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응급의학과 1회 전문의 인터뷰

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12

"그래서 나도 그냥 군대를 가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전화를 딱 받으니까 김옥준 선생님이 아마 전화했을 거야.
“티오 나왔다니까 지원해” 하고 딱 끊어버리더라고.
그래서 나도 원서를 냈어. 이틀인가 남기고.
누가 원서를 냈나 그랬더니, 구홍두 선생님.
저 사람하고 같이 하는구나. 이렇게 된 거야.
그러면서 응급의학과 하게 됐죠."


"우리과처럼 이렇게 선생님들 찾아와서 얘기할 수 있는,
다른 과가 이렇게 많이 할까요? 안 할 것 같아.
분위기가 그렇잖아요 우리는 좀.
약간 자유스럽고 액티브 하기도 하지만, 누가 보면 뭐 근본 없다.
그런 게 보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죠.
우리는 당직을 서고 그러니까 아침에 정신이 없어지잖아요.
그런 것도 크게 작용할 수 있죠."


"응급의학과는 멋있다기보다는요, 자기가 환자에 대해서 처치하고
결과, 피드백을 빨리 알고 싶은 사람들은
거기서 힘을 얻고 하는 사람들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보면 이제, 그런 피드백이 빠른 것에 대해서
희열을 느끼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근데 오랫동안 보면서 맞춰보는 그런 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그것보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응급의학이 더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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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승환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47번

수련병원 :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현근무지 : 충남대학교 병원




Q 응급의학과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A 응급의학이라는 게 연세대에서 과목으로는 처음으로 시작했을 거예요. 사실 커리큘럼이 뭐냐고 그러면 모든 과의 짬뽕. 이걸 맡아서 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누구를 시켰냐 하면 그때 과목 담당을, 당시만 하더라도 응급 실장이죠. 응급 실장들을 과목 담당자로 시켰어요. 가르치는 게 그거였죠. 자기네들이 수업시간에 하는 것 중에서 응급 상황에 관계되는 것. 체계가 사실 없고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 중에 응급 상황만 뽑아서.




Q 응급의학과는 없는데, 응급의학 과목이 있었군요?


A 근데 사실 과목은 있었는데, 응급의학과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배운 것이 없어요. 지금과 같은 체계, 갖춰야 할 요소들, 그런 것들 전혀 몰랐죠. 응급의학과가 생긴 게 제가 인턴 때 생겼죠. 9월쯤에 인턴 때 두 명 뽑는데, 같이 안 할래 라고 물어봐서. 한참 뭐 할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외과는 나랑 스타일이 너무 안 맞는 것 같고. 그래서 그런 게 있냐고 하니까 있다고 하더라고요. 티오를 2명 뽑는데요.




Q 그럼 9월 전까지 응급실은 안 돌아보셨어요?


A 희한하게 인턴 스케줄 표에 보면 지금은 응급의학과, 내과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때는 응급실로 되어 있었어요. 이상하게 응급실이 11월인가 12월인가 하나 있었고, 나머지는 내가 외부 인턴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어디로 나갔냐면, 거제도, 진주, 이렇게 했었는데. 내가 12월에 그것도 다른 사람이 바꾸자고. 나는 사실 인턴 생활하면서 응급실을 한 번도 안 돌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애들한테 항상 얘기하는 게, “야, 평생 할 거 그렇게 하지 마라. 안 도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아. 돌아봐야 짜증만 더 생기고, 분노만 쌓인다고.” 하지 말라 그러지 항상. 그래 가지고 그때 9월에 응급의학과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만, 지금 없어진 골방에 김승호 선생님이 혼자 앉아 계시더라고.




Q 마감 3일 전까지 결정을 못하셨어요, 그다음에 어떻게 됐어요?


