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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농사짓다 다리가 너무아파  데굴데굴 구른 할머니

신경조절 주사요법 #09

제가 근무하는 여기 경기도 이천은 특산품이 많습니다.

이천 쌀밥, 도자기, 그리고 햇사레 복숭아.

복숭아 정말 맛있죠 ^^ 병원 명절 선물도 복숭아로 주고받는답니다.


주은농장 장호원 햇사레 복숭아


아 요즘 새로운 특산품이 나왔던데... 이천 반도체?


SK 하이닉스 유튜브 광고 중에서


아 이건 아닌가? 여하튼...


복숭아 농사를 짓느라 바빠 다리가 아파도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방치하다

데굴데굴 구를 정도가 되어서야 응급실에 오신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처음 오셨을 때가 6일 전이네요.


평소엔 잘 때에만 아프다가 점점 심해져 걸을 때에도 아프더니

오늘은 오른쪽 다리 전체가 아프면서 저리고 돌아다니듯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복숭아 농사일과 밭일을 병행하느라 쪼그려 앉는 자세와 엉거주춤 서서 하는 작업이 많다는군요.


아프다는 위치는 우측 대퇴부 전체와 우측 아래 다리 뒷면 전체였습니다.

처음에는 움직일 때뿐 아니라 가만히 있을 때에도 아파서 손도 못 대게 하실 정도였는데

침대에 엎드려서 조금 시간이 지나니 진찰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진정이 되셨습니다.

먼저 가장 아프다고 하신 우측 대퇴부를 두루두루 눌러보니 내측 외측 할 것 없이 압통이 심했고

아래 다리도 뒷면 모든 근육에서 좌측에 비해 통증이 심했습니다.



이렇게 전체적인 다리 통증의 경우 통증이 있는 각각의 근육을 치료하는 것보다

상위 레벨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근육을 먼저 주사하고

남은 통증이 있는 근육을 각개격파하는 게 좋겠다 싶습니다.


좌골신경(sciatic nerve) 압박을 일으는 대표적인 근육인 이상근(piriformis)과

대퇴신경(femoral nerve)과 좌골신경을 아우르는 요신경총 압박을 일으키는 대요근(psoas major)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고 두 근육에 좌측과 비교해 압통 차이를 확인한 후

0.5% 리도카인 주사를 각각 시행했습니다.


이후 잠시 경과를 보시자고 말씀드렸지만 아래 다리가 너무 아파 여기에도 주사를 놔달라 하여

우측 가자미근(soleus)에도 압통 차이를 확인한 후 주사를 시행하였습니다.





10여 분간 다른 환자 진료를 보다 할머니께 돌아가 보니

이제 좀 살만하신지 엎드린 자세로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직 아래 다리 통증은 여전하다며 불만을 표하시는 할머니.


다시 한번 꼼꼼히 눌러가며 진찰을 해보니 대퇴 후면의 외측 부분에 압통이 저명합니다.

여기는 정강신경(tibial nerve)을 누르는 대퇴이두근 장두(biceps femoris long head).

그곳에도 주사를 놓아드리니 이제야 무릎을 좀 쓰겠다며 벌떡 일어나 걸어 나오셨습니다.



통증을 점수로 알려달라 하니 10점 중에 아직 3점은 남아있는 것 같다고 하시네요.

워낙 여러 근육에서 통증이 심한지라 주사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일은 최대한 줄이시고 그래도 아프면 다시 나오시도록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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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남은 첫 진료 이틀 뒤인 4일 전.

이날은 저번 같은 증상이 슬슬 올라오는 것 같아 미리 나오셨다며

절둑거리면서도 혼자 걸어오셨습니다.


평소 허리 통증도 있었다고 하셔서 허리를 포함해 세 군데 주사를 맞았습니다.

L2 우측 다열근(multifidus)과 우측 대퇴이두근 장두, 그리고 우측 가자미근까지.

다시 통증이 3점으로 줄어 편하다며 절둑거림 없이 걸어 나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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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 번째 만남. 응급의학과 의사는 한 환자를 여러 번 다시 만나는 일이 드물어

이렇게 지속적으로 찾아오시는 분이 계시다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찌 오셨는지 물으니 저번 4일 전 주사 맞은 이후 무릎 뒤쪽에 통증이 남아있었는데

그 통증만 기분 나쁘게 지속된다며 오셨습니다. 오늘은 절둑거림은 없으시네요.

다리가 아파 복숭아 농사는 포기했다는 할머니. 잘하셨어요, 같은 일 계속하면 또 고장 나요.


다시 침상에 엎드리시라 하고 오른쪽 다리를 보니 전엔 보지 못한 멍자국이 있네요.

혹시 다른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셨나 물으니 그 부분만 통증이 있어 바늘로 찌르셨다고 합니다.

아이고 할머니, 얼마나 아프셨으면 생살을 찌르셨나요. 잘못 감염되면 큰일 나요 할머니.


할머니께서 직접 찌른 그 위치는 대퇴부 후면의 내측 부분, 무릎에서 6cm가량 상단 부분입니다.

지나가는 근육은 반막모양근(semimembranosus)과 반힘줄모양근(semitendinosus).

반힘줄모양근이 반막모양근을 덮고 있는 부분입니다.



반막모양근을 타깃으로 0.5% 리도카인 주사를 5cc가량 하고

통증이 남아있는 대퇴이두근 장두에도 같은 주사를 한 번 더 시행했습니다.

시크한 할머니, 좋다 싫다 별 말없이 또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나가십니다.


오늘은 주사 맞고 아픈 것 몇 점인가요 물으니

올 때 4점이었던 통증 2점 되었다며 그나마 후한 점수 주십니다.


이제 농사도 줄이셨고 통증도 어느 정도 잡았으니 또 오실라나 어쩔라나 모르겠네요.

응급실 안 오셔도 좋으니까 밤에 잘 주무시고 편히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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