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응급의학과 1회 전문의 인터뷰

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15

"어느 병원이나 다툼이 있었을 거라 생각을 하고.
굉장히 보수적이잖아요, 의사들 사회가.
다른 과에서 무엇을 하는 것을 잘 인정을 안 해주고.
처음에는 저 과가 왜 필요하냐고 나오는 교수님들도 계셨고.
자기네들이 하는 방식대로 응급실에서 관철을 하려고 했고,
저희들도 어느 정도 역할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힘들었죠."


"저희 응급실장님이 외과 교수님이셨는데
제가 4년 차 때였을 거예요. 아침에 출근을 하시는데
가슴 통증이 있어서 응급실에 왔는데 심근경색이었어요.
매니지를 하다가, 심정지가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심장 마사지도 하고, 그런 경우도 있었고.
다행히 출근시간이라 병원에 오셔서 바로 처치가 되었죠."


"매일매일 출근할 때는 새롭게 각오를 하고 출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을 합니다.
항상 보람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멋있는 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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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준희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50번

수련병원 : 성남인하병원

현근무지 : 원광대학교 산본병원




Q 교수님은 응급의학과를 어떻게 알게 되었고 전공의를 하시게 됐나요?


A 그 당시에는 병원이 다 비슷했는데, 응급실이 중환자들도 많고 문제도 많았기 때문에 관리를 위해서 응급실 실장님이 다 계셨어요. 그때는 주로 외과에서 교수님들이 응급실장을 많이 했었는데, 저희 병원에 흉부외과 교수님이셨는데, 1년 미국 연수를 다녀오신 후에 응급실장을 맡으셨거든요. 이철주 교수님이라고. 그분이 오시면서, 응급의학과가 앞으로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고생해서 처음 만드셨죠. 본인도 전공의를 선발하겠다고 하셔서 하게 됐습니다. 그분 영향으로.




Q 학생 때는 응급의학과가 있는지는 모르셨나요?


A 네 몰랐습니다.




Q 인턴 하시면서 선택하신 거고, 혼자 하셨어요?


A 네.




Q 이철주 선생님이 다정다감한 사람이 아닌데, 뭐라고 꼬셨길래 했어요?


A 되게 잘해주셨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고. 저도 응급실 근무를 하다 보니까 필요하다고 느꼈죠. 문제 있는 환자들이 많은데, 거기 맞춰진 상황은 아니었고. 인턴들이 다 초진을 담당했기 때문에, 조금 더 다른 체계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분이 응급의학과를 만들고 선발도 하시겠다고 하셔서, 정식 트레이닝 과목은 아니었지만 하게 되었습니다.




Q 인턴 하면서는 응급실이 다른 과보다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A 개인적으로는 제가 여러 가지 의사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린 생각에 조금 더 필요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보람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었고. 그런 것들이 응급의학 선택하는 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다른 과는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보셨나요?


A 제가 외과 쪽은 잘 못 할 것 같았고, 내과 쪽은 생각을 해봤는데, 지원을 해보지는 않았고 응급의학을 하게 됐습니다.




Q 혼자 하는 것에 대해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A 당연히 걱정이 많이 됐죠. 그리고 아까도 이재규 선생님이 얘기는 하셨지만, 같이 상의할 사람이 없고 혼자 모든 결정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하고. 부담이 많이 됐죠.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게 결국에는 혼자 결정을 많이 해야 하고. 어떻게 보면 그냥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Q 실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나요?


A 그때 당시 돌이켜 보면 겸직을 하신 상황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응급의학과 운영은 책임을 지셨고 컨퍼런스도 해주시긴 했지만. 혼자 계셨고 다른 겸직도 하셨었고 다른 레지던트가 같이 있지는 않았고 해서, 여러 가지로 열악하고 부족했죠. 그때 당시 응급의학 수련을 하는 병원이 여러 군데 있었지만, 수준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저희 병원은 특수성 때문에 좀 더 수련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아랫년차가 들어왔나요? 교수님 2년 차 되자마자?


A 아랫년차가 한 명 들어왔습니다.




Q 한 명씩 있었었나요? 교수님 4년 차 될 때쯤에?