A 가정의학과 인턴을 돌 때 되게 잘 봤어요. 이제 질문을 하면, 가정의학과 참 신기하더라. 대답을 안 해 뭐 물어봐도. 그럼 인턴한테 물어보는 거야.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런 거 이런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되게 좋게 봤던 모양이야. 그래서 회진을 몇 번 도는데, 지나가다가 몇 번 만났어. 나는 X-ray 들고 다니면, 로비 같은 곳에서 만나죠. 그러면 나보고 잠깐 와보라고, 너 가정의학과 갈 생각 없냐고. 그때만 해도 중요 스텝들 막 몰려 가잖아요. 벙 쪄가지고, 생각 좀 해보겠다고 그랬죠.




Q 그래서 마감날 접수를 하신 건가요?


A 이게 어떻게 된거냐면, 3일 전까지 그게 안 나온 거야, 같이 하기로 한 친구가. 원래 그 친구 아버지의 형님 되시는 분이 위스콘신 대학에 생화학과 교수를 하셨대요. 그래서 산부인과 박찬교 교수님이라고, 잘 알았대. 미국 가서 연수할 때, 아마 같은 학교에 있던 모양이다. 그래서 너 이거 할 거냐고, 응급의학과 하고 싶은데 티오가 안 나왔다. 그래서 산부인과 하라고 해서 산부인과 지원한 거야 5일 전에.


그래서 나도 그냥 군대를 가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우리는 삐삐가 있었어요. 전화를 딱 받으니까 김옥준 선생님이 아마 전화했을 거야. “티오 나왔다니까 지원해” 하고 딱 끊어버리더라고. 그래서 전화를 했지, 그 선생님한테. 자기는 이미 산부인과에 원서를 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먼저 하겠다고 했던 사람이 당신이니까 원서를 다시 내면 되지, 그거 가지고 뭐 그러냐고.


지금 같았으면 자기가 하고 싶으면, 고맙다고 할 텐데. 안 하겠다고 그러더라고. 자기는 박찬교 선생님하고 얘기가 이미 되어 있어서 좀 그렇다고 네가 하라고. 응급의학과를 할 운명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원서를 냈어. 이틀인가 남기고. 누가 원서를 냈냐 그랬더니, 구홍두 선생님. 난 그때 잘 몰랐거든 구홍두 선생님을. 저 사람하고 같이 하는구나. 이렇게 된 거야. 그러면서 응급의학과 하게 됐죠.




Q 그러면 응급의학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친구 권유 때문에 지원하게 됐네요?


A 그렇죠. 얼떨결에 하게 된 거죠, 얼떨결에. 나는 그게 티오가 있다는 것 자체도 몰랐어요. 그 선생님이 얘기를 안 해줬으면 아마 고려 대상에서 지워져 있었을 걸요? 학생 때 같이 술 마시러 다니면서 친했던 사람이 하자고 그러니까, 그때만 해도 안 해도 그만, 해도 그만이잖아요 그죠? 그래서 가게 된 거고.




Q 그러면 레지던트 선배들한테도 미리 인사를 갔었나요?


A 안 갔죠. 갈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때만 해도 내가 을이라는 생각을 못 해봤으니까. 내가 을이란 이유가 없잖아, 아무것도 모르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응급의학과 들어가고 나서야 처음 인사를 했어.




Q 지원하니까 김승호 선생님이 되게 좋아하셨겠어요?


A 원래 그분이 되게 좋아하지도 않죠. 또 시니컬했으니까 김승호 선생님이. 간호사들이나 그러면 스마일리 하긴 하는데, 남자들이 오면 좋아한다는 표정을 잘 안 보여주기 때문에(웃음).




Q 당시에 의국장은 누구셨습니까?


A 김옥준 선생님하고 최옥경 선생님 번갈아가면서 했잖아요. 그때 우리는 두 달씩 했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의국장한테 인사도 안 하고, 지원한 거네요?


A 의국장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관심도 없었어요. 내가 돌지를 않았기 때문에.




Q 그럼 입국식은 했습니까?


A 입국식은 했어요. 뭐랄까, 공부를 안 해도 노는 것은 좋아해서. 소박하게 했어요. 우리 다음부터는 밤새 마신다는 기분으로 했었거든요.




