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16
"교통사고 나서 엉망진창인 사진, 헬기 떨어진 사진 보여주며
이럴 때 수습하고 응급실에서 처치하는 과가 있다고.
2학년 때 외과, 내과를 책으로 배우다가 실습 돌기 시작했는데,
환자들이 다 죽상이야 병실에 들어가면.
이거 내가 무엇을 해주지, 해줄 게 없는 것 같은데.
이 환자는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어. 재미없는데.
무슨 과를 하나 고민하다가 그 강의를 듣고 확 와 닿았었요."
"금강산 관광 크루즈에는 헬기 이송 시스템이 없었지.
한 번은 뇌지주막하 출혈 의심되는 환자가 한 명 생겼어요.
어지럽다고 하면서 계속 토한다. 그래서 선장한테 배 돌려야 한다.
배는 못 돌린다고 그래서 북한이랑 얘기해서 통통배 타고.
저거 후송할 때 터지면 죽을 수 있으니 내가 가야 된다고 하니까
나보고 가면 안 된다고. 의사는 못 내린다고.
한참 하더니 간호사 남고 나만 가라고."
"난리가 났죠 아주. 조금만 많이 찢어지거나 그러면
다 대학 병원으로 보냈거든 충북대로.
내가 다 해주니까 동네에 소문이 나서, 서울에서 명의가 왔다고.
한 달 반인가 하고, 재미가 없는 거예요.
이사장과 면담해서, 오래는 못 할 것 같다고.
나는 응급실만 하기로 했는데 왜 병동 콜을 받으라고 하냐.
그러면서 월급 올려줄 테니까 더 있으라고.
그건 됐고 한 달 더 있어보고 결정하겠다고.
역시 시골에는 오래 못 있겠더라고."
이름 : 장문준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51번
수련병원 :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현근무지 : 성애병원
Q 조광현 선생님하고 (영동세브란스)동기신데, 선생님께서 먼저 응급의학과 하자고 하셨다면서요?
A 나는 응급의학과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의과대학 2학년 2학기 때. 왜냐하면 그때 88년도 올림픽 때문에. 물론 이제 이한식 선생님이 하게 된 것도, 올림픽 조직 위원회에서 의무 대책에 대한 것을 한국 측에 요구하다 보니까 전담자를 뽑아서 하게 됐는데. 그때 88년도에 (이한식 선생님이 영동세브란스에) 응급의학과를 시작하셨고. 레지던트도 아무도 없고 올림픽 그쪽에 들어가서 바쁘신데, 강의도 없죠. 과도 없으니까.
재활의학과 교수님이랑 두 분이 친하신데,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강의를 하고 끝 무렵에 5분 남기고 이런 트라우마 사진 몇 장을 보여주면서, 이런 과(응급의학과)도 있다고 소개하셨어요. 그때 저게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서. 내 성격에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나는 빽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3학년 봄에 일단 인사부터 해야겠다 싶어서. 89년도에 응급의학과 장석준 선생님이 그 과에 들어갔어요. 선배도 있고 인사해서 도장부터 찍어야겠다 싶어서 3학년 때 인사를 했지. 딱 갔는데, 그래서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 사서 입었어요.
인사하고 나오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이한식 선생님이. 그래 가지고 잠깐 3분 정도 뵙고 나왔어요. 그러더니 장석준 선생님이 다독이면서 “처음에는 다 그렇다.”라고 하시면서, “너 인턴인데 지금 어떻게 나왔냐?” 그러셔서, 장석준 선생님도 내가 인턴인 줄 아셨던 거야. 그래서 지금 학생이라고. 그래 가지고 4학년 때 또 인사하러 갔지. 이한식 선생님이 또 퇴짜를 났어요. 응급의학과 아직 교수도 없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친구들 신촌에 다 지원(Apply) 하고, 영동으로 인턴 하러 가는 것이 드문 시기였는데. 나는 그거 하겠다고 신촌에는 응급의학과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영동세브란스에 가서 인턴 하고. 인턴 들어가자마자 3월에 바로 인사하고. 그리고서 얼굴 표정이 좀 바뀌셨더라고요. 그래서 인턴은, 대신에 픽스턴 해서 계속 들어올 거니까 다른 과 돌다 오겠다고 그랬죠. 그래서 8월까지 용인 파견 가고 다른 과 여기저기 돌다가, 8월부터 (응급실에서)1년 차처럼 했죠.
Q 그럼 본과 2학년 수업 때 5분 들었던 것이 결정적이었군요?
A 그게 너무 인상 깊어 가지고 슬라이드 몇 장이.
Q 그게 정확히 어떤 사진이었습니까?
