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11
"제가 생각할 때, 환자를 살리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응급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이 하겠다고 하면 말리지 않아요.
만약 제 아들이 의대를 간다면, 응급의학 하겠다고 하면
안 말리고 해 보라고 추천해 줄 거예요."
"첫째는 저는 인성을 봐요. 실력이야 4년간 가르치면 될 수 있어요.
근데 인성이 안 좋으면 강도한테 칼을 맡기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두 번째는 이 사람이 끝까지 할 수 있을지를 보죠.
실력은 그 뒷일이고. 인턴 점수가 나쁘고 이런 것은 별로 신경 안 쓰거든요."
"첫째는 내가 생각할 때, 환자를 사랑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무덤덤하게 하면 그 환자에게 가까이 갈 수 없지 않냐.
특히 말 안 듣고, 술 먹은 환자들 골치 아프지만.
환자를 사랑을 해야지 하나라도 더 처치를 하고
마음이 와 닿는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두 번째는 인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요즘은 그런 게 많이 부족하거든요, 레지던트들이.
세 번째는 좀 학구적인 분위기가 있어야겠죠.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응급의학과 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름 : 이재규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46번
수련병원 : 원광대학교 병원
현근무지 : 원광대학교 병원
Q 교수님은 원광대 졸업하셔서 인턴하고 수련도 계속 원광대학교에서 받으셨나요?
A 인턴은 서울에서 했습니다. 레지던트는 익산에서 했고요. 여기 온지는 22년째입니다.
Q 응급의학을 어떻게 알게 되고,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A 인턴 때 미국에 있는 응급의학 전문의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한국인인데 거기서 활동하신 분이에요. 그분한테 1시간 강의를 받았어요. 응급의학은 이렇다. 그리고 미국 응급의료 체계는 이렇다고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한 시간 정도 봤는데 되게 감명 깊게 들었어요.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익산에서 교수님께서 연락을 주신 거예요. 응급의학 할 생각 있으면 이틀 안에 내려오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짐 싸서 내려갔는데 그게 응급의학 하게 된 동기예요.
Q 그 교수님은 학생 때부터 아시던 분인가요?
A 몰랐는데, 저를 가르치시던 교수님들한테 얘기를 들은 거죠. 듣고 저보고 응급의학 할 생각이 있냐고 연락이 왔어요. 그 교수님이 다른 교수님들한테 물어봤대요. 응급의학 할 사람이 있냐고. 그랬더니 그분들이 저를 추천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우리 교수님을 그때 몰랐죠. 그리고 그 날 처음 만난 거죠.
Q 학생 때는 응급의학을 모르셨나요?
A 우리 학생 때는 응급의학을 안 배웠죠. 응급의학 자체가 없었고 응급실이 말 그대로 인턴만 돌아가는 응급실이었어요. 인턴들이 레지던트한테 연락해서 입원시키고. 응급실이 굉장히 허술한 파트였죠. 사고도 많이 생기고.
Q 여러 교수님들이 선생님을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추천을 하셨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A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제가 할 수 있게 생겼나 보죠. 그런데 제 이야기를 저를 가르쳤던 몇몇 분들한테 물어봤나 봐요. 근데 제가 공부는 못 했어도 이쁨은 많이 받았나 봐요. 그래서 그 교수님들이 저를 추천을 했대요. 그때는 응급의학과가 정식 트레이닝 과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내과를 지원했다가 떨어지니까, 응급의학을 할 의사가 있냐고 연락이 와서 내려갔죠.
Q 응급의학과가 어떤 것이라고 설명을 듣거나 그렇게 안 하시고 그냥?
A 그때는 그냥, 미국 전문의 선생님한테 설명을 들었죠. 그리고는 딱히 들은 건 없죠.
Q 미국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한테 강의를 들으실 때는 응급의학과의 어떤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하셨어요?
A 우선 첫째는 근무 시간이 딱 떨어진다는 거예요. 정확히 자기 근무 시간만 하고. 그때 그분 말씀으로는 6시간씩 근무한다고 그러더라고요. 6시간 동안 굉장히 힘들게 근무한다. 대신에 근무 시간 외에는 프리다. 우리 과가 그게 특성이잖아요. 다른 과는 환자를 계속해서 데리고 가는데, 그래서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면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데, 응급의학과는 그게 아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시길, 우리나라도 응급의학과가 생길 것이니 응급의학과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죠. 그러다가 우리 과장님이 응급의학과를 해볼 생각 없냐고 연락 주셔서 알겠다 했죠.