Q 그럼 12월 스케줄도 바꿔서 응급실을 못 돌아 보셨고, 3월 1일 날 첫 출근 하신 거네요?


A 우리는 그때만 하더라도 2월 중순쯤? 인턴 손 놓은 날. 빨리 들어갔죠. 근데 공식적으로는 증명서 떼면은 3월 1일 날 되는데, 실제로는 2-3주 일찍 들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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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첫 출근 하셨을 때 상황은 기억나세요?


A 어렴풋이 기억나죠. 얼떨떨했죠.




Q 어떠셨던 것 같아요? 두려운 게 있었나요 응급실이?


A 두려운 것은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Q 지방에서 응급실을 경험을 좀 하고 오셔서 그랬을까요?


A 학생 때부터 실습을 우리 같은 경우는 응급실에서 돌았잖아요. 2-3주를 도니까. 그때는 담당 스텝이 아무도 없고, 대장이 누구냐면 내과 1년차였어요. 내과 1년차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거야. 트라우마 환자가 쇽에 빠지면 그 사람이 나와서. 외과나 이런 사람들이 내려오려면 시간이 걸리죠. 진짜 흉부외과는 가슴에 문제가 있다 하면 바로 내려왔어. 내 생각에는 2, 3분이면 내려왔거든요. 내과는 그 정도까지는 안 됐단 말이야. 한 10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그런 걸 많이 봤어요, 2-3주 돌면서. 내과만 해도 트라우마 막 수액 주고, 그런 것 까지는 하더라고. 그다음에 빠지죠, 그다음부터는 내과 환자도 많으니까 못 하는데. 쇽 환자 중심정맥관 까지는 잡아 주더라고. 그래서 그걸 봐서 그런지, 그냥 하면 되지 뭐, 못 할 거 뭐 있겠냐는 생각으로. 두렵다고 해서 나를 빼주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두려운 사람은 잠깐 뒤로 가있으라고 해줄 사람도 아니고, 김옥준 선생님이나 최옥경 선생님이. 이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주고 관리해 줄 사람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혼자 살아남아야 되는구나 생각을 했죠.




Q 그때는 백업이라는 개념이 없었죠?


A 없었어요. 그냥 혼자서. 사람이 없으니까 백업이란 개념이 진짜 희박했어요. 나와주세요 이런 연락도 없었고.




Q 최옥경 선생님, 김옥준 선생님이 김승호 선생님하고 단둘이 앉아서 컨퍼런스 하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에요. 선생님 때는 어땠습니까?


A 우리 때는 김승호 선생님하고 직접 하지는 않고요. 그냥 최옥경 선생이나 김옥준 선생님은 같이 공부는 안 했어요. “공부는 너희들이 해야지.” 그러면서. 최옥경 선생님하고 텍스트북 한 두 달 읽었어. 구홍두 선생님도 보면 그런 거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좀 하다가, "이런 거 뭐하러 해요?" 그러면서 없어졌어. 그다음 케이스 컨퍼런스나 좀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아침에 당직 보고 같은 것도 하신 겁니까? (근무)스케줄이 보통 어떻게 돌아갔나요?


A 2년차들도 두 달씩 번갈아가면서, 파견, 근무, 파견, 근무 이렇게. 우리도 1년차도 파견이었어요. 외과 내과 이런 식으로.




Q 구홍두 선생님과 번갈아가면서 하셨나요?


A 같이 있었던 적이 없죠. 3년 차 돼서 같이 했죠.




Q 박인철 선생님이랑 이경룡 선생님이 들어오신 거잖아요 선생님 아랫연차로. 밥이라도 사주시고 그랬나요?


A 아니요 전혀요. 나는 처음에 항상 들어오면 하는 말이, 이거 왜 하냐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이거 해서 무슨 고생할 줄 모른다고. 근데 하겠다고 덤비더라고. 그걸 내가 뗄 의무는 없잖아요.




