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크로아티아에서 로마의 향기를 맡다
자그레브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오늘은 크로아티아의 관광도시인 스플리트(Split)로 이동하는 날이다. 크로아티아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과는 달리 철도보다는 버스교통이 더 발달한 나라이다. 사실 크로아티아는 차를 렌트해서 돌아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혼자 여행을 오다 보니 비용면에 있어서 차를 빌리는 건 좀 무리다 싶었다.
버스의 경우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에 자그레브에서 스플리트로의 이동은 국내선 비행기를 선택했다. 한국에서 미리 항공권을 예매했는데 버스 요금보다 약간 더 비싼 가격으로 5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비행시간은 45분으로 5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에 비해 효율적이라고 할까?
암튼 호텔 조식을 든든히 먹고 짐을 챙겨서 트램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 후 자그레브 공항으로 향했다.
자그레브 공항은 한 나라의 수도답지 않게 공항 규모가 아주 작다. 한국에서도 자그레브로 오는 대한항공 직항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지방 공항 정도의 규모이다.
공항이 작다 보니 몇몇 게이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버스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크로아티아 항공이 내가 탈 비행기다.
자그레브에서 스플리트까지 비행시간은 약 45분. 우리나라 국내선 거리인데 요렇게 물 한 컵 떨렁 준다. 음료수 같은 선택권도 없고 그냥 단지 물.
스플리트 공항은 자그레브 공항보다 더 작은 규모로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관계자를 따라 걸어서 출구로 나가게 된다.
공항에서 크로아티아 항공 셔틀버스를 타면 스플리트 선착장 앞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미리 예약한 숙소는 걸어서 2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데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예약한 숙소를 찾는데 무려 1시간이 걸렸다. 알고 보니 내가 예약한 호텔스닷컴에 명시된 숙소명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미리미리 사이트에 업데이트 좀 하지....)
이래저래 기분도 상하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창밖에 보이는 해변을 모습에 모든 것이 사르르 잊히는 순간이었다.
자그레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에 숙소에 짐을 풀고 아주 얇은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스플리트에 도착한 날은 8월 29일. 한국에서는 폭염이 끝나고 서늘한 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이곳은 정말 무더위 그 자체였다. 그나마 습도가 높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반나절 돌아다니고 나니 피부가 약간 익을 정도로 햇살이 강렬했다.
스플리트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라는 곳이 있다. 지금은 유적지로 남아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궁전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오래전 궁전의 자리라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의 황제인데 왜 이곳에 궁전을 세웠을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낼 곳으로 스플리트를 선택했고 퇴위하기 10년 전부터 스플리트에 궁전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궁전이 완성되고 난 후 6년 뒤에 생을 마감하여 실제로는 이 궁전에서 보낸 날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암튼 그래서 그런지 뭔가 로마 콜로세움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시대 병사의 모습을 한 건장한 사내들이 보인다. 이 녀석들도 혹시 로마 콜로세움 앞에 있는 병사들처럼 친하게 사진 찍어주는 척하다가 찍고 나면 돈 달라고 하는 건 아닐지...
크로아티아에서는 길냥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사람을 피하는 한국의 길냥이들과는 달리 자리에 딱 붙어서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 아주 여유롭기 짝이 없다. ㅎ
스플리트는 과거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한쪽에는 작은 쇼핑몰이 밀집해 있는 신도시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 투즈마나 광장이 나오고 사진 속 가운데 길로 올라가면 스플리트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마르얀 공원으로 향한다.
더운 날씨 탓에 땀이 좀 나긴 했지만 마르얀 공원까지 올라가는 길은 크게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언덕길이었다.
산, 마을, 바다... 3박자가 어우러진 스플리트의 전경을 보니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르얀 공원을 내려와 해변에 앉아 크로아티아 로컬 맥주로 목을 축인다.
저 맥주 한 캔을 마시는 동안 많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뭔가를 버리고 오는 그런 여행을 많이 했는데 이번 여행은 여행이라는 것이 꼭 비우기 위함이 아닌 뭔가를 채워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돌아가면 더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그런 긍정의 힘이랄까?
그런 좋은 기운을 흠뻑 받으며 그렇게 스플리트의 첫날이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