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01
"그 컨퍼런스 시간에, 그 순간에 삼풍이 무너졌어.
삼풍 무너진 날 컨퍼런스 하고 있었는데..."
"우리 병원 현실에서 중환자 의학과 내지는 입원 의학을
제가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밤에 일할 수 있는 의사가,
밤에 자기가 병원에 있으면서 환자를 진료하겠다 하는 의사가
응급의학과 의사 외에는 없어요, 현실적으로.
밤에는 다 집에 있는 것으로 전제를 하고 살아요.
모든 전문의가 그래요."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업무량과
앞으로 응급의학 전문의의 수요가 얼마나 될 지에 대해서 판단하고,
학회가 복지부하고 얘기하고 조절해서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우리 응급의학과의 수준은
절반 이상 와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 대충 밑에 레지던트들 늘리려고만 하고,
그런 욕심을 부리면 응급의학과의 미래가 별로 좋지 않을 수 있겠죠."
이름 : 이기중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29번
수련병원 :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현근무지 : 포항 세명기독병원
Q 가톨릭대 처음에 들어가셨을 때 어떤 선생님이 함께 계셨던 건가요?
A 이원재 선생님. 이원재 선생님하고 바로 위에 박규남 선생님하고 황주일 선생님. 혼자 있어서 많이 좋았어요. 할 때 하고 못 하겠을 때엔 “저 못하겠습니다.” 그러고 퇴근하고.
Q 옛날에 가톨릭대가 되게 조그마했었잖아요, 응급실이. 그때 생각해보면 진짜 가대 가보면 응급실 앞에 마당에 환자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고 (그랬죠)?
A 그래도 그 응급실이 김세경 선생님 오시고 그쪽에 건물을 신축하면서 사실은 호스피스 건물을 신축하면서 응급실을 전체 병원 제일 뒤쪽. 제일 앞에 있어야 하는데 그때는 (응급실에 대한) 개념 부족이라서 그랬고. 그래도 한 건물의 한 층을 다 써서, 나름 수술실도 있었고 X-ray 촬영실도 있었고, 그때는. 그래도 당직실에 2층 침대 2개 들어갔으니까 4명이 잘 수도 있는. 물론 의국은 지하방이라서 좀 안 좋긴 했지만, 본관 건물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독립스럽고 (좋았지). 거기서 일하다가 나와서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그러면서 시간 보내기에 딱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어.
Q 그러면 선배들이 응급의학과라는 게 있다고 말을 했었나요? 어떻게 응급의학과를 알게 되셨죠?
A 아 그런 거 없었죠. 인턴 때, 제가 원래 인턴 소속은 수원 성빈센트병원 소속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강남 성모병원, 여의도 성모병원을 본으로 해서 거기 6개월 그리고 다른 성모병원 6개월 하는 조건이었는데. 근데 저는 수원에서 먼저 6개월을 하고 강남 성모병원 후반기 9월에 들어와서 보니, 응급실에 응급의학과 소속 세 분 선배님들이 있어서 “아 이런 게 있구나” 했고. 뭐 사실은 관심이 없었어요. 오로지 저는 ‘내과’다. 인턴도 좀 늦게 해서 다른 동기보다 5년을 늦게 했으니까. 공중보건의 3년 하고 따로 일이 있어서 보건소에 2년 있다가 어쨌든 킴스(Kim's; 군보, 군 미필자)보다는 5년 늦게 들어와서. 일찍 스태프 된 친구들은 벌써 전강(전임강사) 소위 그때는 전강이었으니까 전강 있었고. (저는) 인턴 점수가 나빴어요. 인턴 점수가 나쁜 이유가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때 우리 인턴이 파업을 했어요.
Q 파업이라니 무슨 이슈로요?
A 성모병원 전체 인턴이 파업을 했는데, 그때 강남 성모병원 동료 여자 인턴이. 아침에 인턴의 일이라는 거는 검사 결과지와 X-ray 필름을 빼오는 거. 필름 빼서 아침에 컨퍼런스 시간에 걸어줘야 되는데, 안 주는 거란 말이야. 방사선과 기사는 그걸 주면은 방사선과 교수들에게 욕먹으니까 안 주고. 우리는 빼와야 하는 입장이고. 그래서 거기서 다툼이 있었어요. 다툼이 있어서, 뺨을 맞았어. 그 남자 방사선사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할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단 말이에요. 그것도 남자가 여자를 때렸다. 그리고 또 뭐 나쁘게 생각하면 감히 의사를 때렸다, 인턴이지만. 노조 있는 병원인데 노조 있는 병원에서 인턴 알기를 사실은 뭐같이 알긴 알잖아. 비정규직, 하찮은, (그런 대우받아) 마땅한. '너도 의사냐?' 이런 거지만, 그래도 의사인데 면허 있는 의사인데,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그러다가, 그때 한 10월쯤 됐나 가을이었어요. "에이씨, 나 안 해." 그래 가지고 전부 남양주 장현쯤 됐나, 그 동네에 가서 커다란 여관 비슷한 거 빌려서 거의 다 가버렸어. 다 가서 그 바람에 내가 좀.
