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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의 버팀목이었던
고 윤한덕 센터장님을 추모합니다

[190226] 학회 요청 기고글

"삐리리링!"

뒷자리가 119로 끝나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온다.

'이 번호는 혹시 구급대원?'

불길한 예감을 애써 감추고 자세한 상황을 묻는다.

"삐용삐용"

"여기는 119 소방교 OOO입니다!"


혼잡스러운 소리와 함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6미터 높이에서 작업하다 떨어진 중년 남자 환자인데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CPR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며 5분 내로 도착할 거란다.

전화통화 내용과 내 표정을 읽고 상황을 파악한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들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환자를 실은 구급차량이 응급센터를 향하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흘러 지나간다.


'환자가 오자마자 바로 해야 할 처치들 짚어보자.'

'기도 확보하고 혈압을 잡고 응급수혈 준비하면서 흉부 외상이 있는지 확인해야지.'

'이 모든 게 안정화된 상태라면 바로 중증외상센터로 연락하고 이동하는 거야.'


중증외상 환자는 당연히 중증외상센터로 이송되어 즉각적인 처치를 받는 것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외상학 교과서 첫머리에 엄연히 적혀있는 당연한 일이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교과서 속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현실은 중환자실 부재와 수술할 해당과 의료진 부재로 환자 전원을 거부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까닭이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현실은 어떨까?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중환자는 어느 병원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이 사실은 내과계 중환자든 외과계 중환자든 한치도 다를 것이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자원을 투입해 환자를 살려냈다 하더라도 그 비용을 보전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칙에 맞게 교과서대로 치료했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의료보험공단의 삭감이 이어진다.


결국 중환자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조차 경한 환자들을 많이 볼수록 적자폭이 줄어드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진료 전달체계가 무시되고 대학병원 응급센터의 과밀화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 같은 암울한 현실에서도 중증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노력하셨던 분이 있다.

지난 설 연휴에 당직실에서 업무를 보다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되어 많은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던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이야기다.


국가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잡고 안정화와 재난 상황 관리를 위해 평생을 바치며 가정도 돌보지 못하던 분.

그 뜻을 기려 보건복지부는 윤 센터장에 대해 국가유공자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윤 센터장의 순직을 추모하며 그 기대를 밝게 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살펴보니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원래 국립중앙의료원은 공공기관이었지만, 2010년 정부 소속 기관에서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면서 공무원이었던 윤 센터장의 신분도 법인 소속 임직원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공무원 재해보상법이 아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을 받게 되면서 순직공무원으로 인정받기 어렵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윤 센터장이 공무원으로 남을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그 기회를 버렸다는 데에 있다.

공무원의 순환보직제로 인해 응급의료센터를 떠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만 전념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중증 응급환자가 발생해 응급센터로 실려 들어온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바쳤던 그분.

나는 오늘도 윤한덕 센터장님을 생각한다.


윤한덕 센터장님, 학회와 토론회에서 응급의료의 미래와 바른 길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부르짖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응급의료를 위해 자신의 몸 아끼지 않으시던 센터장님, 당신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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