Q 그럼 응급의학과를 이전에 찾아다녀보거나 그런 적은 없으신 거네요?
A 네, 저는 원래 순환기내과를 하고 싶었어요.
Q 6시간만 일을 하셨었나요?
A 아니죠. 우리 1년 차 때는 하루에 잠을 2시간 내지 3시간을 자요. 그리고 일요일에서 금요일까지 2시간, 3시간 자고 토요일에만 한 6, 7시간 자요. 그리고 한 달에 딱 한번 토요일 날 오후에 나갔다가 월요일 날 아침까지 들어와야 하는데, 아침에 들어오면 일이 안 된다. 그러니까 일요일 날 밤늦게 들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응급의학과 하면 일하는 주는 달력만 봐요. 잠도 하루에 2, 3시간씩밖에 못 자니까 엄청 졸리고 힘들었죠. 그리고 우리가 초창기다 보니까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었어요. 우리가 책으로 보면서 공부를 해서 지식을 쌓은 거지, 위에서 내려온 것이 없었어요.
Q 응급의학과 시작을 하실 때, 미국 응급의학과 의사한테 들으셨던 내용이 있으시니까, 오셔서 일을 하실 때 기대했던 바가 있었을 것 같거든요?
A 기대했던 바는 첫째는 응급 처치하면서 유일하게 50% 이상 예후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응급 처치라고 생각하거든요. 응급실에 있는 몇 시간 동안에 환자의 50%는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것이 매력적이었죠. 예를 들어서, 혼수상태로 온 환자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름대로 환자를 보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게 좋았는데, 워낙 근무가 힘들다 보니까, 좀 실망을 했죠. 외국처럼 6시간 근무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21, 22시간 근무를 하면서 견디고 했으니까. 저희 때는 그랬어요.
저하고 익산에 있는 선생님, 둘이서 근무를 했는데, 이제 한 사람은 계속 환자를 보고 한 사람은 저녁에 컨퍼런스를 해야 해요. 한 사람은 12시에 들어가서 컨퍼런스 하고 한 사람은 계속 콜을 받아야 해요. 그러고 한 2, 3시간 자니까 잘 때는 간호사도 안 깨워요 우리는. 근데 깨울 때는 응급상황에는 깨워요. 그니까 자면서도 소리를 감별해요. 이게 119인지 앰뷸런스인지 경찰차인지 감별하면서 자요. 그래서 타 병원에서 온 앰뷸런스는 응급상황이니까 뛰어 나가거든. 경찰차 같은 것은 그냥 자도 되고.
Q 근무하시면서 다른 과와 갈등이나 인정받거나 그런 적 있나요?
A 갈등이라고 하면 가장 큰 것이 우리가 응급처치를 하면 전문과에서 와서 데리고 가서 처치를 해야 하거든요. 근데 그게 딜레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레지던트들하고 갈등이 심했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할 거 다 끝나고 환자를 데리고 가서 입원하든지 수술실 가서 전문적인 처치를 해야 하는데 그게 딜레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성형외과 같으면 그게 12시, 24시 이렇게 딜레이 되니까 레지던트들하고 그 문제로 많이 싸웠죠. 그리고 간호사들이랑은 24시간 붙어있으니까 갈등을 못 느꼈어요.
Q 전문의 시험 보시고 나서는 진로를 어떻게 가셨던 거예요? 군대로 가셨나요?
A 군대는 전에 해결했고, 그러고 나서 이쪽에 와서 응급의학 쪽 일을 했죠. 22년 됐으니까. 제가 응급의학과를 만들고 지금까지 해서 수련병원까지 만들었죠. 계속 성모에 있으면서.
Q 시작할 때 혼자 하셨나요?
A 혼자 하고 다른 과 레지던트 둘 하고. 내과 한 명, 정형외과 한 명 있어서.
Q 그때 당시에도 거의 20년 전이라서, 다른 과 전문의들이랑 컨설트 하면 잘 받아주거나 협조를 잘해줬나요?
A 그때는 초창기였기 때문에 협조가 굉장히 잘 됐어요. 네 거 내 거 환자가 없었어요. 그냥 무조건 자기 과 말 안 해도, 자기 과 환자라면 그냥 보고 그랬어요. 어디든 초창기면 협조가 잘 돼요. 그러다가 시간 흐르면서 병원 커지면서 협조가 잘 안 되는 거지.
Q 처음엔 내과, 정형외과 레지던트 받아서 하시다가, 실제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뽑으신 것은 얼마나 되셨어요?