Q 인턴 대표셨었어요?
A 아니 아니, 내가 학생 때 학생회장 선거를 나갔었거든. 소위 애매하던 시절이었잖아요. 애매하던 시절에 학생회장 나가서 좀 찍혔지, 운동권인 줄로 착각을 해서. 그 찍힌 게 쭉 유지가 돼서 "저놈이 주동을 했을 거야."라고 찍혀버린 거야. 나이도 제일 많지, 제일 선배지. 그때 당시가 84년, 그 이후에는 87 때는 학생들이 뛰어나가기도 했고. 제가 1학년 때 80년도에는 다 나갔으니까 나가도 됐고. 그러다가 84, 85 그때 좀 그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 밑의 기수 후배들은 그래도 학생회를 하면서 학교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었어. 그래서 내가 찍혀 있었어. 찍혀 있어서 인턴 점수를 C를 받은 거야. C를 받아서 내과를 포기하고. 의국장부터 시작해서 난리가 났어. 아껴주던 호흡기 내과 스텝이 있었어. 근데 "안됩니다." 내가 그렇게 무리해서 내과를 가는 건 누지, 내과 자체에. 그래서 "못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바로 이원재 선생님한테 "응급의학과 해도 됩니까?" (오케이 오케이).
Q 되게 좋아하셨겠어요?
A 물론 뭐 그 바람에 후회는 많이 하셨겠지. 그 바람에 응급의학과 하고, 혼자 하니까 36시간 일하고 12시간 쉬고 하는 패턴으로 4년을 일했어요. 하루 건너 당직이니까, 나는 이틀 당직은 못 하겠다 버티고. 그래서 하루 당직하고 하루 쉬고. 근데 대신 아침에 출근해서 그다음 날 오후에 저녁때 퇴근하고, 그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고 이렇게 36시간 12시간 제로 계속 4년을.
Q 이원재 선생님하고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선생님?
A 2년 선배. 졸업은 1년 선배고. 좀 복잡해. 그래서 이원재 선생님하고는 KMA(의사국가고시) 동기고. 황주일 선생님이 한 해 아래고. 박규남 선생님이 3년 아래인가 그럴 거야. 박규남 선생님이 군대를 안 가서.
Q 좀 껄끄러우셨겠는데요? 1년 차?
A 지금은 소위 뭐 컨퍼런스라고 하면 박규남 선생님하고 맨날 싸우고. 뭐 맨날 항상 싸울 일 많지. 뭐 생각도 차이가 있고 견해도 차이가 있고.
Q 그럼 나이가 좀 있으셔서 응급의학과 하기가 좀 편하겠다고 선택하신 점이 있으시겠네요?
A 내과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때 한참 젊은 혈기고, 그래도 생명을 다룰 수 있다는 그런 거고. 그런 면에서는 그때 당시의 강남 성모 응급실은 계속 왔다 갔다 하니까. 그런 점에서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뭐. 지금 그렇게 뭐 후회하지는 않는데. 이 병원에서 뭐 봉급 그렇게 많이 안 준 것도 아니고. 일이 좀 힘들긴 하지만.
Q 인턴 때 그럼 응급실에 가서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 거기 있는 걸 보니까 멋있어 보이시던가요?
A 멋있죠.
Q 어떤 면에서요?
A 뭐, 그때는 좀 껄끄럽지 않게 지냈던 사람들이고. 그래서 이것 저것 가르쳐주고. 인투베이션도 주고 C라인(중심정맥삽관)도 주고. 학과에서 뭐 해달라고 그러면 쫓아가서 뭐 이런 것 저런 것도 해주고. 인턴 때 외과 환자 컷다운(cutdown; 혈관절개술) 했다가 사고도 내고. 그런 일들이 옛날엔 좀, 요즘이랑은 위계질서나 서열이 달라서 인턴이면 다 의사인 줄 알고 그러던 시절이었으니까. 인턴이 별 것도 다하고.
Q 근데 이원재 선생님이 이걸 해도 전문의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안 하셨던가요?
A 그런 상상은 저는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의사지 뭐, 그게 전문의가 되어야 되는지에 대한 생각은 그렇게 안 했어요. 잘 몰랐죠. 그러니까 의사로서 일하는 것이 제도적인 전문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별로 신경도 안 썼고. 저는 주위에 의사가 없어서, 의사들이 뭐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의사면 다 의사인 줄 알았는데 마침 4년 차 때 소위 전문의 시험을 본다 만다 그래서 다툼이 있을 때, 학회 일 내지는 의국 일 하면서, "아 이런 거구나." 느끼긴 했죠.