Q 후배들이 들어오니까 조금은 편해지셨나요?


A 훨씬 낫죠. 안 그러면 내가 당직을 서야 하는 건데. 우리는 독박 시스템이니까. 걔네들이 있으니까 내가 당직을 빠지는 거지. 걔네가 없었으면 내가 걔네 반 정도의 당직을 섰을걸요. 어떻게든 아마 싫다고는 하겠지만, 그래도 반 정도는 세웠겠죠. 집에도 못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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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촌세브란스는 당직실이 되게 좁았던 모양이에요?


A 자는 당직실이 있었는데, 거기 2층 침대가 있었어요. 그리고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낮에는 또 김승호 선생님이 와서 앉아 있어요. 아무래도 책임자니까. 그래서 그 방은 못 들어오는 거예요. 어떻게 들어와, 못 들어오지. 그래서 김승호 선생님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또 항상 앉아 있어요. 물론 교수실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반대편에 4배 정도 만한 인턴 당직실이 있어요. 거기가 우리 차지가 되는 거죠. 1년 차들 들어와서 맨날 잠만 자고 가는 거야.




Q 최옥경 선생님은 90년대 초 한참 데모할 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신촌 데모 정말 많이 했었잖아요. 대부분 병원 앞에서. 최루탄 냄새는 끼고 사셨겠어요?


A 냄새는 무지하게 맡고 다녔죠. 그래서 아마 우리는 홍콩 가도 최루탄 냄새 맡아도 견디긴 견딜 거야. 요즘 사람들은 못 견딜 거야.




Q 신촌 의국이 영동이나 다른 곳과 교류가 있었습니까?


A 교류가 생긴 게 내가 4년 차 때부터 생겼어요. 교류가 없었다는 게, 전혀 남처럼 지냈다는 것은 아니고 파견들을 하기 시작한 게, 이한식 선생님이 신촌으로 오시고. 주임을 맡으시면서부터 처음이었죠.




Q 선생님도 파견을 가셨습니까? 원주나 다른데?


A 원주에는 안 가고요. 원주에 간 거는 김옥준 선생님밖에 없었어요. 본인이 가고 싶다고 그래서. 최옥경 선생님도 갈 수는 있는데, 안 가겠다고 그랬어요. 근데 김옥준 선생님은 원주 출신이니까 편하잖아. 그리고 와이프 될 사람도 거기 있었어요. 그래서 가고 싶다고 주장을 해서 갔어.




Q 그럼 선생님은 영동으로 가셨나요?


A 네, 나는 영동으로 갔었어요. 갔는데, 그 날 당직을 시키는 거야. 세상에 파견 온 사람을 당직을 시켜요. 난 당직인지 몰랐어. 퇴근하려 하는데 나보고 당직이래. 그것도 4년 차 파견을. 자기들 회식이래 회식. 서운하지는 않고 한편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4년 차 당직 없었어요 그때는. 지금이야 사람이 모자라니까 당직을 다 세우긴 하지만.


그래서 보니까 자기네들끼리 고깃집 가서. 그것도 인턴만 남기고 싹 다 빠져나간 거야. 4년 차가 남았으니까 그냥 다 데리고 나간 거야. 난 사실 1년 차 정도는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요. 그래 가지고 한 2시 넘으니까 잠이 오더라고. 2시쯤에 자려고 하니까, 술 먹고 들어와서 자는 거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는데, 다 내 동기 거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내 동기나 위에 사람들이잖아, 때리지도 못 하겠고(웃음).




Q 다른 병원 하고는 어땠습니까? 가톨릭대나 길병원, 원광대.


A 학회나 우리들끼리 가끔씩 분을 참지 못할 때 모였는데요. 평상시에 연락을 하고 만나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우리 병원에 자주 연락했던 사람은 가톨릭대. 삼성은 아예 없었고, 아산도 시스템이 되어 있지도 않고. 제일 만만한 여기로 환자 보낸다. 환자가 그걸 원하면 보낸다고. 우리도 많아 죽겠는데, 환자가 가기를 원한다고. 한 다섯 번 정도 전화 오면 세 번 정도 받은 것 같아요.




