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이 처마 밑에 놓여 있다
색이 바래고 어느새 아주 늙어버렸다
처마 밑 빗물을 담기에도 영 쓸모가 없었다
비가 샐 때마다 그릇 탓을 했다
못나고 금이 간 그릇 탓을 했다
어느 날 나뭇잎 하나가 그릇에 툭, 떨어졌다
눈물이 파동을 그리며 멀어졌다
비를 맞아 떨어진 나뭇잎들이 마당에 수북하니 쌓였다
그릇에 밥 고봉마냥 소복이 담겼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빗물 젖은 푸른 산이
위로하듯 손을 흔든다
그랬던가 그저 외로울 뿐이었구나
비 오는 계절이 너무 길었던 게로구나
기다림 속에서 당신은 비로소 피어날 수 있는 것을
나는 이제 계절의 시작을 기다린다
빗물이 당신을 피어나게 하기를
나의 존재가 당신을 담는 그릇이 되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