Q 그래도 지금껏 인터뷰를 하셨던 많은 분들이, 윗년차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신 분들이 되게 많았잖아요. 그래도 윗년차가 있고 시작을 하셔서 되게 좋으셨겠어요?
A 김세경 교수님은 사실은 우리 시대보다 전 시대 분이시라서, 제도적인 전문의도 좀 다르고 좀 다른 시대에 사셨잖아. 그러니까 인턴 마치고 외국 가서 미국 의사 자격 하시고 열심히 미국에서 의사 생활하셨고 응급실도 일 많이 하셨고 그래서 "응급실, 응급의학과를 한번 해보자." 해서 말년에 들어오셨던 케이스라서 브루클린, 뉴욕 근처에서 계속 일하시고. 그래서 응급실 소위 세팅을 건물도 설계하고. 항상 아침에 오셔서 모든 환자 회진 돌면서 우리를 매일 가르쳐 주시고. 아 일요일도 가르쳐주셨어. 일요일에는 본인 외과에 적어두시고 대장 파트를 하셨기 때문에 본인 입원환자 회진하러 오시고, 오시면 응급실에 항상 들려서 확인하고.
Q 그럼 아침에 몇 시에 라운딩을 하셨어요?
A 그건 잘 기억은 없지만. 좀 이른 시간이었지. 외과 회진 돌고, 우리는 우리 회진 돌고.
Q 컨퍼런스는 어떻게 하셨었어요?
A 컨퍼런스 했을걸요. 아 참, 오후에. 아침에는 환자 보고하고, 오후에 컨퍼런스 했던 것 같아요. 오후에 컨퍼런스 하면 우리 병원이 흩어져 있으니까 여의도에서도 오고. 그때 당시 의정부 성모까지 조금씩 가고 그랬으니까, 의정부에서도 오고. 그 컨퍼런스 시간에 그 순간에 삼풍이 무너졌어. 삼풍 무너진 날 컨퍼런스 하고 있었는데. 6월 29일인가 그럴 거예요. 95년 6월 29일. 컨퍼런스 하고 있는데 난리가 났다 해서 올라갔더니, 온몸에 재를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들어왔어. 처음엔 걸어 들어온 사람들이 왔으니까.
Q 그때 몇 년 차셨어요?
A 4년 차. (죽은 사람들만 계속 데리고 와서 앞에다 쌓아놨던 것도) 정신없이 이것저것을 하다가 보니, 조용해지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려서 뭐라고 이야기를 못해. 그리고 윗년차가 있었으니까, 4년 차지만 윗년차 세 분이 있었으니까, 그 세 분들이 정리하고. 강남 성모 병원 적을 두고 정리하고 지휘하고 그러던 상황이어서.
Q 그날 (삼풍사고 당일) 하루에 몇 명이나 왔나요?
A 잘 몰라요. 천 명? 천 명인가 그럴 거예요. 하여튼 그 날 이후로 3년 동안 강남 성모병원이 적자를 본 게 어마어마해요. 그 병원에 가면 진료를 못 본다라고 해가지고 그다음 날부터 환자가 안 왔어. 그 손해를 보상을 못 받아서 엄청 힘들었어. 하루에 3000명씩 오는 외래환자가 없었어. 병원이 완전히 텅텅 비었었다니까. 그리고 병실에 입원한 환자도 다리 다친 환자 몇 명, 뭐 이런 식으로.
Q 전문의가 되시고 나서 여러 병원들에 두루 계셨지요? 응급의학과에 대한 인식들은 어땠었나요?
A 96년부터 제가 전문의로서 나름 여러 병원을 다녔잖아요. 물론 뭐 3개 병원이지만. 하여튼 3개 병원을 두 번씩 다녔어요. 강릉 동인, 동해 동인에 있었고. 청주 성모 병원 두 번 있었고, 이 병원(포항 세명기독병원)도 있었고. 물론 다른 지역은 안 가봤지만, 3개 병원은 두 번씩 다녔고, 나름 병원을 많이 옮겨 다녔지. 물론, 훨씬 더 많이 옮겨 다니신 분도 있긴 한데.
응급의학과 의사를 하면서 제일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뭐냐하면, 병원의 주인인 원장이 응급의학과 의사를 뽑으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상상이 안 된다는 거예요. 저 놈을 뽑았을 때 응급실의 매출이 얼마나 올라가고. 예를 들어 소화기 내과 의사를 뽑으면, 쟤가 외래를 몇 명보고 내시경 검사를 몇 개 하고 입원을 몇 명 해서 매출을 얼마 올릴 것이다, 추측이 되는데, 계산이 되는데. 응급실은 그렇지가 않았단 말이야. 소위 법으로 강제하니까 어쩔 수 없이 뽑아야 되니까. 소위 지하건물 센터 대부분, 뭐 권역 이것 때문에 의무적으로 뽑았는데, 봤더니 누구는 버는데 누구는 못 벌어. 누구는 환자를 입원시키는데 누구는 보내기만 해.
