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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요커 Apr 02. 2021

EP10. 2019년, 이대로만 갔으면 했지.

2019년 1월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던 그 날, 그 풍경, 그리고 그 순간이 있다. 1월 초 나는 아내와 함께 IKEA에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동했고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던 순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글로벌 기업에서의 연락이었다. 정말 좋은 소식으로 나에게 연락을 준다고 이야기를 해줬고 연봉에 대해 이야기한 후 괜찮은지 의사를 물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던 나머지 소식을 듣자마자 크게 감탄사를 외쳤고, 이루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고 열심히 팀을 위해 기여를 하겠노라고 이야기했다. 담당하는 고객사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담당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하면서도 정말 많이 설레었다.



기존 회사에서도 여러 가지 배운 것도 많았고,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며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버틴 덕분에 글로벌 규모의 회사로 이직을 할 수 있었던 감사한 마음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정비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 이직을 하게 되면서, 그것도 공교롭게도 첫 출근일이 한국 날짜로 내 생일이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새롭게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첫 출근 OT 때도 그런 상황을 공개하며 힘찬 출발을 알리기도 했다.


새로운 직장에 즐겁게 적응해나갈 무렵. 그토록 기다리던 이민국에서의 소식을 받게 되었고 2019년 6월에 영주권 인터뷰가 스케줄 되었다. 인터뷰가 의무화된 첫 세대였기 때문에 영주권 인터뷰에 대한 소스가 많이 없었다. 사방을 수소문하고 찾아봐도 '~거야', '나는 ~ 했지만 심사관마다 다르다' 등 불확실한 정보가 많았기에 진행해주시는 변호사님과 사무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불안감도 컸다. 불법 체류나 세금 누락 등 위법한 일을 했던 적은 없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과 초조함이 다가왔고, 참고할만한 케이스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반드시 제출해야 할 서류부터 나와 아내의 프로페셔널한 직장 이력에 대한 검증 자료, 우리의 결혼 생활에 대한 진위를 증명할 수 있는 연애 시절 때부터의 사진첩 등 보조 자료를 준비하는 데에도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둘 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준비하고 있었기에 퇴근하면 다른 사람들의 업데이트되고 있는 사례들에 대한 분석과 인터뷰 예상 질문과 답변 준비, 서류 준비 등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항상 감사함이 컸고 그 덕분에 긍정적으로 잘 버틸 수 있었다. 영주권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종 유명한 사이트에서 케이서 번호를 공유하며 현재의 status를 공유하곤 한다. 비슷한 번호대의 사람들의 진행 케이스를 보면서 자신의 차례에 대한 기다림으로 매우 답답하고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겪어보지 않는다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움 감정들이 많다.


그래도 우리는 그나마 순위가 빠르게 진행되는 순위였기 때문에 아무리 진행이 지연된다고 하더라도 훨씬 더 오래 영주권 절차를 기다리는 다른 순위의 분들보다는 진척 자체가 있음에도 감사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 감사한 마음은 항상 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을 기반으로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글보다는 말을, 문자나 이메일보다는 대면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문득 내가 겪었던 미국 정착 이야기에 대한 것들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플랫폼으로 유튜브를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2019년은 유튜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점점 대표적인 검색 플랫폼으로 더욱 성장하던 시기라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와 고민을 나누게 되었고 어떻게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플루언서나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경력과 경험, 기타 검증이 필요한 요소들에 대해서 시간이 지나 허위가 발견되거나 자격 요건이 부족한 사람들로 인해 실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신뢰'에 더욱 포커스를 하고 싶었다. 대뜸 영상에 출연하고 제작해서 나를 알리기엔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Linkedin이나 기타 검증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고 하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평소에 브런치 글들을 즐겨 읽던 아내가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떨지 제안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글이라고는 학교 다니면서 글짓기 시간, 부모님께 편지, 그리고 군대에서 매일 작성하던 '수양록', 회사에서 수없이 주고받던 이메일이 전부였던 나는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가진 최고의 단점은 자기 방어적 기질이 강하다는 점인데, 이때 이런 제안을 했던 아내에게 글 쓰는 것은 자신 없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대중교통을 통해 뉴욕 시내로 출퇴근을 하면서 멍하니 보내거나 스마트폰을 통해 시답잖은 내용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퇴근하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적기 시작했고, 그 내용들을 글로 옮겨보았다.


브런치 작가에 지원을 했지만 탈락을 맛보고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었고, 더 진솔한 마음을 담고 진지하게 글을 쓰고자 노력했고 마침내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2019년의 어느 날 이야기였다. 많은 분들이 부족한 글임에도 좋아해 주셨고, 지금은 사실 영상을 찍을 때보다 차분하게 글을 쓸 때가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더욱 진솔 해질 수 있는 시간이라 정말 좋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영주권 인터뷰를 무사히 마쳤고,

 
끝내 꿈에 그리던 영주권자가 되었다


우리는 2017년부터 사업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오곤 했다. 아이템 선정에 있어서 고민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래도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우수한 품질이나 가공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미국 시장에 선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정부에서 그런 다양한 활동들을 지원하는 것을 확인하고 제품 선정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한국에 자주 갈 순 없었지만 상견례나 결혼식을 위해서 갈 때마다 생산자나 공장 등 잠정 납품처를 찾고자 백방으로 돌아다녔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면 제품이나 가공 기술을 높게 평가하는데, 특히 양말류의 Made in Korea 점유율은 상상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요즘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값싼 노동력에 밀려 이 시장도 점점 밀리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꼼꼼한 면 가공 기술은 터키, 포르투갈에 견줘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엔 양말류에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아내의 디자인을 접목해서 판매를 해보고 싶었는데, 어마어마한 MOQ (주문 최소 수량) 단위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물자 수송을 해야 하는 우리에겐 추가적 부담이 큰 편이었고, 이미 과 포화 경쟁 시장이라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았다.


수많은 고민을 하다가 미국 소비자들의 Home textile 제품 사용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 Fair들에 참석하면서 아주 다양한 상품군 개발과 더불어 지속적인 수요 등 장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물론 이 분야도 경쟁이 심하고 포화 상태이긴 하지만 양말류 보다는 브랜드 스토리를 풀어 나가거나 상품군을 확장하는 확장성 측면에도 훨씬 더 큰 가능성이 보였다.


우리는 첫 제품으로 유기농과 친환경을 고려한 대나무로 만든 수건을 선정했고, 미국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사용하는 Wash, Hand, Bath 3가지 사이즈를 각각 준비하기로 했다. 늦게 출발한 만큼 품질과 환경을 고려한 지속 경영이 가능한 제품을 고르는데 많은 힘을 쏟기로 했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수없이 많은 다른 수건들과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수건들을 아내와 밤낮으로 테스트하고 사용해봤고, 마음에 드는 한국산 제품과 비교 체험을 많이 했다. 특히 수건을 한 번만 사용하고 빨래를 하는 경우가 많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 날을 말리기만 하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서 같은 수건을 1주일을 사용해보면서 항균성이나 냄새가 나는 정도를 비교해보기도 했을 정도로 철저하게 품질을 테스트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사업체 등록을 미국과 한국에 등록하면서 긴 여정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2019년은 성공적인 변화와 도전으로 마무리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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