A 6년 됐어요.
Q 지금은 이제 세팅하고 오래되셨으니까, 제자들에게 응급의학과가 무엇인지 알려주거나 수업을 하시던가 하실 거잖아요. 좀 어떠신가요?
A 사실은 제가 생각할 때, 환자를 살리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응급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이 하겠다고 하면 말리지 않아요. 만약 제 아들이 의대를 간다면, 응급의학 하겠다고 하면 안 말리고 해 보라고 추천해 줄 거예요.
Q 처음에 레지던트로 불려 갔을 때도 소명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으셨나요?
A 그때는 아니었죠.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잠잘 틈도 없었는데. 그때 익산이 응급실 환자가 굉장히 많았어요. 항상 그 당시에 응급실에 60, 70명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Q 혹시 응급의학과 다시 하라고 하면 할 건가요?
A 네, 할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순환기내과였거든요, 인턴 때. 근데 그것보다 응급의학과가 더 재미있어서 할 거예요. 그리고 단기간 보는 일이 더 좋아요. 근데 지금도 약물 중독 환자는 입원시켜서 제가 계속 보거든요. 여기는 많이 없지만, 익산에서는 1년에 6, 700명이 됐어요. 하루에 2, 3명씩. 농약이 많았죠. 요즘은 농약은 많이 없고 수면제 이런 것.
Q 혹시 지금 1년 차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A 나는 1년 차들 오면, 응급의학과 하겠다고 오면 보통 두 번을 돌려보내요. 가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래도 하겠다고 하면, 그때 허락하죠. 지금 레지던트들도 다 그랬어요.
Q 새로 오시는 스텝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시나요?
A 이미 우리 과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특별하게 말 안 해도 와서 잘 적응해요. 우리 과 분위기가 좋거든. 이준희 과장님을 비롯해서. 다들 분위기 좋아서 잘 이끌어가고 잘해요.
Q 보통 레지던트 뽑을 때 어떤 면을 보세요? 인턴의 어떤 면을?
A 첫째는 저는 인성을 봐요. 실력이야 4년간 가르치면 될 수 있어요. 근데 인성이 안 좋으면 사실 강도한테 칼을 맡기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보는 것은 인성을 보고, 두 번째는 이 사람이 끝까지 할 수 있을지를 보죠. 실력은 그 뒷일이고. 인턴 점수가 나쁘고 이런 것은 별로 신경 안 쓰거든요.
Q 이제 시니어 교수님들은 힘든 시절을 겪으시면서 사실 다른 과들도 다들 잠 못 자고 그렇게 하니까 살았던 건데. 요즘은 Work Life Balance가 중요시되면서, 젊은 애들이 조금만 힘들어도 스트레스 역치가 적잖아요. 조금만 힘들어도 도망가고. 본인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적거든요. 교수님은 이제 힘든 시절을 다 겪으시고, 시집도 내셨다고 해서. 그래서 어떤 본인의 직업적인 스트레스를 돌파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하신 건가 여쭤보고 싶습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회복하셨는지?
A 제가 원장이 끝난 지 10년이 더 됐어요. 원장 끝나고, 정교수도 끝나고,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까 마음이 허전하더라고. 그러면서 3년 전부터 이준희 과장 들어오고 레지던트들 뽑으니까 응급실이 안정이 되더라고. 그 후부터 무엇을 할까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생각했던 것이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골프를 쳐 봤는데 적성에 안 맞더라고.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등산이 마음에 와 닿더라고. 3년 전부터 산을 타고. 친구가 시를 써서, '걔도 쓰는데 내가 못 써?'라고 해서, 1년 반 전부터 쓰기 시작했고.
Q 10년 전에 원장을 벌써 하셨으면, 레지던트 없던 시절에 원장도 하시고. 응급실 근무도 다 하시고?
A 그때 같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 2명 있었으니까. 그 친구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내가 원장 하니까 응급실에 신경을 못 쓰니까, 그 친구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당직도 서고.
Q 응급의학과를 하겠다고 하는 친구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지?
