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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구마 Jan 25. 2021

차구마 일기 21

이제 카페에 앉을 수 있다. 헬스장은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 확진자 증가세가 줄어 '거리두기' 규제가 조금 풀렸다. 카페와 헬스장, 모두 나와 친숙했던 곳들이다. 약간의 불안감이나 아직 남아있는 찝찝함과는 별개로, 어쨌든 내 생활 반경이 조금 더 늘어난 셈이다. 이제 카페에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몸이 뻐근한 날엔 헬스장에서 땀을 뺄 수도 있다. (쌓아둔 근육이 없어서 근손실이 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나는 우선 이 정도의 일상이라도 되찾을 수 있음이 고맙다. 


이런 소소한 일상을 찾는 데 벌써 몇 주가 걸렸다. 그간 많이 불편했다. 일상의 한 부분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어 억울한 일이었다. 괜히 억울하고 조금 불편했을 뿐이었던 나의 몇 주, 고작 그 몇 주가 누군가에겐 끔찍하게 불행했던 시간이었을 거다. 나의 불편은 견딜 만하지만 당신의 불행은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당신들은 거리로 나왔다. 다시 문이 열렸다. 그제야 당신들의 숨통이 조금 트인 것 같았다. 


슬프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나의 불편과 당신의 불행은 간극이 너무 멀거나, 사실은 전혀 와 닿지 않아서, 우리는 금세 불편하고 불행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아득한 불행으로 다시 밀어 넣거나, 당신을 지옥에서 건졌다가 다시 빠뜨리길 반복하거나, 결국 건져낼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당신을 던져버린 후, 나는 그렇게 당신을 죽일지도 모른다. 고백하건대, 나는 잠재적 살인자다. 나의 안일함, 그게 가장 억울한 살인이 될 수도 있을 테다.


참아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금세 풀어진다. 나는 언제까지나 고작 불편할 뿐이고, 그래서 슬금슬금 나가고 만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고 싶어지겠지. 그래서 이 질병이 더욱 무서워진다. 사람을 죽이고 사람됨을 무너뜨리는 질병. 우리의 인류애와 이타심을 시험하는 그런 질병. '나만 아니면 돼'는 게 아닌 그런 질병. 이런 종류의 전염병 앞에서 우리의 한계는 적나라하다. 나의 불편이 당신의 불행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 다만 다행히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짐들 역시 여럿 있다. 조금 더 조심할 것. 한 번 더 참아볼 것. 끝까지, 기어이, 불편할 것. 우리는 이 질병의 마지막까지 결백하자. 더는 누구도 죽이지 않기 위해서.


오랜만에 들른 카페에 사람이 꽤 북적인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꼭 낀 채로 웅성거리고, 홀짝거린다. 한낮의 햇살이 카페 안을 따뜻하게 비춘다. 카페는 소란한 듯 고요하다. 나는 그 작은 소란 속에서 죽어가던 당신의 미약한 숨소리를 다시 듣는다. 더 깊고 고른 숨소리가 오래 들리길, 나는 커피를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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