저도 이 병원에서 몇 년 전에 원장님이랑 봤어요. 그때 당시 8명이었는데, 응급의학과 월 매출을 봤어요. 보고서 놀랬어요. 둘이 두 배 차이가 나. 응급실은 어느 환자나 그냥 오는 거잖아. 나보고 오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매출이 두 배가 차이가 난다? 검사죠 대부분. CT나 이런 큰 검사들이 많아서 매출이 두 배가 차이가 나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니까 예측을 못 해. 예측을 못 하니까 안 뽑고 싶어 하는 거지. 그런데 뽑아야 된다니까, 어쩔 수 없이 뽑아서 이런저런 다른 궁리해서 능력이 되면 이렇게 굴려보고 하는데.
그 원인은 적절하게 수련을 못 시켜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는 거죠. 그래서 적절하게 무엇을 하고 응급의학과 의사는 나가면 뭐 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식으로 “CRRT(Continuous Renal Replacement Therapy; 지속적신대체요법)를 할 수 있습니다. ECMO(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체외막산소공급장치)를 돌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딱딱 어떤 Job Description 같은 그런 어떤 인증된 게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 써보십시오" 하는데.
옛날에는 그냥 무턱대고, 특히 전남 같은 경우는, 전남대 선배가 후배한테 “야, (병원 후배가 원장이라면) 얘들 괜찮은데 데리고 가서 써봐. 그리고 봉급 얼마 줘. 그럼 괜찮을 거야. 병원 좋을 거야.” 써보니 좋아, 그럼 또 이렇게 쓰고.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는 발전 가능성이 별로 없지 않겠냐. 그리고 영역을 확보하는 면에서도 이거는 너무 한계가 뚜렷하고.
Q 선생님께서 주장하셨던 게 간단하게 뭔가요?
A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무엇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전공할 때는 무엇무엇을 해서 우리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 있으면 누구나 다. 그럼 거기에서 소위 나는 추가로 무엇을 더 합니다. 직업 소개할 수 있는 데서 충분히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Q 그렇게 주장을 했는데, 그게 관철이 안 됐나요 선생님?
A 잘은 몰라요. 잘 안 된 것 같아. 잘 모르는 이유가 학회도 잘 모르고 대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있으니까. 이제 새로 나오는 사람들 보면, 훨씬 많이 나아지고 있긴 한데. 그래도 조금씩은 달라요. 그러니까 지금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관삽관)했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양쪽 PCN(Percutaneous nephrostomy)을 가지고 폴리와 PCN, 3개 카테터를 가지고 사는 사람인데, APN이 왔어. BP가 떨어져서 중심정맥(central line)을 잡아야 되는데, 중심정맥을 잡다가 기흉(pneumothorax)이 됐어. 그래서 38일 동안 벤트를 달고 왔어. ICU에 있다가 한 번 (튜브를) 빼봤어. 그랬더니 안 되겠어서 다시 인투베이션하고.
Q 선생님께서 전문의가 되시고 나서요. 대학병원이나 좀 큰 병원보다 어떻게 보면 새로 오픈하는 병원이나 좀 로컬 병원 쪽을 시작하시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A 개인적으로 대학 병원에 나갈 수가 없었고요. 그때 당시에 복지부 장학금을 받아서, 5년 근무 조건이 있어서 근무를 했고. 지금은 없어졌죠. 그래도 나는 처음에는 쫄았는데, 그냥 병원에 가서 근무하면 되더라고요. 그니까 복지부하고 양해가 서로 되면, 병원에서 똑같이 그 병원의 의사로 근무를 했어요. 그니까 그것 때문에 봉급이 적거나 그런 게 전혀 없었어. 사실 처음엔 몰랐어. 학생 때는 어디 가서 꼭 보건소에 가서 근무를 해야 된다고 착각을 했었어. 근데 그건 아니더라고. 사립 병원에 근무를 하는 거예요.
Q 그럼 전문의가 되시고 바로 동인 병원으로 가신 건가요? 강릉에 무슨 연고가 있으세요 선생님?
A 그때 이제 소위 장학금도 있고. 전문의 시험도 보니 마니 해서 복지부를 많이 드나들었어요. 드나들면서 장학금 담당하는 부서에 가서 이야기했더니, 그때 그분이 경희대 출신이셔요. 뭐 실형도 살고 그랬던 분인데, 지금 어디 교수하실 걸. 박 모 교수님이라고. 그분이 “거기 가봐라” 그랬는데, 마침 거기 이사장님 누군지 알잖아, 이원재 선생님 동기. 그때 정보가 권역응급의료센터 프로그램한다는 정보가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같이 한번 권역 만들어보자 해서 만든 게 그 병원인데, 그 모양 그 꼴이 됐지만. 다른 일 때문에 그렇게 됐지만, 다행히 강릉 아산 오픈 전이라, 지정을 확 받아버렸지. 그렇게 됐던 거예요.