A 교통사고 나서 엉망진창인 사진, 헬기 떨어진 사진. 다 미국 사진이죠. 그런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럴 때 수습하고 응급실에서 처치하는 과가 있다고. 2학년 때 외과, 내과를 책으로 배우다가 실습 돌기 시작했는데, (내과 외과 병동에는) 환자들이 다 죽상이야 병실에 들어가면. 이거 내가 무엇을 해주지, 해줄 게 없는 것 같은데. 이 환자는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어. 재미없는데. 그러다가 무슨 과를 하나 고민하다가 그 강의를 듣고 (응급의학과가) 확 와 닿았었요.
Q 근데 보통은 학생 때부터 내가 무슨 과를 하겠다고 하면 별종 취급 당하지 않나요?
A 근데 그때 다른 사람들은 응급의학과를 모르지, 친구들도 관심 없고. 내가 친한 애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약간 갸우뚱하지만 뭐라 할 건 아니니까. 친한 친구들이랑 다 떨어져서 인턴을 했죠.
Q 지원(Apply)하고 픽스턴으로 돌면 인턴 때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일하실 때 어땠어요?
A 정말 신났죠. 그리고 스스로도 신나서 일이 너무 재밌었어요. 응급실에서 진료하고 그러는 게. 조광현 형이랑 6개월 정도 같이 돌은 것 같아요. 그 형이 술기(Procedure)를 되게 귀찮아하셔서. 그래서 히스토리는 내가 다 할 테니까, 너는 가서 환자한테 뭘 해라. 그래서 그때 C라인(central line; 중심정맥 삽관)이 처음 들어오기 시작을 했어요. 근데 그때 누가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 전에는 일반외과(GS)에서 컷다운해서 돌리는 거, 그게 진짜 흥미진진했었는데. 이게 들어오니까 왜 이렇게 어렵게 잘 되지도 않고 재질도 안 좋아서, 들어가다 보면 계속 꼬여. 그것도 엄청난 술기(Procedure)인 것처럼 4년 차 허락받고, 1년 차 2년 차 내려와서 간신히 하는데. 들어온 날부터 배우긴 했지만, 주진 않더라고. 자기 외과로 입원해야 하니까.
일단 C라인 들어온 다음부터는 막 찔렀지. 근데 막 찌르는데 다 들어가. 처음 하는데도 떨었던 기억이 없던 것 같아요. 정말 신나게 일을 해서 그때는 중환자 오면 대퇴 정맥(femoral vein) 잡고 올라와서 인튜베이션(intubation; 기관삽관)하고 C라인 잡고 하면 5분이거든. 세트도 단순하니깐. 요새 세트는 챙기고 나서 하는데 5분 걸리니까.
Q (학생때부터) 오랫동안 하고 싶어 하셨던 과인데, 막상 들어가니까 기대했던 것만큼 좋던가요?
A 왜냐하면, 아무도 간섭을 안 하니까. 그때 당시에는 응급실에 인턴밖에 없는데, 남의 과를 부르지 않는 한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다 하고. 그래서 내가 응급의학과를 했다니까, 내과 1년 차들이 되게 독사 같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 가지고 엄청난 것을 요구하는 거야. 응급실이 항상 자리도 없고 지금 하고 똑같은데, 환자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리가 없어도 EKG, ABGA 안 해놓고 연락하면 작살나는 거야.
아니 지금 숨 넘어가는데, ABGA 하고 체스트(chest PA; 흉부사진) 찍어 놓긴 했는데. 그래 놓고 환자는 앉아서 숨 가쁘게 쉬고 있는데, 내가 할 줄 모르니까. 그래서 1년 차를 불렀지, 개작살 한번 나고 오더 내고 하더라고. 그래서 가르쳐 주지를 않으니까 욕만 먹었지. 그다음에는 “별것도 아니구먼”하고 직접 하고. 그래서 1년 차들이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 웬만해서는 태클을 걸지 않고 안 하면 오히려 뭐라고 많이 했죠.
반면에 외과는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거야. 결국엔 GS환자라는 거지. CT는 당연히 못 찍는 거고. GS는 빨리빨리 불러야 하거든. 검사실 가서 찍어가지고 오고. 심부름 꾼만 했죠. 그러다가 후반부 가서 자꾸만 한 두 개씩 하니까 4년 차가 내려오더니, “너 이 새끼 들어와 봐” 그래 가지고 갑자기 왜 부르는지. C라인 잡았다고.
Q 그런 거 가지고 다른 과에서 많이 혼났나요?
