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행복하고 즐겁게 마무리해가던 우리는 이대로만 간다면 인생에 걱정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코로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론칭했던 사업도 판매망 구축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정을 찾았지만 위축된 소비 심리로 인해 판매가 크게 발생하지 않았고, 벌어들이는 것보다 투자한 금액이나 광고 비용 등으로 인해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많은 부분 안정화되어 나는 회사 생활에, 그리고 아내는 사업 관리와 마케팅 부분에 집중하며 사업을 유지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쓴 경험을 기반 삼아해보고 싶었던 유튜브에 도전을 시작하기도 했고, 이왕 시작하기로 한 김에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처음엔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앱으로 간단하게 편집을 하다가 점점 영상과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되었고, 생전 써보지도 않았던 어도비의 전문 프로그램들을 하나, 둘 독학하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과 사이드 비즈니스 운영, 그리고 영상 촬영과 편집까지 하면서 기절할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와도 이 악물고 도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때 각종 반이민 정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되고 시행되면서,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미국 경제와 고용 시장이 얼어붙게 되면서 자국민 보호를 앞세운 강력한 반이민 정책들이 발표되었고, 그런 이민 소식과 대책에 대한 영상들을 제작할 땐 새벽까지 일하고 잠시 눈을 붙이고 일을 하는 등 하루하루 너무 피곤한 일상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어디엔가, 단 한 분이라도 내가 전하는 정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피곤함을 무릅쓰고라도 도움을 전할 수 있는 자세야말로 유학생 때, 그리고 사회 초년생 때 온, 오프라인으로 도움을 받았던 내가 누군가를 위해 돌려줄 수 있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하고 몇 개월을 쉼 없이 달려왔던 것 같다. 콘텐츠가 구독자, 조회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만한 재밌거나 유쾌한 콘텐츠는 아니었지만, 진정성을 담아서 마음과 정보를 전하려 노력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그런 노력을 알아주시고 도움이 되었다는 코멘트를 해주셔서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2020년은 직장인인 나로서는 심리적으로 너무 괴롭고 힘든 한 해였다
재직 중이던 호텔도 아무리 규모가 커도 코로나의 여파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코로나가 확산되던 2월부터 나는 우리 부서의 사람들을 하나, 둘씩 처음엔 휴직, 그리고 퇴사를 시키게 되었다. 많은 직원들이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서도 일부는 감정적으로 격앙되고 슬픈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모습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은퇴를 위한 연금인 401K도 주식 시장 폭락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연세가 많은 직원들의 경우 아주 큰 연금을 잃게 되면서 좌절감이 팽배했기 때문에 그런 직원들을 면전에 두고 해고를 통보하기란 겪어보지 않으면 느끼기 힘든 고충이었다. 그래도 다른 부서장들이 이미 휴직 혹은 퇴사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공백을 커버하면서라도 남아서 직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주 5일에서 4일만 근무하면서 연봉의 20%가 삭감되었을 때도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매출이 회복되지 않는 비즈니스는 결국 직원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고 호텔의 총지배인인 GM이 모든 부서를 총괄하게 되면서, 나도 결국은 커리어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타의로 인해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회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씁쓸함과 더불어 서운함을 숨길 수 없는 것이었기에 솔직히 실망스럽긴 했다. 결국 나는 생전 처음 실업 급여를 신청해보기도 했지만 마냥 좌절하고 힘들어 할 순 없어서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에 한국에 방문해서 새로운 상품 개발과 시장 조사에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의무 자가격리 2주의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환영받지 못할 수 있는 고국 방문을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멘탈이 그야말로 '탈탈' 털릴만한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긍정적이고 무엇인가 도전하고 싶었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안정적으로 나오는 실업 급여로 무난하게 살아가겠지만, 나는 그렇게만 버티기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고, 무엇인가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항상 나에게 멘탈이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항상 그렇게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가족과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멘탈 건강이었던 것 같다. 때론 뒤를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이겨냈는지도 모를법한 상황들이 있었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함께 나를 일으켜주고, 지지해주고, 믿어줬던 것은 늘 가족이었다. 그리고 2020년의 그 절망적인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4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서포트 해준 부모님의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 진취적으로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잠자는 시간을 대폭 줄여가며 서울 동대문과 남대문의 야시장을 돌면서 도매로 판매를 할 수 있는 제품을 찾아보기도 했고, 방산 시장을 여러 번 오가면서 포장의 고급화를 위한 고민도 많이 했다. 그리고 수많은 공장들을 직접 찾아가서 회사 소개를 하고 납품에 대한 논의를 나누기도 했고, 박스 공장들에 방문해서 포장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했다. 당장 유지하던 소비 수준에서 소득이 반 이상 줄어들게 되면서 자칫 무모한 방문이 될 수 있었지만 덕분에 여러 가지 가능성과 장기적 발전에 대한 좋은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실제로 다녀와서 새로운 상품군을 론칭할 수 있는 과감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품을 대량으로 크게 구매할 여건은 되지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꾸준하게 발전시키면서 사이드 비즈니스를 언젠가 정말 큰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다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꿈꾸는 목표가 있는데,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데 큰 기여를 하고 싶다. 워낙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지만 사실 좋은 회사도 많고, 한국 내 기업들의 기업 문화 개선이 많이 발전되면서 자연스레 이곳의 상황도 점차 개선되고 발전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되어 이 비즈니스가 큰 확장을 이룬다면 꼭 나는 '좋은' 기업가가 되고 싶은 간절한 목표가 있다. '가족 같은 회사'라는 진부한 목표보다는 내 직원들의 가족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은 것이 나의 장기적인 꿈이다. 물론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 회사의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 회사 문화를 개선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에 대한 꿈도 있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이든 노력하다 보면 그 노력 하나하나가 가능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비즈니스에도 최선을 다해 내 시간을 짜내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어렵고, 힘들고, 그리고 좌절스러운 2020년이었지만 나는 희망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고, 나 스스로를 수 만 번 마음속으로 다지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누르며 버텼다. 종사하던 업계에서도 고용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직 도전도 쉽지 않았지만 연말까지 꾸준하게 지원하며 도전을 이어갔고, 다행히 여러 곳에서 인터뷰 제의 등 희망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헤드헌팅 회사로부터 제의를 받아 프리랜서로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는데, 정식적으로 이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되면서 더 큰 희망을 남긴 채 2020년을 마무리 지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한국에 다녀오면서 해외 거주자의 한국 입국 과정과 미국 입국 과정, 그리고 필요한 노하우를 전한 영상이 많은 분들께 공유가 되면서 12월 31일에 구독자 1,000명을 돌파하는 감사한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그 영상 덕분에 협찬도 전혀 아니었지만 우리 부부를 친절히 대해주신 콜벤 운전기사님의 사업에도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2021년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