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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이 내게 관심이 없다? 다행입니다

[안녕하세요 응급실입니다](6) 응급실의 우선순위

응급실의 우선순위

중증도 분류·응급처치·검사…위급한 순서대로 진료 이뤄져

의료진이 다른 환자 먼저 본다면 내 증상은 ‘덜 심각’하다는 의미


조용수 교수(왼쪽)가 흉통 환자의 심전도 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 필요한 처치에 관해 응급의학과 전공의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전남대병원 제공


응급실은 먼저 온 순서가 아니라 위급한 순서대로 진료가 이루어진다. 감기 환자의 진료 도중에 심정지 환자가 들어오면 의사는 즉시 심정지 환자에게 가야 한다. 심폐 소생술이 1시간 넘게 걸리면 감기 환자는 진료를 보다 만 채로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1~2분만 시간을 내서 얼른 내 진료부터 끝내주길 바랄 수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화가 나도 기다려야 한다. 급한 환자가 먼저 진료를 받는 건 모두를 위한 규칙이다. 언젠가는 나도 심장이 멎을 수 있고, 그때 양보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게 되니까.


환자가 도착하면 의료진은 즉시 상태를 살피고 간단한 문진을 한다. 짧은 시간 안에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는 과정이다. 경력이 쌓인 의료진은 이걸 재빠르게 해낸다. 위중한 환자가 많은 바쁜 상황에서 숙련된 의사는 환자 안색을 잠깐 살피는 것만으로 경중을 나누기도 한다. 응급실에 왔는데 “왜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지?”라는 의문이 든다면,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분류가 끝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대부분 낮은 중증도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생명을 위협받는 급한 환자라면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 처치가 시작된다. 따라서 의료진이 즉각 처치를 하지 않는다면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심각한 병일 가능성이 낮으니 오히려 다행인 상황이다. 환자에게 붙는 의료진이 많고 빠를수록 위험한 상태임을 뜻한다. 의료진이 나 아닌 다른 환자를 먼저 본다면 내 병이 덜 심각하단 뜻이다.


중증도 분류와 응급처치가 끝나면 자세한 검사가 이어진다. 문진, 신체검사, 혈액검사, X-레이를 포함한 영상검사, 심전도 검사 등을 시행한다. 아픈 원인을 찾아내야 정확한 치료가 가능하다. 문진과 신체검사로 필요한 검사 범위를 결정하지만, 대부분 응급실은 외래에 비해 훨씬 많은 검사를 한다. 응급실은 위급한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 시간을 다투는 질환에 대한 검사는 기본 항목에 넣어 모두 시행한다. 비용이 많이 나오더라도 응급 질환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검사 항목마다 소요되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앞 환자 검사가 진행 중이면 내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온다면 내 검사 순서가 뒤로 밀릴 수도 있다. 결과에 따라 추가로 다른 검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간단한 검사도 2~3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특이한 결과가 나오면 전문 판독이 필요해서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문진, 신체검사 내용과 함께 병명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치료를 하게 된다. 간단한 병이라면 적절한 약을 처방받고 퇴원한다. 중한 병이면 내과나 외과 등 다른 과에서 전문 진료를 받거나 입원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상태가 심각하여 처치가 힘들면 검사 결과가 다 나오기도 전에 큰 병원으로 이송한다. 차분히 검사가 진행되면 이 또한 병이 덜 심각하다는 얘기니 하늘에 감사하자.


마지막으로 ‘접수’에 관한 얘기다. 급하게 응급실에 왔는데 접수부터 하라고 하면,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접수가 되어야 화면에 차트가 만들어진다. 차트가 없으면 오더(의사의 소견이나 처방 등)를 낼 수 없다. 현대 의료의 모든 진행은 컴퓨터가 처리한다. 물론 과거처럼 수동으로 작업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30~40줄 넘는 오더를 모두 손으로 쓰는 건 힘든 일이다. 검사를 해도 화면으로 결과가 넘어오지 않으니 직접 가서 하나씩 찾아봐야 한다. 시간낭비가 심해져 환자 치료가 늦어진다. 또 하나, 접수를 해야 외래 진료 내용이나 알레르기 내역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환자의 과거력을 알면 적절한 치료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접수도 환자를 열심히 보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조용수 |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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