A 많이 혼났죠. 근데 레지던트가 그 순간에 뭐라고 할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죄송합니다 하고 말았지만. 올라가서 스텝들한테 혼나는 것은 이한식 선생님이 다 막았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위에서 스텝들, 우리한테 말은 안 했지만 다 알거든. 근데 내려와서 우리한테 뭐라고 하지는 않아. 근데 아주 안 좋을 때는 한 마디 하시지. “좀 살살해라.” 그런 적이 가끔 있어요. 그리고 막 저지르는 것은 이한식 선생님이 스텝들을 막아줬고, 그리고 위에 바로 송근정 선생님 있었고. 김성중 선생님, 장석준 선생님은 그 당시에 응급실을 잘 안 지켰으니까.
송근정 선생님이 우리를 되게 좋아했어요. 우리가 픽스턴 들어올 때부터 응급실에 소문이 자자했거든. 싸움닭, 독사 같다고. 근데 우리가 들어오고 나서 사람이 180도로 바뀌었다고 그 당시 간호사들이. 1년 차 때 엄청 무서웠대요. 우리 때는 무서운 적이 한 번도 없어. 혼난 것은 딱 한 번. 우리를 학회로 보내줬어요 놀다 오라고. 그래서 갔다가 1박 2일 하고 오전에 와야 하는데, 우리가 놀다가 밤에 왔어요. 둘을 보내고 본인 혼자 1박 2일을 당직 섰으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Q 그래도 (같은 연차에) 둘이니까 좀 의지하는 면이 있었겠어요?
A 그런 면도 있었겠지만 우리 둘이 워낙 나쁘게 말하면 안 맞아. 둘이 맞은 적이 없어. 어차피 근무는 번갈아 하니까, 겹칠 때가 있어도 거의 따로따로 생활했지.
Q 선생님 다음은 (아랫연차로) 누가 들어왔나요?
A 내 밑으로는 김인병 선생님하고 최성욱 선생님.
Q 선생님이 (지원하라고)꼬시셨어요?
A 최성욱 선생은 밑에서 인턴을 해가지고, 본인이 재밌어해서 하신 분이고. 김인병 선생은 원주 세브란스에서 인턴하고 들어왔는데, 원주도 꽤 힘들게 돌리는 응급의학과로 알고 있었는데. 1년을 인턴 생활했는데 좀 편하게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응급실에 와서 되게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처음 들어와서 힘들어하는 느낌이 딱 보이더라고. 그래서 사실 나는 내 인생에서 우울증이 딱 한번 왔어 그때. 어떻게 할지 모르는 거야. 항상 내건 내가 알아서 했는데, 밑에 사람을 직접 가르치고 챙겨야 하는 것은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 가지고 그때 처음으로 의기투합을 해가지고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랬더니. 일단 근무시간을 딱 정하자. 일단 우리가 마냥 못 자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1년 차를 많이 재울 수는 없으니까, 무조건 4시간만 재우자. 첫 1년 차 들어오면 매일 당직이니까. 그래서 아침 회진 돌면, 무조건 가서 재워. 4시간이 딱 되면 가 가지고 독사처럼 깨워.
Q 그러면 이제 원주세브란스에는 누가 계셨습니까 동기가?
A 이부수 선생님, 김영식 선생님. 거기도 둘씩이었던 것 같은데. 가톨릭대도 두 명씩이었고, 원주도 두 명씩, 영동도 두 명. 신촌에 내 동기는 김승환 선생님하고 구홍두 선생님.
Q 신촌 하고 영동 하고 많이 교류가 없었습니까?
A 그 당시에는 교류가 없어서, 3년 차인가 그때부터 원주랑 신촌이랑 같이 교류를 하자 해서 야유회를 가기 시작했죠. 컨퍼런스를 하는 게 아니고. 그래서 처음엔 원주에서 산 좋고 물 좋은데 있으니까, 이쪽으로 와라. 그래서 치악산 밑에서 계곡에 발 담그고 술 마시면, 술이 안 취한다는 둥. TV광고에 포카리스웨트 광고 나오잖아. 물보다 흡수가 빠르다. 저기에 술 섞어 먹으면 뿅 가겠네. 그래서 그거 가져가서 소주 부어서 물 마시듯이 마시다가 계곡에 빠져 죽을 뻔했죠.
Q 그 전에는 교류가 없었어요?
A 있기는 있었는데, 컨퍼런스를 하자고 해서 원주에 밤늦게 가서 하고 했는데. 컨퍼런스 기억은 잘 안 나고 술 먹은 기억밖에 안 나요. 신촌에서도 한 번 하고, 영동 한 번 이렇게 하자고 했는데, 사실은 다 못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옛날 같으면 인턴한테 맡겨 놓고 다 나가면 되는데, 우리가 일 시작하니까 다 맡겨놓고 나가지를 못하는 거야. 누군가는 항상 남겨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까.
