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기
1년 전 일기이다.
-2019년. 9월 19일-
"일요일 인데 왜 이렇게 밤새 야근한 것처럼 힘들고 지치는지 모르겠다.
시위 때문에 예기치 못하게 땀을 흘렸다.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힘든 하루여서 울어버렸다.
근데 숙제를 하러 스타벅스에 가니, 지금 시위 때문에 모두 문을 다 닫아버렸다.... "
1년 전 나는 홍콩에서 MBA와 회사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9년 6월부터, 홍콩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반대 시위가 시작이 되었다.
홍콩의 한 남자가 여자 친구를 대만으로 데려가 죽여, 형을 피하고자 했던 범죄는 정부의 '범죄인 송환 법'이라는 조치를 낳았고, 이로 인해 중국으로 쥐도 새로 모르게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홍콩 사람들은 반대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시위는 점점 더 격해졌고, 사람들은 무장을 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경찰과 대치를 했다.
내가 있던 곳은 코즈웨이베이, 한 블록만 더 나아가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메인도로가 나왔다.
주말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경찰이 쏘는 tear gas와 사람들의 구호를 들었다.
tear gas가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 에어컨을 킬 수 없었다.
그렇게 작년 이맘 때는 주말마다 시위대와 경찰의 끝없는 대치 상황을 자정까지 들으며,
땀에 젖어 잠이 들곤 했다.
경찰들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피를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잡혀간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더욱더 분노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신호등을 부수고, 중국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거나 중국기업인 브랜드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Bank of China, Maxim, Starbucks' (중국기업이 판권을 가지고 홍콩에서 사업을 함) 들이 그 타깃이었다.
ATM기는 다 부서졌고, 스타벅스는 유리문이 깨졌다. 그 뒤, ATM기는 5시 이후 나무 문으로 다 덮어 버렸다. (사람들이 혹시나 또 부실까 봐)
사람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그렇게 홍콩은 점점 공포의 도시가 되어 나갔다.
사람들도 두 파로 나뉘기 시작했다. 시위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계속되는 시위로 경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중국의 개입을 찬성하는 쪽이기도 했다.
그렇게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를 공격하는 하얀 옷을 입은 시위대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902885.html
수업을 듣던 중, 학교 관계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수업을 중단해야겠다며 들어왔다.
시위로 인해 모든 대중교통이 중단될 것이고, 우리 모두 당장 대피를 해야 한다는 것.
교수님은 독일인이었고, 침착하게 우리가 언제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오늘 배운 것과 팀플을 꼼꼼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이 중단되었고, 그 뒤 회사로의 출근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집은 인터넷이 안 되는 studio room이라 이럴때마다 정말 난감했다.
재택이 되면, 난 어찌 되었건 인터넷을 찾아 위험한 밖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시위대들은 지하철을 막아서고, 시민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MTR은 시위대에게 시민들의 이동수단을 대중교통을 제발 파괴하거나 막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 뒤, 지하철에는 언제나 무장한 경찰들이 상주해 있었다.
시위대라도 보이는 순간 바로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들은 전쟁터에서 본 것 마냥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https://www.scmp.com/photos/hong-kong/2129740/hong-kong-holds-anti-terror-drill-mtr-station
가끔 오프라인으로 재개되는 수업을 들으러 홍콩의 중심지인 admiratly역을 나올 때면 중무장한 군인 혹은 경찰들을 마주쳤다. 그들을 지나칠 때마다 온몸에 털이 쭈뼛섰다.
출근을 해서 오피스에서 일할 때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언제나 흘렀다.
홍콩인 동료는 내가 스타벅스에 커피를 마시려고 하면, 왜 그 브랜드를 사 마시냐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시위에 대해서 이 사태에 대해서 너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역사의 한가운데서, 이방인으로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던 홍콩을 오롯이 겪어내었다.
그게 벌써 1년 전 이맘때이다.
나는 그 당시, 일상생활이 보장이 안 되는 여건에서 살고 있었다. 회사도 갈 수 없었고,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도 말조심을 해야 했으며, 주말 저녁에 외출은 가급적 삼가야 했다.
작년에 '조커'가 개봉을 해서 보고 나왔더니, 조커에 나왔던 그 시위의 장면이 실제로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중무장하고, 쓰레기통은 다 엎어버리고 경찰들이랑은 대치하고 있고,,,
그렇게 치안마저 위험하던 상황에서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근데 2주 뒤 쓴 일기를 보니 나는 다시 그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금 열정 넘치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2019년 10월 1일
'오늘은 인터넷을 찾아다니느라 이리저리 방황한 날이지만, 그래도 발표 준비도 끝냈고 CEO Class숙제도 다 끝내서 기분이 홀가분하다.
내일은 헤드헌터에게 이력서 보내고, 발표하고, 저녁에 괜찮다면 술도 한잔 해야지!
10월에는 M&A수업도 한번 들어봐야겠다. 청강으로! 오늘은 이리저리 많이 걸어 다녔지만, 그래도 운동한 샘이라고 치자! 수고했어!'
나에게는 당시 목표가 있었다.
학교를 끝마치자는 목표.
이직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가겠다는 목표.
그래서, 힘든 상황을 어쩌면 느낄 새도 없이 겪어낸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목표가 없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 목표가 너무 절실하거나 간절하지 않아서는 아닐까? 무기력이 오고 슬럼프가 오면, 2019년 가을을 돌이켜 봐야겠다.
1년 전 이맘때, 나는 치안이 보장되지 않았던 홍콩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었다.
나의 1년 전을 돌이켜보며,,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던 홍콩 나의 1년 전을 돌이켜보며,,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던 홍콩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