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드릴 Apr 02. 2020

계절의 그릇, 영원


밥그릇이 처마 밑에 놓여 있다

색이 바래고 어느새 아주 늙어버렸다

처마 밑 빗물을 담기에도 영 쓸모가 없었다

비가 샐 때마다 그릇 탓을 했다

못나고 금이 간 그릇 탓을 했다


어느 날 나뭇잎 하나가 그릇에 툭, 떨어졌다

눈물이 파동을 그리며 멀어졌다

비를 맞아 떨어진 나뭇잎들이 마당에 수북하니 쌓였다

그릇에 밥 고봉마냥 소복이 담겼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빗물 젖은 푸른 산이

위로하듯 손을 흔든다


그랬던가 그저 외로울 뿐이었구나

비 오는 계절이 너무 길었던 게로구나

기다림 속에서 당신은 비로소 피어날 수 있는 것을

나는 이제 계절의 시작을 기다린다

빗물이 당신을 피어나게 하기를

나의 존재가 당신을 담는 그릇이 되기를


기다린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지에서 보내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