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분명 색깔이 있어서
투명한 빗방울의 색깔을 보려
나는 귀를 기울이고,
나는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분명한 소리로
빗물의 색깔이 보인다.
토닥토닥- 하는 비는 맑은 초록빛
주룩주룩- 하는 비는 짙은 회색빛
우르르 쏴아- 하는 비는 한치 아래도 보이지 않는 황토색, 흙빛이다.
조금 높은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멀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늘은 거세게 흐르는 흙빛 빗물의 속살이
들리지 않는다.
그저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
그리고 실감나지 않는 거리감.
이 차디찬 감각의 마찰 속에서
삶의 터전을 덮친 흙탕물은
도무지 가라앉을 줄을 모르고,
그래서 나는 다시 귀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이고.
그러다 금세 피곤해진 귀를 닫으니
이제는 가끔만, 겨우, 들린다.
우르르 쏴아- 하는 소리가
와르르 으악- 하는
절규로, 누군가의 울음으로, 탄식으로.
충분히 길고 매서웠으니
이제는 발뒤꿈치 아래서만 겨우 찰방거리는
나의 가벼운 빗소리만 들렸으면 좋겠다.
토닥토닥- 토닥토닥-
아픈 이를 위로하는 그런 빗소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