Q 응급실에 쭉 계시다가 중환자 쪽으로 옮기신 지가 이제 몇 년 되셨죠?
A 작년 8월부터 공식적으로 했고. 그 전에는 검진했었잖아요, 와서. 개인적으로 덜 좋은 일이 있어서 다시 청주에서 포항을 내려왔는데, 내려오니 좋은 거였죠 사실은. 청주에서 밤일하다가 거기 4명 있었으니까 주로 밤샜죠. 그러다가 여기 와서, 이제 뭐 밤에 근무 안 하고 검진. 얼마나 좋아. “담배 끊으세요, 술 줄이세요.” 이런 것만 하고 있다가, 오면서 계속 서로 교류가 있다가. 내시경 해라 그러셨어요, 소화기 내과 하시는 분이 계속해서. 그래서 이제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배우고. 뭐 전에 하던 게 있었으니까, 하던 버릇대로 하고.
응급실에서 트랜스퍼가 너무 많은 거예요. 우리가 포항 안에서는 그래도 최종 병원 비슷하게 있지만. 사실 과거에는 설린 병원이 좀 더 컸죠, 레지던트도 있고. 포항 성모도 레지던트 교육병원이지만, 설린이 더 크고 거기는 암센터까지 같이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가 설린 무너지면서 상대적으로 환자가 우리한테 더 몰리고, 그전부터 돈을 더 잘 벌었죠. 그래서 건물 더 세우고, 병상도 늘리고, 암환자도 보게 하고. 그러면서 더 커졌어요. 사실은 지금 3개 병원 중 가장 큰 종합 병원이고. 그다음 포항의료원이라고 종합병원 있고.
환자가 나름 기대들도 있고 할 텐데, 그냥 오는 사람을 보내는 것은 좋다 이거예요. 정말 치료가 필요해서 보내고 상급 종합에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요양 병원 환자들을 보내는 게 사실 보기 안 좋더라고. 요양병원에 계신 분들은 물론 상태 안 좋죠, 상태 안 좋으니 요양 병원에 있고. 그러다 보니 더 안 좋고 그런데, 자꾸 가는 게 안 좋고. 개인적으로 내가 원장은 아니지만 창피하고, 병원의 멤버로서 그 정도는 커버해 줄 수 있어야 되는데. 그래 가지고 나섰지. 원장한테 쫓아가 가지고, “열 받는데, 제가 한 번 입원시켜볼까요?” “그래 입원시켜봐라.” 입원 좀 시키다가 재미 붙어가지고, 한 3, 4개월 동안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맨날 전화받고 밤새 전화받고. 지금도 전화 이제 항상 옆에 두고 자는데, 전화가 안 와요 요즘에는. 밤새 전화받고 뛰쳐나오고. 한 번은 수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26번이 와있더라고, 아 안 되겠다 그래서 수영을 포기할까 하다가 수영을 했어.
Q 응급의학과가 응급실에 한정적이지 않고 선생님 보면은 항상 이렇게 좀 내시경도 그렇고 중환자과도 그렇고 다른 쪽을 많이 도전을 하시는?
A 강릉 동인에서는 2년 선배가 오너니까 이것저것 별 짓 다했죠. 이비인후과도 했다가 바꿔서 신장실도 하고. 이것 저것 잡스러운 일들 하고. 거기서도 내시경 했어요.
Q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좀 물어볼게요. 아까 말씀하신 ECMO, CRRT. 응급의학과가 해야 하나요?
A 음, ECPR(ECMO CPR)을 하잖아. 물론 뭐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 ECPR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거든요. 물론 잘 선택해서 자원을 쏟아부으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ECPR을 해야 되면, 물론 이런 데서 하기는 좀 어렵겠지만, 그런 것 까지 하려면 ECMO 뭐. 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CRRT는 별 거 아니니까. 그거는 삽관만 하고 기계만 달아주면 되는 건데. 그거는 사실 응급(emergency)은 아니잖아요. 몇십 분의 시간은 있는데, ECMO 같은 경우는 몇 분 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서, 나오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해결하면 살 수도 있고, 기다리면 안 하니만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모르죠. 그거는 제가 얘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데. 상상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응급실은 좀 안 좋은 이야기지만, 다른 과 의사들 뒷감당? 다른 과 의사들이 봐주기 전에 준비해주고 넘겨주는 정도만 가지고 할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좀 더 정말 집중적인 치료를 할 것이냐라고 했을 때, 다 하지는 않지만 그런데가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큰 상급 병원이면 각 과 펠로우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할 수도 있겠죠.
Q 내시경은 어떻습니까, 응급의학과에서 하는 건?
A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필요한 검사는 아니죠. 초음파는 당연히 필요하죠. 초음파는 기본이니까 필요하지만, 내시경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응급실에서의 내시경은 이물 제거술은 필요 없잖아요. 이물 제거술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데, 그럼 지연술을 할 것이냐.