Q 컨퍼런스 할 때는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A 우리가 커리큘럼이 별로 없으니까, 이한식 선생님이 정해주는 저널이나 토픽 이런 거. 작은 방에서 인턴 한 명,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한 두 명. 이렇게 셋이서 앉아서 했어요. 리딩 하기도 하고 발표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저널 했고, 그리고 토픽이 1년에 두 번. 세미나가 연차당 1년에 하나씩.
Q 당시에는 텍스트 북이 없었잖아요?
A 틴티넬리 2판이 있었어요. 1500페이지 밖에 안 돼 그건. 그것부터 시작을 했어요. 처음에는 텍스트가 없었죠. 거의 없다고 봤고.
Q 전공의 4년 차가 되셨어요. 이제 시험공부를 해야 되는데, 그 얘기를 좀 해주시죠.
A 시험공부는 솔직히 텍스트도 틴티넬리 한 권 가지고 있는데, 이거에서 다 나온다 뭐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도 했었는데. 로젠도 있었죠 3권짜리. 근데 영어 책 이렇게 두꺼운 걸 언제 다 보나 해서, 그때 시험 출제를 위해서 미국에서 시험 출제 문제지가 얇은 게 3권(PEER) 있었어요. 저기서 내시지 않을까 해서, 리뷰할 때 가끔씩 참고로 텍스트 보다가. 처음에는 쉽게 나올 거라고 생각을 해서 솔직히 공부 열심히 많이 안 했어요.
Q (응급의학 전문의) 시험이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잖아요?
A 그렇죠. 그 얘기가 1년 차부터 모임 할 때마다 얘기가 계속 나왔고. 이한식 선생님 방에 들어가면 책상에 그런 공문, 서류들을 그냥 놔두시거든. 그럼 퇴근하잖아? 그럼 그 방에 들어가서 뭐 있나, 회의록 같은 것도 보고. 그런 것을 보면, 아 무언가를 계속하고 계시는데, 확정된 것은 없구나. 분위기상 보긴 보겠지. 그래서 속으로 기도를 했죠. 내가 3년 차 때쯤에 1회 보드 볼 것 같다. 안 돼 안 돼 조금 더. 내가 딱 4년 차 마칠 때 보는 게 최고야. 항상 이런 꿈을 꾸었죠. 근데 진짜 딱 그렇게 되가지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시험도 쉽게 나오겠지.
Q 원주에 모여서 공부를 하셨다면서요?
A 원주야 항상, 물 좋고 산 좋고 한 곳이니까.
Q 몇 월에 모이셨습니까?
A 우리 12월에 모였죠. 우리가 나간다니까 이한식 선생님이 “나가면 뭐하냐? 텍스트도 지금 공부해서 뭐 할래, 평소 실력대로 보면 된다” 그러셔서, 쉽다는 이야기겠죠. 그래 가지고 시험 봤죠. 시험은 솔직히 어렵지 않았어요.
Q 다른 병원은 8월부터 손 놓고 공부했다면서요?
A 길병원이 그랬다니까, 그래서 처음에 들어가서 막 놀면서 시험공부하다가, 텍스트를 딱 꺼내 드는데, 펼치기 전에 겉이 좀 까만 거야. 그래서 좀 낡았다 하고 생각하면서 봤더니, 안에가 완전히 (줄이 쳐져서) colorful 한 거야. 처음부터 뒤쪽까지 완전히 다 봤던거야 이미. 이건 뭐지 했다가 좀 지나니까 어차피 뭐 이한식 선생님만 믿어야지 했지
Q 1,2,3기 선배들하고 4기 하고 따로 공부를 했다면서요?
A 우리랑 같이 어울리기는 좀 그랬지. 왜냐하면 나이들도 있고, 생각이 우리랑 좀 다르니까. 그리고 사부님들 모시고 다니는 사람들이니까 정보력이 많잖아. 그걸 우리한테 풀지 않아요.
Q 그럼 좀 서운하기도 했겠네요?
A 원래 서운함은 1,2년 차 때 되게 많았지. 특히 장석준 선생님, 김성중 선생님은 항상 밖에 있었어요. 그래서 환자 진료는 우리 때부터 많이 했어요.
Q 그럼 어떻게 보면 3회쯤 돼야 이제 응급실에서 환자도 이렇게 (주도적으로 보기 시작했나요)?
A 그렇죠. 연차별로 하나씩 있어야, 남의 과한테 보이기도 과처럼 보이니까.
Q 수련 4년을 마치고, 선생님 기도대로 딱 (응급의학과 전문의)시험이 결정이 됐어요. 신나셨겠네요? 시험 본다는 소식을 어떻게 들으셨어요?
