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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쉼터

12마리의 아기들을 위해

by 구르미


조금 전 사랑이의 사연을 들으면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고 잠깐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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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날 때부터 강아지 번식장 안 작은 철창에 갇힌 채 살아야 했어. 그곳에서 암컷이라는 이유로 수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힘겨운 날들을 보내야 했지. 우리 엄마도 평생을 새끼만 낳다가 내가 보는 앞에서 죽었고, 나 역시 엄마처럼 살고 있었어. 내가 낳은 아기들은 눈도 제대로 뜨기 전에 모두 빼앗겼고, 나는 내 아이들을 지키지도 못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으며, 떠나는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볼 수도 없었어. 매번 마음속에 커지는 그리움과 무기력함은 날 무겁게 짓눌렀고, 점점 더 세상이 무섭고 두려워졌어.


무엇보다 아이들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아프게 했어. 나를 꼭 닮은 작은 몸들이 나를 보며 작은 소리로 울 때마다 나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 희망은 항상 허망하게 사라졌지. 그 아이들을 잃을 때마다 내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씩 얹히는 것 같았어.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매일 괴로워하면서도 다시 배 속에 새 생명이 깃들고, 또 그 생명을 빼앗기고… 이 끝없는 반복은 결국 나를 세상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어.


언제부터인가 내 몸도 지쳐갔어. 출산을 반복하다 보니 몸의 상처가 아물 새도 없었고, 마치 몸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듯 고통스러웠어. 털은 빠지고, 배는 항상 통증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치료해 주지 않았어. 그저 철장 구석에 웅크린 채,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지. 그건 나뿐 아니라 나와 같이 출산을 목적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친구들의 삶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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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평생을 그렇게 살다 간 친구들도 많았어. 우리는 죽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무섭고 두려웠지만, 매번 좌절하면서도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슬퍼할 틈도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 사람들이 들이닥쳐 나를 꺼내 주었어. 처음엔 그 사람들도 믿을 수 없어서 몸이 저절로 뒤로 물러났어. 하지만 그들은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세상 밖으로 데려다주었어.



다행히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어. 하지만 쉼터에 와서도 처음엔 옴짝달싹 할수 없었지. 여전히 아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웠거든. 몸은 회복되어 갔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깊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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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쉼터 선생님댁에 나와 같은 종의 멋진 셰퍼드가 있다며 나를 소개해 줬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임신을 했고, 예쁜 아기가 태어났지. 내게 또 한 번 기회가 주어진 걸까? 처음엔 두려웠지만, 내 옆에서 작게 숨을 쉬는 아기의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을 느끼기 시작했어. 이제는 나와 내 아기에게 이곳이 안전한 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 날 돌봐주며 다정하게 “샤롯”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행동에서 사랑이 느껴져. 나는 조금씩 평온과 행복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야.


쉼터에서 지어준 내 이름 ‘샤롯’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왕비의 이름인데 앞으로 남은 생을 그렇게 살라고 지었대.


나는 지금도 잃어버린 아이들이 떠오르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그리움이 덮쳐 오지만, 지금은 이 녀석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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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기와 남편을 소개할께.

어때? 너무 예쁘지? 아빠와 똑 닮았지?


이제는 나와 우리 아기만을 위해서 새로이 살아갈거야.

내 곁을 떠나간 12마리의 아기들은 모두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되었을 거리고 믿으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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