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는 회사 생활도, 우리의 생활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돌아갔다. 결혼식을 한국에서 할 예정이었던 터라 준비하기 쉽진 않았지만 인터넷과 인터넷 전화를 통해서 아쉬운 대로 이런저런 업체에 연락해서 여러 가지 진행해야 할 사항들을 하나하나 추진해갔다. 우리의 결혼식에서 딱 한 가지 특별했던 점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혼식에 참석하시는 가족과 친지분들을 위해서 우리의 미국 생활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은 가족과의 단절이 아닐까 싶다. 요즘에야 그래도 메신저나 영상 통화 플랫폼이 잘 갖춰져 있어 단절감이 훨씬 덜하고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도 마치 오래되지 않은 시일 안에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감정을 컨트롤하고 이겨내는 것도 해외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것들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이나 가족들 입장에선 자주 만날 수 없는 우리의 삶이 궁금하실 것 같았고, 아내는 우리 일상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결혼식에 띄울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름 우리 결혼식에서 특별한 역할을 톡톡히 해준 것 같다.
아내가 야외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해서 한국에 갔을 때 이런저런 가능한 장소들을 둘러봤는데, 사실 우리가 들어갔을 때가 미세먼지가 한참 심할 때였는지, 도저히 야외 결혼식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국에 살면서 우리가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미세먼지가 적다는 것이다. 내가 출국을 했던 2010년만 해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미국의 장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나는 미세먼지 때문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매해 들어갈 때마다 심해지는 미세먼지는 맑고 청명했던 대한민국의 하늘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 정도로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쨌든, 그 심각성 때문에 야외 결혼식을 할 자신이 없었고, 결국 아내가 하고 싶어 하던 결혼식을 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었다.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우리가 결혼을 위해 한국에 1개월가량 머무는 동안 정말 손에 꼽는 미세먼지 없던 며칠 중 하나가 우리의 결혼식 날이라 정말 아쉽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니 어쨌든 무사히 잘 마치고 우리가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결혼에 얽힌 우리의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런저런 일들을 꼼꼼하게 처리하기로 유명한 내가 신혼여행 때 저지른 큰 실수가 있었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발리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리조트에서 대부분의 일정을 보내고, 마지막 날은 가격이 비싸지만 아주 럭셔리한 우리 부부만의 전용 풀빌라를 예약해서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리조트에서의 마지막 날, 모든 짐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풀빌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통신이 잡히지 않아서 리조트에서 와이파이가 있을 때 받아둔 이메일들을 읽고 있는데, 보통 출국 24시간 전 와야 하는 항공사 이메일이 하루 먼저 들어와 있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다가...
응?
헐!!!!!!!!!!!!!!!!!!!!
그렇다. 나는 시차와 날짜를 실수로 잘못 잡아버린 것이었다. 발리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는 낮과 새벽 1시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었는데, 우리는 미국 귀국 일정과 맞추기 위해 새벽 1시 출발 비행기를 선호했다. 날짜도 미국과 다른데 새벽 1시라 더욱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쨌든 말도 안 되는 여행 초보 같은 실수를 하필이면 신혼여행 때 만들어 버린 나였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택시에서 넋을 잃고 바라본,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나의 실수에 넋을 잃고 바라본 그 풍경이 아주 선명하고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착한 아내는,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에 또 오고 싶지'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고급 풀빌라는 체크인하고 마시지를 받고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의 아쉬움은 더욱 커져갔고, 그래도 왔으니 수영은 마지막으로 하고 가자고 하면서 풀에 들어갔을 때, 그 아쉬움은 배가 되었다. 그 풀빌라는 아침이 되면 셰프가 수영장이 있는 키친에 와서 직접 조식을 조리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경험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수영이 끝나고 샤워를 마친 후 우리는 다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새벽 1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당시 아내의 잔여 휴가 일수, 마일리지로 구매한 비행기 티켓, 미국행 잔여좌석 상황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변경할 수도 없었기에 너무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꿈의 여행지였던 발리는 꼭 죽기 전에 다시 가봐야 할 여행지로 남게 되었다.
여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또 다른 해프닝이 있었는데, 나의 부주의로 인해서 카트에 아내 발가락이 눌리는 바람에 아내가 다치게 되었고 피가 많이 나는 상황이 생기게 되었다. 난생처음 내가 한국에서 직접 응급 지원을 요청해본 상황이 생기게 되었다. 가뜩이나 마음도 아쉽고 서러운데 발가락까지 다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아내를 보면서 더 따뜻하게 잘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일이었다. 짧은 일정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더 잘되고,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많은 일들이 생긴 것이라고, 이게 우리의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하며 서로를 더욱 굳건히 의지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생활에 매진했고, 2017년 10월에 아내의 회사에서는 아내에게 미국 영주권 스폰서를 해주게 되었다. 사실 유학생이나 외국인 신분을 가지고 있는 미국 직장인들에게 영주권은 꼭 가져야 하지만 결코 쉽게 쥘 수 없는 꿈의 신분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가 영주권에 들어갔던 그 시기에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영주권 취득을 매우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버린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의 감사함은 더욱 컸었다. 영주권 인터뷰와 심사 기준 강화로 인해서 영주권이 나오기까지 정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2017년 말 그 시기에는, 우리가 영주권에 지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기쁜 순간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앞날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2017년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했던 큰 변화들이 2018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