A 정말 신났지. 이한식 선생님 있잖아요. 그리고 장석준 선생님도 그것 때문에 계속 바깥으로 왔다 갔다 하시고 그러니까. 그래서 정확히 언제 알았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4년 차 봄쯤에 시험될 것 같다는 식으로 그러다가. 막판에 결정된 것 같은데.
Q 1차 시험 있고 2차 시험이 있었잖아요. 2차 시험(구술시험)은 어땠나요? 누가 담당이었나요?
A 누구였더라. 나는 들어가서 인사만 하고 나왔던 것 같은데.
Q 슬라이드 시험도 있었습니까?
A 그건 없었죠. 그걸 준비할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2차에서 떨어트릴 명분도 없었으니까. 하여튼 너무 쉽게 끝났어요. 그리고 그때 더블 보드 하신 분들 중에 학회 일도 안 하고, 내지는 응급실장 하고 하는 사람들이 시험 보러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험문제를 좀 어렵게 내야 한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우린 그런 대상이 아니니까. 나는 정말 쉽게 나왔어.
Q 그래서 전문의 면허증을 딱 받으셨어요. 기분이 참 묘하셨을 것 같아요?
A 내 예상대로 다 됐다. 좋았죠. 근데 이제 너무 순탄하게 되니까 좀 걱정됐어요. 다른 분들은 몇 년씩 기다리다가 전문의 되시고 하셨으니까요.
Q 선생님이 시험에서 51번이시니까 제일 마지막 번호잖아요. 제일 어리셔서 그런 건가요?
A 네, 나이 순이라고 하드라고요. 내가 7살 때 학교 들어가고. 제가 알기로는 나이 순하고 의사 면허 번호. 면허 번호도 꼴찌예요. 4만 4천.
Q 막내라고 모임에서 많이 이쁨 받으셨겠어요?
A 그때는 다 동기 취급하고 그랬죠. 특별히 막내라고 한 것은 없는 것 같고.
Q 심부름하고 그런 일은 없었습니까?
A 그럴 일도 없었죠. 무슨 컨퍼런스니 워크숍이니 할 때 만나면, 성토 대회(응급의학과 전공의 대책위원회)하느라고. 그래서 어찌 보면 무슨 노조들이 회의하는 것 같았어. 강성 노조 있고.
Q 강성파의 대표는 누구입니까?
A 다른 사람들은 기억 잘 안 나고, 기억나는 것은 김성중 선생님밖에 없어. 그래서 속으로 그랬지. “아니 뽑아놓고 후배들 잔뜩 있는 곳에서 저러면 어쩌자는 거야.” 근데 이제 좀 많이 불만인 것 중에 하나가 더블 보드 선배들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 어쨌든 어떻게 할 수 없는 내용이니까. "우리는 수련받으면서 고생했는데, 고생 안 하고 면허 전문의를 딴다" 그런 얘기를 김성중 선생님이 대놓고 많이 했어요.
Q 그런 분들하고는 아직도 서먹하겠네요.
A 근데 그런 분들하고 보드 딴 후에 만날 일이 없으니까. 각자의 생활, 각자의 병원에서. 학회 하면 만나는데. 학회 하면 우리 반가운 얼굴들끼리 왁자지껄 하느라고 시간 다 보내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게 나이가 많잖아. 사부님 급들이라서 거기서 알아서 하는 거고 우리는 우리끼리.
Q 전문의 되시고 나서 (금강산 관광) 크루즈를 좀 타셨죠?
A 세브란스는 군대 갔다 온 사람들하고 급을 맞춰야 한다고 해서, 킴스 군대 가는 바람에 3년 뒤에 와서 펠로우 2년 하고 나면 5년이잖아요. 처음에 1년은 아무 생각 없었어, 근데 2년 차 되고 3년 차를 하려니까 갑갑한 거지. 근데 펠로우 월급이 17만 원. 전공의가 20만 원 차이 났나. 그때 이제 펠로우를 1년 하고 2년 하고 그러니까 밑에 후배가 계속 들어오잖아. 내가 펠로우하고 교수 자리를 기다리면 나오겠지. 근데 그 자리를 기다리겠다고 밑에 똥차를 달고 있어야 되나 생각이 들어가지고 2년 차 후반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바깥에 응급의학과 빈자리 엄청 많은데, 여기서 내가 고집하고 있어야 되나. 근데 초창기 멤버로서 사부님이 정해준 코스를 해야 할 것 같은 사명감도 있고, 똥차들 눈초리도 따가운 것 같고.