Q 전문의 공부하실 때 뭐로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A 우리는 원주에 콘도에 한 달 모여서 했어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세상을 논하고. 물론 우리는 군대를 갔기 때문에, 덜 하긴 하겠지만 시간이나 그런 낭비가 덜 했던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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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군대에서는 응급의학과로 들어가신 거예요?


A 전문의로 간 거예요 그냥. 근데 병적 기록지가 있는데, 거기 보면 자기 과를 체크해야 돼요. 응급의학과가 없는 거야. 그때 핵의학, 산업의학은 있었는데 그때 핵의학, 산업의학은 전공의를 안 뽑았어. 왜냐면 미친놈들이 아니잖아, 미치지를 않았기 때문에 시험이 확정이 안 됐으니까, 전공의를 안 뽑은 거야. 걔들은 이제 예외 조항으로 해서 하는 전문의는 있어도, 전공의는 안 뽑았다고.


그러니까 응급의학 초창기에 한 사람들은 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거야. 그렇잖아. 그다음에 내분비내과 하는 애들 중에서 돌려서 하고 그랬다고. 걔네 좀 더 교육시키고 펠로우 과정 좀 하면, 시험만 보고 인정해주는 거야. 그래서 이제, 병적 기록지 보면 아마도 체크 표시 없이. 그래서 들어갔다가 2주차 들어가는데, 원서 쓰러 나오라고 그러더라고. 날짜 보면 2월 14일인가 원서 쓰는 날짜가 있잖아. 그때 우리가 금요일에 일찍 나왔어, 원서 써야 한다고.




Q 선생님도 그럼 훈련받던 중간에 나와서 시험 보신 건가요?


A 그렇죠.




Q 훈련 들어갈 때 까지도 전문의가 될지는 몰랐던 거네요?


A 지금 나하고 조광현 선생 하고는 국방부에 카드가 있을 거예요. 국방부에 병적 카드가 있을 거예요. 카드에 보면 아직 전문의가 없고 ‘무’라고 돼있어. 표시가 안 되어있을 거야 아마. 왜냐하면 들어가면 카드를 적어요. 근데 우리는 전문의가 없잖아, 그렇다고 일반의는 아니야. 그래서 손 들었지. 전문의 아닌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놔두래 그냥. 시험을 나중에 보고 했기 때문에, 내가 손을 안 댔으니까. 그 사람들이 해줄 일 없어. 다른 사람이 절대 안 해줘요. 그냥 일반의 비슷하게 돼있을 거야 아마.




Q 그럼 똑같이 대위로?


A 호봉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턴 레지던트를 몇 년 했느냐로 따지는 거예요. 그거는 전문의가 맞냐 아니냐로 따지는 게 아니고.




Q 인터뷰하시는 분 중에서 유일하게 저한테 수험표를 보내주셨어요. 그 수험표 사진은 언제 찍으신 거예요?


A 그때 내가 아마 석사 했잖아. 석사 그거 할 때 원서 낼 때 찍었을 거야.




Q 그 수험표를 어떻게 가지고 계셨어요?


A 몰라요, 내가 좋다고 가지고 있었겠어요? 나도 많이 떠돌아다닌 것은 아니잖아요. 군대 갔다가 여기를 들어왔으니까. 책상도 그대로고. 필요한 것은 내 책상에 다 집어넣어버리니까. 군대 신분증도 지금 가지고 있어요.




Q 사실 군대에서도 응급의학과를 당연히 몰랐을 거고요. 이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A 우리도 잘 모르는데, 걔들은 더 모르죠. 그래서 우리 보고 물어보면, 우리들은 안기부에서 하는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몰라도 된다고 얘기했어요.




