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요커 Mar 01. 2021

EP7. 2016년, 청혼, 그리고 상견례

살면서 내 인생의 반려자를 뉴욕에서 찾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보다 더 원초적으로 내 삶이 뉴욕과 연결고리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것은 더욱 그렇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연애를 시작한 지 두어 달 후 나는 아내에게 슬슬 세뇌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면 좋을 것 같은 부분들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나눠보다 보니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 사람답지 않다는 착한 마음과 순수함,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정말 예뻐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욱 결혼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는 사실 결혼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오히려 독신으로 살아도 아쉬울 것 없다는 마음을 가진 당찬 여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된 게 인류의 미스터리 못지않은 신비한 경험이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연애를 하면서 바라보고 느끼는 많은 것들에서 나는 '우리가 만약~', '우리가 결혼하면~', '우리가 부부라면~'이라는 수식어로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내 나름의 구애였고, 결혼 전략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이것을 마치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을 했을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완강히 부인하던 아내도 슬슬 '그래도 사계절은 겪어봐야 하지 않을까?'로 바뀌게 되었고, 나는 희망을 봤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던 우리는 마침내 한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연애 시절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부부가 서로를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강력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같은 회사에서 만났던 사이라서 공감하고 심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서로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우리의 연애 관계가 건설적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사내 연애의 긍정적이고 좋은 부분을 느끼고 나서부터는 사내 연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고, 역시 사람은 다른 여러 가지 관점이나 입장을 경험해봐야 비로소 이해도가 높아짐을 느끼기도 했다. 


아내를 만나면서 결혼을 생각하며 조금 더 커리어를 키우고 싶은 생각도 들게 되었고, 업무에 더욱 집중하면서 동시에 내가 잘하는 것들, 그리고 회사에 더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드러내며 나름 스마트하게 일을 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지점들을 관리하는 지역 담당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해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일도 더욱 크게 늘어나게 되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승진하게 되는 것을 싫어하기는커녕 매우 즐기는 스타일이었기에 행복한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렇게 승진하는 포지션들을 바탕으로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기에 나를 더욱 빛날 수 있게 만들어 준 기분 좋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내가 '여자 친구'로서 아주 많은 서포트를 해주곤 했었다. 


내게 아내를 소개해주고, 한국에 있던 아내를 스카우트해서 미국으로 취업을 할 수 있게 해 준 아내의 선배이자 절친은 이직을 하면서 아내에게도 이직 제안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눈치 보면서 사내 연애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눈치 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리 사귀고 있어요'를 최대한 열심히 홍보하고 다녔다. 그리고 아내가 이직한 회사의 여러 가지 복지나 대우가 괜찮아서 우리의 연애도 조금 더 안정적인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내는 이직을 앞두고 오랜만에 한국에 가족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이것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제는 부모님께 나의 존재를 말씀드리면 어떨지 제안을 하게 되었고, 결혼을 생각해본 적 없던 아내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나'라는 브랜드를 믿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럴 때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거나 식사를 하면서 더욱 신뢰감을 구축하고 좋은 모습을 보일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래서 좋은 점만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일 수 있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면으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을 좋아하고 중요시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배웅하던 공항에서 '남자 친구'로서 나 혼자 정의한 '예비' 장모님께 영상 편지를 녹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를 하기 전 내 모습을 촬영하며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영상은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하던 것들을 제외하면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싶다. 


아내는 한국에서 내 존재를 말씀드리게 되었고, 부모님을 놀라게 해 드렸지만 그래도 좋은 모습으로 봐주시기로 했고 귀국 후 우리는 미래에 대해 조금 더 진중하게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본격적으로 결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빠듯하게 생활을 하다 보니 모아둔 것도, 앞으로 가질 것도 많지 않았지만 지금 이 사람을 놓친다면 평생을 너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무리한 결심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표현은 잘 못하지만 가끔 아내에게 정말 고맙기도 하면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아내를 더욱 아끼려고 노력 해오기도 했다. 


어쨌든 아내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점점 열게 되었고, 10월에 우리는 결혼을 생각하며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나는 아내에게 애정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무뚝뚝하고 센스 없는 남자 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프로포즈에 대한 생각이나 연구를 많이 하지 못했다. 로맨스나 멜로 영화보다 액션, 코미디, SF, 공포 영화를 더 좋아했고, 그렇다 보니 연애만 했지 여자들의 로망이나 선호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초반 연애도 사실 아내의 스탠다드에 비해선 초라하고 촌스럽기도 했다. 좋은 레스토랑보단 이왕이면 같은 돈으로 더 먹을 수 있는 뷔페, 특별하고 개성 있는 멋진 로컬 커피숍보다 대형 브랜드의 커피들만 찾던 나였기에 그런 연애에 실망도 했을 아내인데 그래도 나의 미래를 믿고 내 곁에 있어줬던 아내였다. 


아내는 어지간하면 속내를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특히 싫은 소리는 잘하지 않는 성격인데, 어느 날 내게 그래도 결혼을 하려면 프로포즈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저 결혼식만 생각하던 나는 아내에게 큰 미안함이 들기도 했고, 목표만 바라보고 과정을 생각지 않았던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과 목적만 있었지, 상대방이 무엇을 기대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나였다. 그래서 연애도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춰주려고, 나를 더 멋지고 좋은 남자로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던 아내의 모습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나의 선택이, 내 인생을 함께할 반려자가 되어줄 아내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할로윈 전날인 2016년 10월 30일, 

나는 아내에게 청혼을 했다


나름 깜짝 이벤트로 준비했지만 모든 과정이 어설펐던 터라 기대했던 만큼의 서프라이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끼리는 감동적이고 훈훈했던 청혼이었다. 아내가 공원에 도착하기 전 혼자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던 시민들도 응원해주셨고, 어떤 백인 아주머니는 축하하고 인생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면서 나를 꼭 안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결심하고 양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린 후 11월 19일에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에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결혼을 결정하고 따로 지출하고 있던 월세도 아깝기도 했고, 마침내 월세 계약이 끝나던 시기라 상견례 이후에 양가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우린 2016년 말 살림을 합치게 되었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이것저것 집을 꾸미며 신혼 아닌 신혼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우리는 더욱 서로를 돈독하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제는 '나의'가 아닌 우리의 2016년은 저물어 갔다. 











이전 07화 EP6. 2015년, 미국, 그리고 운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