그래서 고민을 하는 차에, 크루즈가 들어온다고. 97년 봄에 그런 게 있을 거라고 해가지고 6월인가 그 쯤에 공고가 났어요. 그래서 저거나 갔다 와야겠다 해가지고 저것 좀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저거 뭔지 아냐?” 그래서 “모르죠”. 다녀오라고 하셔서 그거를 아산 병원에서 다른 직원은 그냥 현대 계열사에서 모집하는데, 의사만 아산 병원 가서 인터뷰하고 오라고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하러 갔죠. 그냥 인사 차원으로 어쩌고 저쩌고. 근데 그 크루즈 사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랬다가 이제 회사에 가서 인터뷰하고. 월급 얼마 주겠다 어쩌고 다 좋았는데.
이게 선원이 되는 거예요, 일단. 선원으로서 교육을 받고 해야 하는 거예요. 좀 의외긴 한데, 근데 이게 북한을 왔다 갔다 하잖아요. 해외에도 나갔다 오고 해야 대우를 잘 받거든 월급이나 보너스. 근데 북한은 국내법을 적용한다고 해서 혜택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국내법에는 또 그 배에 의원을 차리는 셈이 되는 거거든. 원래 해외에서 크루즈 운영하던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 배가 들어왔으니까 국내법을 적용한다고 최종 결론이 나서 의원 개설을 해야 해. 내 이름으로. 그걸 또 나중에 알았어요, 이것들이 사기를 쳐서. 원래 그런 식으로 하면, 딜을 해서 돈을 더 받았어야지. 내 명의가 없으면, 배가 의원이 개설이 안되면 출항을 못하거든.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정보도 하나도 없고. 그냥 쉬러 왔으니까 아무 욕심 내지 말고 그냥 하자. 그래서 그때 450 받았어요. 그래 뭐, 펠로우 버리려고 나왔으니까 아무 욕심 내지 말고 하자 해서 재밌게 살았죠. 그래도 노동법에는 따라야 된다고 해가지고 일반 직원들은 한 번 가면 2박 3일이고 하루 쉬고. 그래서 하루 쉬는 날, 이 사람들은 휴가예요. 그다음에 노동법에 따라야 하니까 한 2주 가면 1주일 쉬어야 하고. 의사는 나 하나밖에 없잖아. 그 노동법을 적용하면 배가 출항을 못 해요. 그래서 한꺼번에 일하고 한꺼번에 쉬자. 그래서 1년 계약을 했는데, 10개월 근무하고 2달 휴가 처리해서 배에서 내렸죠.
Q 배 타는 것은 재밌으셨어요?
A 배 타는 건 정말 재밌었어요. 일단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이 배에서 근무하기 위해서 4년 동안 트레이닝 받았나 보다.
Q 그 배에는 몇 명 타죠?
A 내가 탄 배에는 오래돼서 까먹었는데. 800명 정도 타는 거였고.
Q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응급실이 좀 (바빴겠어요)?
A 그렇죠. 배가 바람이 없어도 멀미를 하거든. 그러면 이제 아티반 들고 돌아다니면서 재워주고. 그리고 평소에는 많지 않았는데, 태풍 온 적도 있거든요. 그래도 가야 되니까, 가면은 흔들거리면서. 나는 멀미를 안 해서. 간호사들은 다 누워있고.
Q 금강산 가보셨어요?
A 금강산 못 갔죠. 유일하게 금강산에 못 간 그 배에서. 내가 나갈 차례에 사고가 났어요. 환자가 어레스트가 났어 금강산에서. 죽었는데, 죽어서 이 사람 인수하려고 잠깐 10분 정도 북한 땅 밟아 봤지. 그다음부터 전면 중단. 그리고 현대랑 뭐가 좀 안 맞아서 한 달 반 정도인가 크루즈가 멈췄어요, 사업이. 그래서 남들 다 휴가 가는데, 의사는 배에 있는 선원들을 지켜야 된다고 해서 휴가도 못 가고 배에서 계속 정박하고.
Q 그럼 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헬기를 띄우나요?
A 그런 시스템이 없었지. 그래서 한 번은 항에 도착해서 SAH(subarachnoid hemorrhage; 뇌지주막하 출혈) 의심되는 환자가 한 명 생겼어요. 어지럽다고 하면서 계속 토한다. 히스토리 메모 보니까 SAH 같아. 그래서 선장한테 배 돌려야 한다. 배는 못 돌린다고 그래서 북한에 도착해서 북한이랑 얘기해서 통통배 타고. 저거 후송할 때 터지면 죽을 수 있으니 내가 가야 된다고 하니까 나보고 가면 안 된다고. 의사는 못 내린다고. 한참 하더니 간호사 남고 나만 가라고.