A 첫째는 내가 생각할 때, 환자를 사랑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무덤덤하게 하면 그 환자에게 가까이 갈 수 없지 않냐. 저라고 환자를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닌데, 사랑하려고 노력은 하죠. 특히 말 안 듣고, 술 먹은 환자들 골치 아프지만. 환자를 사랑을 해야지 하나라도 더 처치를 하고 마음이 와 닿는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두 번째는 인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요즘은 그런 게 많이 부족하거든요, 레지던트들이. 예를 들어, CT를 본다고 할 때. 계속 보면 무언가가 보이거든요. 근데 한 번 보고 아니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세 번째는 좀 학구적인 분위기가 있어야겠죠.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응급의학과 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지금 응급의학과 학회가 이제 30주년 되는데, 교수님이 응급의학과에 발을 들인 세월이랑 거의 같이 갔는데, 학회에 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지금까지 응급의학 학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거든요. 30년 만에 우리 학회처럼 이렇게 발전한 학회는 없을 거예요. 단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했어요. 거기에는 이제 학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응급의학과 교수님들의 노력이 있었고. 지금까지 했던 식으로 계속해서 해가면, 응급의학과는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선생님은 혹시 응급의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으신가요?
A 레지던트 때는 후회를 간간히 했죠. 잠을 못 자고 피곤하고,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근데 여기 와서는 별로 후회한 적은 없어요.
Q 그러면 다른 과가 부러웠던 것이 있나요?
A 저는 순환기내과가 부러웠어요. 제가 인턴 때 재활의학과를 할 생각 없냐고 물었어요. 근데 그 당시 재활의학과가 그건 의사 같지가 않아서 안 하겠다고 했어요.
Q 초창기에 제일 재미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A 이런 건 있었어요. 익산은 건달들이 많은 동네예요. 건달들 치료해주고 가면, 걔네들 엄청 좋아해요. 90도로 인사하고 나이 많으면 무조건 형님이고. 그리고 술집에 가면 기본 시켜 놓으면, 막 와서 앉으라 그래. 걔네들이 그런 것은 좋은데, 술만 먹으면 개가 돼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안 받지. 거기 있는 애들을 쭉 보면, 제가 레지던트 1년 차 때 까지는 와이셔츠가 멱살 잡혀서 단추가 일주일에 두 번씩은 끊어져 나갔어요. 근데 2년 차 중반 딱 되니까 저절로 계보가 다 꿰져요. 건달이 와서 시끄럽게 굴면은, 그 위에 있는 애한테 전화해서 빨리 데려가라고.
Q 후배들한테 이제는 말해 줄 수 있다. 옛날의 응급의학과의 진실에 대해서?
A 응급의학과가 그렇게 폐쇄적이지 않아서 진실 같은 것은 없었고. 우리 때는 엄청나게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가장 편한 과가 응급의학과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근무 시간이 딱 정해져 있으니까. 다른 과는 말이 8시간 근무지 계속하는데. 조카가 재활의학과를 하는데 88시간이 어디 있어, 계속 근무를 한대요. 근데 우리 과는 딱딱 끊어져서 근무를 하거든. 그게 인턴들한테는 매력적일 수도 있어요.
Q 교수님은 수련하시면서, 롤모델로 삼았던 분이 있나요?
A 글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일반외과 이공만 교수님이라고 있어요. 그분이 기독교 장로님인데. 그분은 환자를 굉장히 아껴요. 외래 볼 때도 그분한테 가면 자기 환자 아니어도 막 봐요. 그러고 막 8시까지 보고 외래를. 여기는 그러진 않는데, 시골 가면은 농촌 지역에는 아침에 가서 논 보고 물 같은 거 봐주고, 씻고 올라오면은 3시, 4시가 돼요. 그러면 4시 되면 끊어지는 과가 많다고. 그러면 그분들 하는 말이 그래. 세상에 의사가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데, 왜 나를 접수 안 받아주냐고. 그 교수님은 그런 환자들을 다 봤어요. 8시까지 보고. 그분한테 영향을 많이 받긴 받았죠.
Q (원광대병원이니까) 원불교 교인이 되어야 교수가 되거나?
A 그런 건 없어요. 근데 이제 원장이 되려면 원불교 행사를 간혹 참석을 해야 하니까, 교인이 되는 게 좋겠죠. 근데 교수는 그런 거 없어요. 여기 이준희 교수님도 원불교 안 믿어요. 사실 원불교는 나는 사이비인데, 원불교에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처처불상사사불공’이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의 모든 사람 마음속에는 부처의 심성이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까지도. 그러니까 우리가 이 사람, 이 동물을 대할 때 부처에게 불공을 드리듯이 대하면 자신도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 말을 아주 좋아해요.
Q 응급의학과는 멋있는 과입니까?
A 멋있다고 생각해요. 병원의 꽃은 응급센터, 응급의학과 전문의, 레지던트라고 생각을 해요.
응급의학과 1기 22명의 개척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인터뷰 모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