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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응급의료 시스템 세운 ‘참사의 역설’

[안녕하세요 응급실입니다](2) 응급실 그리고 30년

ㆍ응급실 그리고 30년

ㆍ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등 국가적 재난 후 필요성 절실해져

ㆍ30년 전 전문의 없던 응급의학과…시간과의 싸움서 환자 살리는 의학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매김


1995년 6월29일 발생한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국내 응급의료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사고 현장과 가까운 당시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


1962년 개정의료법에서 ‘병원은 응급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의료보험(현재의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시절에는 아무리 아파도 진료비가 너무 비싸서 응급실에 갈 수 없었다. 게다가 밤에는 응급실도 운영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었다. 


의료보험제도 제정 1년 뒤인 1979년에 지금의 119구급대의 시초인 야간구급환자 신고센터가 운영됐다. 병원별로 응급실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다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응급의료체계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1989년 의료보험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응급의학과라는 전문과목이 없던 당시에는 의사면허를 갓 취득한 인턴이 응급실의 모든 진료를 담당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많이 부족해 응급실 진료의 질이 상당히 낮았다. 그러다가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이 1989년 영동세브란스병원(현재의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시작됐다. 그 후 1990년 강남성모병원(현재의 서울성모병원), 원주기독병원에서 응급의학 과목이 개설되면서 여러 병원에서 동참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응급의학 전공자가 없었기에 외과 전문의들 중 응급의학에 관심 있는 의사들이 모여 응급실장을 맡고 전공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좀 더 체계적인 수련과 전문성을 위해 해외연수를 권장해 여러 의사들이 미국연수를 다녀오곤 했다. 1989년에 대한응급의학회가 창립됐고, 1991년 응급의료센터 등이 지정됐다. 그럼에도 당시에 응급의학과는 정식 수련과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던 날(1995년 6월29일 오후 5시52분)의 일을 23년이 지난 오늘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병원의 수용능력도 확인하지 않고 응급실에 환자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빨리 분산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복도 쪽과 응급병동으로 환자들을 다 옮기고 최대한 퇴원 가능한 사람을 퇴원시켰다. 중환자와 경증 환자들이 엉키는 것을 보고 최대한 응급실을 비우고, 어느 한 의사에게 환자 분류만 하도록 지시했고, 사망한 환자는 응급실 내 수술방으로 다 옮기고 중환자 구역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송체계였다. 모든 환자들이 재난 현장과 가까운 우리 병원으로 오는 거였다. 보통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 진료소를 설치하고 각 병원의 응급실 정보망을 통해 수용 가능한지, 수술 가능한지를 확인한 후 이송해야 생존율이 높아지는데, 그날 현장은 폴리스라인도, 현장진료소도, 컨트롤타워도 없었다. 현장에서 살아나온 환자들은 모두 우리 병원으로 오고, 현장이나 응급실이 환자와 보호자로 뒤엉켜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그래서 체계를 잡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체계화돼 있는 지금의 응급실과는 너무 다른 23년 전 그날이었다. 


무너진 삼풍백화점, 구조차량과 인파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 강남성모병원 응급실, 응급실 밖에서 새로 이송된 환자 치료 장면(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성모병원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국가적 재난을 겪으며 국가에서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제도가 절실해졌고, 이듬해 제1회 응급의학과 전문의 시험이 정식으로 치러졌다. 


지금도 가끔씩 의사라고 하면 전공이 무엇이냐는 말을 듣는다. “응급의학과입니다.” 그러자 다시 묻는다. “응급실에서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래서 내과예요?”


아직도 나이 드신 분들은 응급의학과라는 전문과목이 있는지를 잘 모른다. 그만큼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비인후과, 안과처럼 특정 부위 단어가 들어가 있지도 않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응급의학이란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소생의학, 독극물학, 외상학 등을 포함해 시간과의 싸움에서 환자를 살리는 학문이다. 게다가 단순한 진료 과목을 넘어서 이러한 환자들이 적절한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응급의료체계를 만들고 연구하는 중요한 의학의 한 분야이다.


지금 한국의 응급실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하고 있다. 응급의료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고, 응급실을 방문하면 응급의학과 의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지난 30년간 열악한 응급실 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앞으로의 국내 응급의학은 양질의 응급진료를 제공하게 되는 질적인 성장을 위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102106005&code=9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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