그래서 혼자 세트 다 챙겨서 5시간 갔다가 다시 오는데, 갈 때는 긴장 상태이고 그러니까 눈뜨고 갔는데, 다시 돌아오는데 이 사람들 다 자는 거야. 나만 누울 곳이 없는 거야 피곤해 죽겠는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깥에 나와서 바다 구경하는데, 밍크 고래 한 마리 보고. 또 한 번은 투석(hemodialysis)하는 사람이 탔어요. 그런데 타자마자 열이 나는 거야. 근데 그때는 출항한 지 2시간밖에 안 돼서 선장 보고 배 돌리라고. 거기 도착해서면 버텨야 되겠지만, 바로 출항했는데 이거 안 된다고 배 돌리라고. 그때 연락해서 통통배가 왔어요. 그래서 넘기고 갔죠.
Q 배 타다가 그럼 들어오셔서 성애병원으로 오신 건가요?
A 그리고 배를 타니까, 선상 생활은 되게 여유로워. ‘러브 보트’라는 영화가 있어요. 거기도 보면 의사가 있는데. 돌아다니는 게 되게 여유로워 보였거든. 나도 별일 없을 때는 정복 입고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기웃기웃하고, 낮에는 승객 있는 유람선 쪽 가면 탁구 치고 농구하고 수영하고. 근데 10달 동안 하면 지겨워 죽어. 그렇게 하고 배에서 내리니까 대학병원 응급실이 너무 답답한 거야. 그동안 뭐하고 살았냐 하면서 안 들어갔어요. 놀다가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안 나는 거야.
그래서 아르바이트하러 갔지. 음성 성모병원이라고. 지금은 문 닫았어요. 그때 11월, 12월, 1월, 3개월 반 정도 아르바이트했어요. 그때만 해도 응급의학과가 무슨 과인가? 근무 조건이 월화수목금 5일 근무를 하는 거야. 밤에만. 6시부터. 그 정도 근무는 어렵다고 생각 안 했으니까. 그래서 오케이하고 했죠. 거기서 시골 병원에 150 bed 정도 되는, 웬만한 과들 다 있고. 거기서 이제 내가 다 했지. 거의 중환자들도 다 봤던거 같아요.
Q 오너가 진짜 좋아했겠어요?
A 난리가 났죠 아주. 작게 찢어진 것은 그동안 처리했는데, 조금만 많이 찢어지거나 그러면 다 대학 병원으로 보냈거든 충북대로. 근데 내가 다 해주니까 동네에 소문이 나서, 서울에서 명의가 왔다고. 한 달 반인가 하고,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근데. 다른 것을 좀 더 봐야 하는데, 그래 가지고 이사장과 면담해서, 오래는 못 할 것 같다고. 인턴이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나를 부르고. 나는 응급실만 하기로 했는데 왜 병동 콜을 받으라고 하냐. 그러면서 월급 올려줄 테니까 더 있으라고. 그건 됐고 한 달 더 있어보고 결정하겠다고. 역시 시골에는 오래 못 있겠더라고.
그래서 다시 신촌에 불려서 갔는데, 대학에는 이제 재미가 없는 것 같다고. 밖에서 이제 일하고 싶다고. 왜냐하면 음성 성모병원이 병원은 작지만 내 마음대로 하잖아. 논문 쓰는 것도 싫고 그랬더니, 좀 더 생각해보고 1년만 하라고 하시더라고. 영동에 이제 펠로우가 사람이 없다고. 하기 싫은데 들어가니까 의욕이 막 떨어지는 거지. 펠로우의 주된 역할은 논문 쓰고 하는 건데. 논문 쓰는 일은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뭘 좀 하고 싶은데, 계속 자꾸만 뒤로 밀리니까.
역시 대학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나가야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마침 여기 성애병원에 선배가 계셨고, 응급의학과를 달라고 몇 번 전화가 왔었대요. 그래서 여기를 한 번 와 봤더니 이사장님이 아주 환대를 해주셨어요. 처음 봤는데, 자주 보는 동네 형처럼 반겨주고. 또 병원이 두 개래. 여기 한번 직접 안내해서 둘러보고, 또 광명도 한 번 가서 보고. 근데 광명은 좀 바쁘고. 광명은 환자가 많아서 그런지 바글바글하고. 여기는 지금은 구획이 있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들어오면 벽 둘러서 침대가 하나씩 있는 광장 같은 느낌. 근데 너무 아무것도 없으니까 좀 떨리더라고. 아무것도 없고 여기서 일해도 되나.
Q 그러면 계속 혼자 계시다가 다음 사람이 들어온 게 언제예요?
A 그다음에 김연장 선생이라고 보드 4회인가 그래요. 영남대에서 트레이닝하고. 11월에 왔어요. 내가 10달 동안 혼자서 월화수목금토 일하고 일요일 하루 쉬고.
