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울에 휩싸인 나의 정신과 일기 #5

자살이 허기진 밤 #048

by GSR
250127_170204_CHR06098.jpg


때때로 집이 잠만 자는 공간이 된 듯, 일이 바빴다. 가끔씩 약도 먹지 못했다. 한동안은 야근을 계속해야 했다. 아직 나는 우울이 삶의 바쁨을 이기지는 못했다. 감정은 바쁜 몸보다 우선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직 한계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기도 했다.


정신과와의 예약이 가까워질 때, 방문 전 제출해야 하는 나의 상태를 체크하는 질문지를 보내준다. 나는 내가 제출한 것에 대해 간단하게 상태를 체크하게 된다. 이번에 낸 건 미래에 대한 생각이었다. 앞으로 나의 삶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메인이었다. 벡 절망감 척도 질문이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바빠서 감정이 날뛸 시간이 없었다. 내가 먹는 약이 나에게 잘 안 맞는 탓이었을까? 먹어도 나는 그리 나아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다만 감정이 계속 차분해지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 내게 영향을 미치는 건 거의 없어 보였다. 의사는 약의 수치를 절반정도로 줄였다.


앞서 말했던 벡 절망감 척도에 대해 내게 이야기했다. 20개의 질문 중 15개의 이상이 절망적이면 심각한 수준의 절망감이라고 했다. 나는 예전보다 1점이 낮아지긴 했지만 17~18점 이상이었다. 나는 딱히 절망을 느끼지는 않는다. 미래에 대해 답이 없으니까 답이 없다고 담담히 생각할 뿐이다. 수입이 적으니 더 나은 삶을 기대하지 않고, 정신과를 포함해 아픈 곳도 많으니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런 기대도 점차 버려가고 있었다.


이것도 절망일까? 개인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회적인 문제도 함께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이게 절망감일까? 나는 그냥 인정하는 건데. 사회적, 개인적인 생각이 나의 배의 구멍을 냈고, 나는 그냥 점차 가라앉는 배 위에서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을 뿐. 그래서 이건 나의 우울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미래에 대해 수긍했을 뿐. 개선되면 좋겠지만, 안되면 뭐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으로 지낼 뿐이다.


때때로 우울증을 이겨내는 모든 노력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결국 자기 합리화를 동반한 멘탈을 개선시키는데 의의가 있는데 기존 삶이 그대로인데 언제든 나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멘탈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현재 삶에서 내가 개선될 의지가 없으니, 나는 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유리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아지지 않는 병을 치료하려고 애쓰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 아직까지는 나의 삶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친한 관계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