식도(esophagus)에 있는 식도정맥류 출혈(esophageal varix bleeding)은 쉽게 할 수 있어.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상부위장관 출혈(upper GI bleeding)로 들어갔을 때, 식도정맥류만 있을 것이냐, 그렇지 않거든요. 위 정맥류는 조금 더 좋은 내시경과 조금 더 숙련된 기술적인 내시경 전문의가 있어야 해결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 궤양성 출혈(ulcer bleeding)도 정맥류 결찰술(varix ligation)과는 조금 다른 테크닉이기 때문에. 정맥류 결찰술은 뚝딱 하는 테크닉이 딱딱 있어서 쉽지만, 나머지 출혈은 블리딩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다 달라서 그건 트레이닝시킬 수 없어요.
그렇다고 식도정맥류 출혈 하나만을 위해서 내시경을 배우냐, 그건 안되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고. 그래서 내시경이 별 의미는 없지만, 초음파야 뭐 요즘 강연이 다. 초음파는 하는데, 초음파를 잘 활용하는 것은 아직은 좀 멀지 않았나. 이제 수가가 7월 1일부터 만들어졌는데, 우리 병원 현실은 좀 안되더라고요. 다른 병원 현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물론 분당제생은 많이 하시겠지만, 적어도 환자가 오면 흉통, 복통이면 반드시 초음파를 한번 정도 하는. 쓰라고 우리에게 숟가락을 만들어 줬는데, 활용은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중환자 입원 의학과(ICU hospitalist)는 응급의학과가 해야 할까요?
A 우리 병원 현실에서 중환자 의학과 내지는 입원 의학을 제가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밤에 일할 수 있는 의사가, 밤에 자기가 병원에 있으면서 환자를 진료하겠다 하는 의사가 응급의학과 의사 외에는 없어요, 현실적으로. 밤에는 다 집에 있는 것으로 전제를 하고 살아요. 모든 전문의가 그래요. 가정의학과 의사가 입원 환자를 보면서 밤에 일을 하면 어떨까 그랬는데, 가정의학과 의사는 요즘 그렇지 않다고 누가 수정을 해주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밤에 집이 아닌 병원에 있으면서 환자를 진료하겠다 하는 의사가 없어서 내과의사보다 페이가 30%, 40% 더 비싸요, 우리 병원 현실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응급의학 전문의가 저를 포함해서 5명씩이나 포함되고 있죠.
Q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A 그럼요. 물론, 다른 응급실에서 일하다 오신 응급의학 전문의 선생님들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
Q 어떻게 보면 응급실은 되게 active 하고, 중환자실은 되게 calm하지 않습니까. 적응하는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A 저는 뭐 괜찮았어요.
Q 질문의 결을 좀 바꿔서요, 선생님. 그 얘기 좀 해볼까요? 선생님이 수련 받으신 1회 전문의 선생님들 중에서, 면허 번호가 제일 빠르시지 않습니까. 논란이 좀 있었나요, 번호에 대해서?
A 저는 잘 모르는데, 있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저는 성적순대로 원래 알고 있었는데(웃음). 그러니까 복지부에서 면허 번호를 부여하는 원칙이 있어요. 의사 면허 번호는 대학을 가, 나, 다 순으로 세워요. 그 안에서 이름을 가, 나, 다로 세워요. 그래서 제 면허 번호가 이원재 선생님이 제 동기인데, 면허 번호가 제가 더 빨라요. ‘이기’고 ‘이원’이라서 조금 늦는 거고. 제가 2만 9천 번 대 인데, 저희가 2만 9천에서 3만으로 넘어가던 번호예요. 그래서 저는 가톨릭의대라서 그때 가천의대 없을 때, 지금은 가천이 더 앞에 있죠. 가톨릭의대가 제일 앞 번호를 받은 거예요. 그리고 전문의 자격을, 번호를 부여하는 방법은 의사면허 번호 순서대로 줘요. 제가 그때 알기로는 레지던트 수련을 안 한 분과 한 분을 구분했다고 들었는데. 어찌 됐든 그래서 제가 레지던트 수련한 선생님들 중에서는 의사면허가 제일 빨라요. 그렇게 구분해서 거기서 면허 순으로 세웠다고 그때 당시에 복지부 사무한테 들었어요.
Q 학회 일을 많이 하셨을 거 아닙니까?
A 아 저희가 제가 그때 김세경 교수님이 1년. 1년 총 안되죠. 가을에 학회를 받아서 했으니까, 만 1년인가? 1년 정도 했을 거예요.
Q 학회 하고 그럴 때는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선생님 몇 명 되지도 않았었을 텐데요?
A 저는 그 의사님들 소위 회장님과 이사님이 결정하면 시키면, 저는 잡일을 했기 때문에, 제가 뭐 한 것은 없어요. 그때 미국 학회장 책 쓰신 분 누구죠? 그때 미국 학회장이었던가 누구였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3, 4일 동안 운전기사 했어요.