Q 당시에는 전문의가 몇 명 없었으니까, 전문의 될 거면 대학병원 가는 게 당연했죠?
A 당연했죠. 근데 이제 대학은 어디를 가나 답답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세브란스 같은 병원이 아닌 기타 지방 대학에는 뭐 하러 가지? 여기서 답답해서 싫다고 나갔는데, 그런데 가서 미쳐 환장할 일 있나.
Q 그러면 교수를 하지 않고 나온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하시나요?
A 아니요, 전혀 후회 한 적 없어요.
Q 초창기에 계셨던 분들은 오래 계시는 것 같아요, 처음 있었던 병원에. 그게 무슨 정 때문인가요?
A 물론 정도 있죠. 이사장하고 의리도 있고, 나가려고 한 적도 있어. 여기서 한 5년 정도 한 후에 나가려고 한 적 있어요. 왜냐하면 음성 성모에서 일할 때는 정말 내 마음대로 다 했거든. 왜냐하면 남의 과 스텝들이 아무런 관심이 없거든. 네가 뭘 하든지, 환자를 입원시키든 퇴원시키든. 관여할 그게 없었으니까. 근데 여기는 처음 들어와서 미친 듯이 하는데 내가 환자를 보고 입원시키고 그러면 남의 과 스텝들이 “쟤 뭐야?” 이런 느낌.
근데 이사장님이 전폭적인 지지, 모든지 다 지지해요. 그러니까는 일주일 한 번씩 스텝들 모아서 회의를 하는데, 회의할 때마다 내 편을 들어주니까. 근데 내가 일 하면서 답답한 것을 매일 편지 써서 항의를 하거든. 그렇게 한 1년을 했는데, 이게 처음에는 남의 과 스텝들이 반발이 되게 심했는데 말은 못 한 거지. 내가 일 할수록 다들 힘들어하는 거지. 그래서 예전 기록 보면 1만 6천, 1만 7천 정도 됐었는데, 내가 들어와 가지고 2만, 2만 2천. 2, 3년 동안 계속 올라갔거든요. 그러니까 미치고 환장할 일이지 힘들게. 그러다가 이제 한 1년 정도 지나니까 신분이 뽀록이 난거지. 환자들 막 입원시키면 자기들은 연락받은 적 없다고 다 퇴원시키고.
그래서 이사장 하고 막 뭐라고 했지만, 50명 스텝과 나 하나의 싸움에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하는가. 결국에는 나한테 조금 쉬어 가면서 하자고. 그 당시에 DJ 대통령 때여서 우리 병원이 DJ 주치의 병원이었거든요. 그러다가 대통령이 됐잖아. 여기 있는 내과 스텝이 주치의로 들어간 거예요. 비공식적인 주치의. 그래서 거기 가서 2003년, 임기 끝나고 같이 들어오면 내과를 평정해 줄 거다. 그때 내과가 불만이 많았으니까. 근데 개뿔, 지들 3월 1일 휴일이니까 3월 1일 아침 9시 반에 응급실에 문제가 많다면서 잠깐 와보라고 그래서, 맨 손으로 가면 말 못 할 것 같아서, 한 페이지 딱 적어서 했더니 90%가 내과 문제야. 그랬더니 얼굴이 좀 일그러져. 쟤는 뭔데 남의 과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거냐고. 그래서 면담 결과가 불만이 되게 많았어.
Q 대부분의 병원에서 응급의학과가 기획 실장 역할이나 오너들과 코드들과 맞는 편이지 않습니까?
A 그렇죠. 오너가 원하는 일을 해주니까. 직접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주고, 일단은 오너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고 예방. 두 번째로는 환자가 자꾸 다른 곳으로 세고 하니까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 되잖아. 그런 것을 다 붙잡아 주고 하니까, 남의 과가 그런 것을 다 제동을 거니까 우쭐한 거지 밖에 나가서.
Q 어떻게 보면 (응급의학과) 봉직의들의 원조시잖아요?
A 사실은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이사장님하고 처음 이야기할 때는 응급실을 내가 어떻게든 운영을 할 테니까 병원이 망하든 내가 망하든 한 번 해보겠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거죠.
Q 응급의학과가 멋있는 과인가요?
A 멋있죠.
Q 응급의학과는 힘든 과인가요?
A 솔직히 말하면,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힘들지 않아요. 왜냐하면 응급실이 좀 어수선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힘든 과는 아니다.
Q 다시 선택을 하라고 해도 응급의학과를 하시겠습니까?
A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응급의학과를 하고 싶어요. 특히 만약 환생을 하게 된다면, 인턴 때부터 환생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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