Q 그럼 바로 군인 학교로 가신 거세요?


A 저는 5사단에 있다가, 97년도에 대전에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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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충남대랑 인연이 되셨어요? 유인술 선생님 원래 알고 계셨나요?


A 그전에 알고 있었죠.




Q 친하셨었어요?


A 친하진 않고, 얼굴을 아니까. 학회에서 보고.




Q 어떻게, 밥 먹고 술 한잔 하시고?


A 아니요, 밥도 술도 안 먹고 전화가 왔어요. 전화가 온 게 9월. 복지 상가라고 해서 있어요. 거기서 술 한잔 먹고 했겠죠.




Q 사실은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원광대 빼놓고는 응급의학과가 아무 데도 없었잖아요?


A 없었죠. 유인술 선생님도 여기 뽑은 거는 구급 의학으로 뽑았잖아. 티오를 그렇게 뽑았다는 것은.




Q 선생님이 여기 2번째로 합류를 하신 거잖아요. 유인술 선생님 혼자 계시고. 어떻게 근무를 하셨어요?


A 그때는 스케줄 표라는 게 없으니까, 되는 대로 일했죠.




Q 사실 그때만 해도 전국에 몇 명 없으니까, 귀한 자원이잖아요. 근데 좀 속아서 오셨다는 생각 안 드셨나요?


A 속을게 뭐가 있나요. 다 자기가 결정하는 건데.




Q 원래 대전에 무슨 연고가 있으셨습니까?


A 나도 그렇고 집사람은 여기에 사촌언니 계시던 거고. 나는 전혀. 대전에 지나간 것도 계룡산 올라간 거 친구들끼리. 한 번도 없었어요.




Q 이제는 대전이 너무나 익숙하시겠네요?


A 내 고향보다도 더 오래 있는 게 대전이죠.




Q 계속 한 군데 계시면 다른데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으셨을 것 같아요?


A 대전이 익숙해졌는데, 집사람도 고향이 서울이고. 모르죠. 아마 은퇴를 하게 되면, 움직이게 된다면 서울 쪽으로 움직이게 되겠죠. 그쪽에 집사람 부모님도 계시고 친구들도 다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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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응급의학과 30년을 돌아보면서요, 저도 아직까지도 응급의학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보기에는 응급의학이 뭡니까?


A 의학의 한 분야겠죠. 진짜 그거는 응급의학의 대가한테 물어봐도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Q 응급의학에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본인은 잘 맞으십니까?


A 다른 걸 잘 안 해봐 가지고. 내가 다른 곳을 발을 담그고 왔었다 그러면, 내가 여기가 맞는 거야. 최소 2개 하고는 비교가 가능하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그냥 인턴을 돌고 실습을 돌면서 봤었던. 내가 그리고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제일 오래 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비춰보면 그래도 좀 맞는 게 응급의학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조심스러운 게, 내가 진짜 피상적으로 밖에 보지를 못 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면, 무슨 과를 콕 집어서 얘기를 하면, 거기 과들은 “네가 게 맛을 아냐?” 이런 식으로 반론이 들어오겠죠.




Q 다시 하신다면 응급의학과를 하시겠어요?


A 안 하죠.




Q 그럼 뭘 하시겠어요?


A 모르겠어요 그건. 왜 그러냐면, 나온 사람이 1000명 이상 되고 이런데, 우리 흔히 말하면 노땅들도 많아졌을 거고, 아재들도 많잖아요. 굳이 그런데 비집고 들어가서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응급의학과를 절대 안 한다기보다는, 물론 고려 중에 하나 들어가긴 하겠지만, 예전처럼 맨 정신으로 하겠다고 그러진 않고 하나의 고려대상으로 넣겠죠.




Q 장단점을 얘기해주세요.