Q 그때도 외국 초청 연자가 있었나요?
A 그때 초청했었어요.
Q 그런 비용도 만만치 않았겠네요?
A 그런 문제들은 학회 비서와 이런 사람들이 했고. 저는 소위 업무도 하면서, 레지던트 일 하면서 그런 걸 했으니까 자세히 몰라요.
Q 동기들끼리 아까 공부하셨던 얘기 좀 해주시죠?
A 그때 메이저, 응급의학과에 잘 기여하던 사장님하고 얘기했는데, 거절당했어요. “돈을 좀 대주십시오. 우리 이렇게 하는데, 의미 있지 않겠냐. 우리 선두 그룹 12명인데, 가장 많고.” 그래서 우리 각자 돈 내고 다 했어. 그래서 원주 기독병원에서 우리 맛있게 사주시고 그러셔서 잘 먹었어.
Q 치악산 앉은뱅이 술 이야기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A 그때 먹었나? 안 먹었을 것 같아요. 원주 기독병원 바로 앞에 나가서 오른쪽에 있는 어디서 회식 자리할 때 우리 불러줘서 갔지. 전체 송년 회식할 땐가?
Q 무엇을 가지고 공부하셨습니까? 텍스트도 없었을 텐데요?
A 그때 우리가 만들지 않았나요? 리뷰라고 해가지고 3권인가 4권짜리를 만들었어요. 강의용까지 준비해서, 각자 준비해서 12명이 다 나누어서 만들어서 그거를 책으로 만들어서, 그 책까지 리뷰해서 공부하고 그랬었어요.
Q 그 책이 시험에 도움이 됐습니까 선생님?
A 아니죠. 시험은 이 조그만 책 여기서 나온다고 해서 마지막에 공부한 것 같은데요, 제 기억에는.
Q 시험은 누가 1등 했을까요?
A 저는 아니에요, 저는 절대 아니에요. 저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집중해서 공부해서 시험 잘 보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쓱 보고, “어우 잘 봤네”. 생각이 안 나면 또 한 번 보고. 이렇게 대충 보고 “준비됐어.” 그러면 들어가서 보다가 모르면 찍고 나오고 이런 거지.
Q 1, 2, 3회 선배들하고 4기 선배들하고 따로 공부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A 우리는 따로 했죠. 4기끼리만 했죠. 12명. 뭐 같이 끼우자는 얘기가 잠깐 나왔던 것 같긴 한데, 우리는 우리끼리 대부분. 그리고 선배들하고 있으면 누가 좋겠어요. 나쁜 기억도 있고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후배는 나쁜 기억이 그래도 많으니까. 우리끼리 집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은 건데.
Q 동기들끼리는 많이 친하셨겠어요?
A 그때 친해졌는데, 저는 저대로 뭐 이러고 다 뿔뿔이 하고, 수도권에 계신 분들은 서로 볼 기회가 자주 있었겠지만, 거의 못 보고 살았어요. 학회 때마다 항상 명찰을 보면 “오, 너 거기 가있네?” 뭐 이런.
Q 이제 지나고 보시니까, 30년쯤 지나고 보시니까 그래도 내과 했으면 좋았을 걸. 이런 생각이 드세요?
A 아니요, 물론 아까 이야기한 주 28시간 일하는 선생님들에 비하면 아주 열악했지만. 나중에 여행을 갔었잖아요. 그때 2주를 갔어요. 런던과 파리를 2주를 갔어요 큰 마음먹고. 그리고는 그다음에 한 달 내내인가? 하루 꼴로 근무했습니다. 죽을 뻔했습니다. 24시간씩 계속 그거 메우느라고. 그렇게 했는데, 어쨌든 그렇게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때 당시에 2주 동안은 가서 그냥 잊어버리고 살 수 있는 그런 게 있고.
그리고 지금 입원 환자를 보고, 말기 환자들을 보면서 더 좋게 생각해요. 오전에도 아까 잠깐 보호자 면담을 했는데, 말기 심장병으로 투석하는 환자인데 당뇨족(DM foot)이 아주 심해서 절단을 오늘 2시에 수술하기로 했는데, 아버지도 신부전(CRF)으로 돌아가신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될 수도 있겠다. 이대로 수술실 들어가서 엄마를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러서 이야기하고. 나름 정 들어서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요.
할머니들 회진 가면 하는 게 뭔데. 손 한 번 잡아주고. “아이고, 좋아지셨네” 한 번 웃어주고. 그러면 그 다음날 보면 기분 좋아지고. 또 나빠지면 기운 내라고 밥 잘 먹어야 낫는다고. 물론 몇 년째 누워 있었지만, 그래도 또 좋아하고. 이런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아요. 응급실에서만 환자 보고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마우스 깔딱깔딱거려서 확인하고 이런 것도 있지만. 나름 좋은 것도 있어요. 그렇게 보면 내과 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살아보고 이렇게도 살아보니까 정말.
