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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초이 Jun 25. 2020

그 다음 3년 동안 해외에서 얻은 것   

feat. 30대에도 성장통은 찾아온다.  

https://brunch.co.kr/@csj066/9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3년 동안 모았던 것'은 제가 해외취업을 할 수 있게 만든 디딤돌이 되었어요.

그 디딤돌을 발판 삼아 3년 동안 저는 홍콩에서 APAC(아시아 총괄) 인사 담당자로 일을 하면서 제가 꿈꾸던 커리어를 즐기게 됩니다.  


2016년 11월 19일


스카프로 눈물을 훔치는 엄마와 저랑 끝내 눈은 못 마주치고 공항을 휘적휘적 돌아다니시던 아빠를 뒤로 한 채, 홍콩으로 가는 편도행 비행기에 착석을 했습니다.

이전까지 해외에서 공부해보거나, 일해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 걱정이 가득했어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에 무쇠의 뿔처럼 당당하게 나아가자라고 마음을 먹었죠.


물론 처음부터 일이 마냥 재밌고 해외생활이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회사를 갔을 때, 제일 고생했던 것은 언어였습니다.  

영어를 꾸준히 한국에서 해왔었지만, 하루 종일 영어로 일을 해야 하고 동료들과 이야기도 영어로만 해야 하니 여간 힘든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팀에 한국 사람은 저 한 명뿐이었거든요.

집에 오면 너무나 피곤해져서 룸메이트들과도 별 이야기 없이 바로 자러 들어가곤 했었습니다.

(그 당시 영어공부 제대로 해보자고, 룸메이트도 외국인이으로 선택했었습니다.)


그래도 첫 6개월은 적응을 위해 한국지사만 맡았기에 업무는 그럭저럭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습이 통과가 되고, 한국 마켓도 익숙해지니 사수가 그러더군요.

'수진은 APAC 담당으로 왔는데, 한국만 맡으면 무슨 소용이야? 한국 마켓만 맡으려고 홍콩 온 거 아니잖아?'

그렇게 뼈 때리는 피드백을 듣고 나니 홍콩에서 한국 마켓만 맡게 된다면, 해외 취업한 게 무슨 의미 일까라는 생각이 조금 들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 마켓만 맡는 상황이 너무나 편했지만, (또 첫 6개월 고생한 시간을 또 되풀이하기가 싫기도 했고요) 사수의 권유 (반강제?)에 못 이겨 다양한 국가들을 맡아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뒤, 인사 담당자로서 호주, 싱가포르,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지역의 직원들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후 첫 6개월은 일상에서 동료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도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그다음부터는 업무상 영어로도 일을 해야 하니 긴장이 잔뜩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받은 메일을 읽고 또 읽고 내가 답장 보내기 전에도 읽고 또 읽고, 누구보다 느리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매 순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이니, 덕분에 영어실력은 수직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홍콩에 온 지 1년 반이 지나자 6시 칼퇴를 매일 할 정도로 회사일에 적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사수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잊고 지냈던 MBA가 생각이 났습니다. 

싱가포르로 가서 MBA를 마치고 취업 하려고, 준비했 놓았던 대학원 입학시험 점수가 생각이 났죠. (GMAT) 


'내가 얼마나 홍콩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석사를 도전해 볼까'

'경영, 경제 전공이 아닌데, MBA를 하면 회사의 전반적인 플로우에 대해서 매크로 뷰를 가지게 될 거 같은데'

'내가 석사를 딴다면, 우리 부모님이 더 자랑스러워하실 텐데'

'내가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지식이랑 네트워크는 있어야 할 텐데'

'내가 만약 인더스트리를 바꾸거나 승진을 하게 된다면 좋은 competitive edge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MBA에 대한 고민을 몇 개월 동안 한 뒤, 예전에 다녔던 회사의 매니저분들에게 추천서를 받아 지원서를 냈고, 면접을 거쳐 2018년 홍콩대로부터 입학 허가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MBA 첫 오리엔테이션 때


그 뒤 1년 반 동안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공부를 하며 홍콩 생활의 2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홍콩에서 저는 30대를 맞이했고, APAC(아시아 총괄)담당자로서 여러 국가들을 날아다녔고, MBA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기업가들을 만나고 정말 많은 인사이트와 네트워크를 얻게 되었죠.




물론 3년 동안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들도 많았었어요.

대학 시절 때 상상한 30대는 굉장히 안정된 커리어와 인생을 즐기는 삶일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더 고통스러운 성장통이 정말 매 순간 찾아오더라고요. 


하지만 3년 동안의 해외생활은 저라는 사람이 또 한 번 껍질을 까고 만들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 성장통은 한 뼘 더 커진 그릇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덕분에 그 성장통으로 인해 생긴 흉터들을 이제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 3년 동안 저는 또 다른 성장통을 겪을 수도 있어요. 30대에도 성장통은 꾸준히 찾아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는 그 성장통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을것 같아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가장 힘들었던 성장통은 무엇이었나요? 

그 성장통이 당시에는 죽도록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쩌면 그 시간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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