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55
스트레스를 풀 수가 없다. 소리를 지를 수도, 무언가를 때릴 수도 없다. 나의 모든 버티기 위한 몸짓이 고무줄 같아서 끊어지면 반동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 날카로운 신경질 속에서 나는 살고 있다. 목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소리 지르고 싶다. 내손이 박살 날 때까지 막대기로 나무를 때리고 싶다. 가로막을 것들을 밀쳐내며 달리고 싶다. 하지만 여기는 너무 복잡하여 쉽게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가고 해소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농축되어 간다. 농축되고 농축되어 끈적한 아교같이 변한 그것은 나에게 들러붙어 떨어져 나갈 수 없게 만든다. 말에, 몸에, 눈빛에, 어깨에 들러붙고 있다. 이 넓은 도시에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삶은 10까지 숫자가 있는 주사위를 굴리는 것과 같다. 삶의 순간순간에 다가오는 선택 모두 기도하며 주사위를 굴린다. 나는 늘 높은 숫자만 바랬다. 한번 굴렸다가 높지 않거나 애매한 숫자가 나오면, 한 번만... 한 번만 더. 8이 나와도 9가 아쉬워서 한 번만. 그렇게 낮은 숫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잘못되었다는 걸. 3이 나와도 그걸 껴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한번 던져진 주사위를 다시 굴리려면 시간이 걸리고 기회가 낭비된다. 9를 원하다가 8이 2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다시 몇 번 굴린 주사위들은 결국 하나다. 그렇게 선택과 번복이 켜켜이 쌓인 후, 뒤돌아 보면 내가 굴린 주사위는 너무나도 적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는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오히려 나를 더 나락으로 침전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순간을 견디고 있다. 삶의 부정적인 면도 수긍한 채,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한 채. 나는 회사에서 오래 근무 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바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이, 하나의 길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버티고 서 있는 사람들을 나는 긍정한다. 나는 책임을 모르고, 쉽게 질려하며, 모든 것을 재미로 치환한다. 그러니 그런 일들은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인 것으로 생각이 든다. 나는 이미 나를 견디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은 견디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나는 나 하나 감당하는 것도 무척 힘이 든다.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긍정한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긍정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모두 장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은 도저히 긍정할 수 없다. 남들이 쉽게 하는 것들도 나에게는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 아마 툭 던진 조언들도 마찬가지로. 과거? 힘드니까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해. 성공하고 싶어? 그럼 차근차근 시작하고 꾸준히 한다면 잘 될 거야. 하지만 나에게 그런 조언들은 알면서도 내 삶에 반영할 수 없다. 나에게 과거는 후회와 절망덩어리지만 감히 떼어낼 수 없고, 미래는 이미 어두워서 앞길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잠시 서서 숨을 고르면 과거는 머리를 잡아먹고 미래는 손발을 묶는다. 나의 스트레스는 여기서 기인한다. 이도저도 못한 채 잠식하는.
때때로, 떨쳐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 사람들은 술을 흐드러지기 위해 마시지만, 나는 오히려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에 충실하게 된다. 삶이 나에게 고양감을 준다. 뭔가 더 열심히 살고픈 느낌을 주는 건 아이러니하다. 하하. 난 왜 이렇게 인생이 역방향일까? 나의 후진은 엑셀일까. 자조해 보지만 아무도 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오늘도 한잔, 내일도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