Q 응급의학과의 단점으로 그거 이야기하신 분이 꽤 많아요 정말. 자기 환자가 없다는 거가 의사로서 좀 만족감이 떨어진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다시 하라면 그래도 응급의학과 하시겠습니까?
A 다시 할 기회가 있으면 내과 해보고 싶죠. 그니까 진짜 사실은 저는 의대도 우연히 왔기 때문에, 다시 기회가 있으면 저는 기계 고치는 사람 하고 싶어요. 그거를 하면 더 잘했을 것 같아.
Q 아주 친한 후배가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어요. 응급의학과를 권유를 하시겠습니까 선생님?
A 네
Q 어떤 면에서 그렇죠? 이건 좋은 과다?
A 좋은 과죠. 좋은 과고 할 수 있는 게 많고. 그다음에 어느 한순간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 판단의 착오 내지는 판단의 부족 이런 걸 많이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요, 하다 보면. 지금 환자를 봐도 그런데, 그런 것들을 만약에 줄인다면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일하는 것이 보람을 많이 키울 수 있는 것도 있죠. 그리고 전체적인 로딩이 적고.
왜냐면 입원 환자를 가지고 있으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환자를 잘 보려면, 주말에도 보려면 결혼도 하지 말고 혼자서 올인해라. 아니 내가 보다가, 남이 보다가 내가 보다가. 아니 어떤 날은 토요일 일요일 이틀 회진 안 하고 월요일에 와보면, 이틀 동안 깔아놓는 거예요, 중환자를. 일주일 5일 동안 내가 막 추슬러놓고, 그럼 또 주말에 나빠지고. 물론 밤도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해주면 좋죠. 그래서 1주일 일하고 2주일 쉬고, 이런 것도 있긴 하지만. 환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말 그런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의사가 그럴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일부 병원의 일부 의사는 정말 환자를 치료하는. 예를 들어서 상급 종합의 일부. 예를 들어서 장기이식을 한다거나 이런 정도의 환자를 본다거나 이런. ECMO를 달아 놓았다던가. 이렇게 하는 몇몇 병원에서는 정말 집중적인 일이 필요하겠다. 그래서 저도 애한테 “넌 의사 하지 마”. 아직 2학년밖에 안 됐지만, 뭘 알겠어요.
Q 그럼 응급의학과 1년 차를 하고 있는 친구들한테는 뭘 배우라고 하고 싶으세요 선생님?
A 저는 시작하는 의사들한테는, 지식보단 인간적인 애정. 고상하게 얘기하면 윤리겠지만, 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 그래서 정말 이 환자를 사람으로 생각하고 내 가족으로 생각해서, 남들은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인간적으로. 자기 양심에 있어서 인간적으로 잘 돌봐줄 수 있는 그런 것을 가져야만 의사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가서 현미경으로 보든지 뭘 해라. 환자 보지 마라. 실력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필요가 없어. 의사 하면서 머리가 좋거나 실력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저 업투데이트(Up to date) 보는데, 환자 오면 업투데이트 보고 이 약을 뭘 써야 되는지 봐요. 반코(vancomycin) 쓸 때마다 업투데이트 보고 반코를 어떻게 줘야 되는지 딱 보면 나오는데 뭐. 그렇게 보면 되는 거지, 머리 좋을 필요 없어. 지식은 다 있는데 뭐. 물론 뭐 한 달에 10만 원씩 내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업투데이트 한 달에 10만 원인데, 한 달에 10만 원 내면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Q 선생님 처음 시작했을 때 보다 39년이 지난 지금 응급의학과가 얼마나 발전했나요 선생님? 갈 길의 반쯤 왔습니까? 더 왔나요?
A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니까 저는 저 혼자 일하다시피 내진을 이렇게 해서. 진짜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알 수도 없었고. 글쎄요. 지금의 그 수급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우리의 업무량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따라서 미래가 달려있기는 하겠지만. 그거는 정말 잘 계산해서 조절을 해야 되는데. 그 잘 계산하는 전제는, 좀 죄송하지만 대학 교수 빼고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대학 교수 빼고 우리 의사들.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업무량과 앞으로 응급의학 전문의의 수요가 얼마나 될 지에 대해서 판단하고, 학회가 복지부하고 얘기하고 조절해서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우리 응급의학과의 수준은 절반 이상 와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게 전제되면. 그런데 그렇지 않고, 대충 밑에 레지던트들 늘리려고만 하고, 지금 벌써 그 입원 전담 전문의 때문에 그 얘기 나왔잖아요. 정형외과, 응급의학과 입원 전담 전문의를 뽑겠다고, 티오 받으려고. 그러는 욕심을 부리면 응급의학과의 미래가 별로 좋지 않을 수 있겠죠.
응급의학과 1기 22명의 개척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인터뷰 모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