집에 가자고 해서 갔다. 허름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A의 시그니처 메뉴인 먹태와 생맥주를 주문한 후 A는 사장님과 반가운 듯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가게에서 파는 먹태와 많이 다르네" "그치?"
맥주잔을 부딪쳤다.
"먹태는 마요네즈에 간장을 조금 부은 후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서 넣어야지. 지금 나오는 소스, 이것도 내가 이 가게에 알려줬어.”
으쓱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매콤한 갈릭소스도 같이 나왔다. 새벽 5시 가게 마감시간에 맞춰 우리도 나왔다. 첫 차가 다닐 시간이었다. 취기 때문인지 바람이 시원했다.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분위기 때문이었기에 혼자서 마실 일이 없었다. 언젠가 혼자 집에서 소주를 마셔보았지만 속이 쓰렸고, 분위기가 나지 않아 한두 번 마시다 그만두었다. A에게 단골 술집 이야기를 들은 이후, 가끔 한 번씩 집 근처 술집을 찾아가 보았다. 많은 술집에 비해 새벽까지 열려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열려있는 몇 군데 방문하였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직 단골술집을 찾지 못했지만, 나에게 혼자 마시는 술의 느낌을 알려준 A가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