A 이렇게 선생님들 찾아와서 얘기할 수 있는, 다른 과가 이렇게 많이 할까요? 안 할 것 같아. 분위기가 그렇잖아요 우리는 좀. 약간 자유스럽고 액티브 하기도 하지만, 누가 보면 뭐 근본 없다. 그런 게 보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죠. 우리는 당직을 서고 그러니까 아침에 정신이 없어지잖아요. 그런 것도 크게 작용할 수 있죠.




Q 밤새고 아침에 술도 많이 드셨겠어요?


A 난 아침 술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아침에 뭐 들어가는 게 거북스러워서. 나는 지금까지 밤에 근무하면서 야식 먹는 거 있죠. 아마 열 손가락 안에 꼽을걸요. 전 안 먹어요 부담스럽고. 한 번씩 먹은 기억은 전공의 같은 거 할 때. 다 같이 당직 서는데, 다른 과 친구들이 와서 “맛있는 거 나온데, 가자!” 그러면 할 수 없이 따라가서. 그럴 때 몇 번 먹은 거 외에는 애들 모아서, 오늘 통닭 먹어야지 이런 것은 없었어요.






Q 정말 아끼는 후배가 있다면, 응급의학과를 권유하시겠습니까?


A 응급의학과를 먼저 권유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다른 좋은 과들도 많은데. “너 이거 좋은 거야 먼저 해” 이럴 것 같지는 않아요. 근데 만약, 자기가 이거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면 장점과 단점을 얘기해 줄 생각은 있죠. 근데 먼저, 응급의학과 제일 좋으니까 이거 생각해라고는 안 할 것 같아요.




Q 응급의학과가 멋있는 과 인가요?


A 멋있다기보다는요, 자기가 환자에 대해서 처치하고 결과, 피드백을 빨리 알고 싶은 사람들은 거기서 힘을 얻고 하는 사람들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보면 이제, 그런 피드백이 빠른 것에 대해서 희열을 느끼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근데 오랫동안 보면서 맞춰보는 그런 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감성적인 사람들은 응급의학이 더 맞지 않을까. 이성적인 사람은 오히려 나는 덜 맞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응급의학을 못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Q 응급의학과가 힘든 과 인가요?


A 요즘에 보면, 그 지원자가 많아졌잖아요. 그거로 보면, 대다수, 그니까 그 사람들 보면 자기가 보는 것, 윗사람들한테 들은 것을 보고 지원을 한다고 하거든요. 우리 때 보면 미달이 좀 있었는데, 지금은 미달이 없어요. 경쟁도 좀 하고. 분명히 봐서는 현재까지 분위기로는.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쉰다.




Q 그게 지금은 이루어지고 있나요? 쉴 때 쉰다.


A 그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스케줄이 정확하게 딱 정해져 있고. 외과 같은 경우에는 집에서 전화받는 경우도 있거든요. 집에서 전화받고 나와야 돼요. 어떤 때는 집에서 나오면 못 들어가고 계속 있는 상황도 있고. 어떤 때는 한 번도 안 나오는 경우도 있고. 우리는 일할 때는 계속 일하는 거예요 그냥. 그리고 스케줄이 딱 나오니까, 대기라든지 이런 것도 없고.




Q 이번에 이런 촬영 하자고 할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A “뭐야 이거, 갑자기 왜 이래. 약 먹었나?” 항상 들어가는 꿍꿍이가 있으니까, “누가 또 꿍꿍이가 있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경우도 많았잖아.




Q 30년이 지난 상황을 보면, 말씀하신 대로 지금 지원율은 100% 기는 한데, 올해만 하더라도 1년 차가 지금 16명이 그만두었거든요 전국에서. 참을성이 부족한 걸까요?


A 아니겠죠. 그걸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꼰대들이 먼저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이형민 선생하고 나하고 꼰대일 수 밖에는 없어요. 그래도 덜 꼰대. 그렇잖아, 나이가 들어가면 그게 꼰대로 가는 건데. 덜 꼰대가 된다는 것. 일단은 우리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해요.




응급의학과 1기 22명의 개척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인터뷰 모음 영상]

https://youtu.be/kUyoqRTj1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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