A 그렇진 않고. 중간에 한 명 정도가 빠졌었고. 그다음에 인하대학교가 인천에 생기면서 그쪽에서 선발을 해서 이쪽에는 레지던트가 한동안 안 들어오다가, 중간에 한두 명 들어왔었고. 독자적으로 트레이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선발은 그 이후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Q 스케줄은 어떻게 짜셨어요?


A 좋은 점도 있는데, 그냥 내 마음대로. 그 당시에는 100일 정도 당직을 하는 게 일반화되어 있어 가지고. 못 갔죠 초반에는. 그 이후에는 1주일에 한 번 정도씩 외출 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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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때 당시에는 응급의학 1기이고 해서, 다른 과와 조율을 잘하시면서 하셨는지, 근무하실 때?


A 어느 병원이나 다툼이 있었을 거라 생각을 하고. 굉장히 보수적이잖아요, 의사들 사회가. 다른 과에서 무엇을 하는 것을 잘 인정을 안 해주고. 처음에는 저 과가 왜 필요하냐고 나오는 교수님들도 계셨고. 그런 분위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하는 방식대로 응급실에서 관철을 하려고 했고, 저희들도 어느 정도 역할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힘들었죠.




Q 응급의학과로만 되어있는 교수님이 안 계셔서, 응급실장님만 계셨는데, 사실은 흉부외과 일을 많이 하시는 상황이었을 것 같은데. 백업이 잘 안되거나 이런 상황이 좀 있었나요?


A 인턴 하는 일과 제가 레지던트로서 하는 일과 어떤 차이가 있냐는 회의도 많았었죠. 경험 많은 인턴 정도의 생활을 쭉 이어갔었던 것 같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할도 조금씩 인정받고, 할 수 있는 공간도 인정해주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Q 레지던트 하시면서 정말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아니면 정말 내가 되게 잘 선택했다고 프라이드를 느끼는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A 처음에는 어떤 좋은 의도로 했는데, 실상은 되게 실망스러운 경우들이 반복 됐었고. 그때 당시에 정식 전문의 제도가 없었고. 또 연차가 올라가서 마칠 때쯤 되니까 “전문의로 인정을 못 받겠구나.” 이런 갈등이 많이 있었죠. 그래서 중간에 그만둘까 고민도 했었고, 실제로 도망가지는 않았는데. 저는 어쨌든 그때는 왜 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끝마치지 않았나.




Q 수련받을 때는 좀 남들이 응급의학 레지던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그러진 않았나요?


A 비슷한 경험들이실 것 같긴 한데, 대부분 환자가 오면 다들 걱정을 하잖아요. 그것을 좀 책임지고 처음에 매니지 할 수 있는 곳이 응급의학과고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응급실 근무를 하는 다른 동료들은 인정도 해주고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체계가 좀 잡히니까 다른 과에서도 매니지 같은 것들을 맡기고.




Q 수련하시면서 롤모델로 삼았던 교수님이 있나요?


A 저희가 좀 수련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없고. 학회 같은 곳 가끔 가면서 아주 새로운 내용 그런 것을 말씀해주시는 교수님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여러 훌륭한 교수님들 생각이 나는데, 그때는 황성오 선생님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런 게 부럽기도 하고.




Q 병원 안에서는 영향을 받거나 그러진 않았나요?


A 다들 좋으신 교수님들이 많은데, 저도 어쨌든 신장 내과 교수님 좋아했던 분이 한 분 계세요.




Q 어떤 부분이 좋으셨어요?


A 명쾌하고 스마트한 부분.




Q 교수님 레지던트 하실 때, 아랫년차가 들어오긴 했잖아요. 주로 무엇을 가르쳐 주셨어요?


A 일단 이제 당장 필요한 것들. 중심 정맥 잡는 거라든지, 봉합술 그런 기본적으로 필요한 처치들. 응급실에 다양한 환자들이 오기 때문에 학생 때 배웠지만, 기본적인 것들이 좀 많이 필요하다. 생각은 그랬는데, 실질적으로는 일에 치이거나 모여서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아서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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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문의를 따시고는 군대를 가셨나요?


A 군대는 제가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쳐서 면제를 받은 상태였고, 레지던트 마치고 그 병원에 계속 있었습니다. 2003년까지 계속 있다가, 인천에 있는 병원에 몇 년 있고. 그리고 지방 내려갔다가 성남에 있는 작은 종합 병원에도 있다가. 2012년 여기 왔습니다.




Q 수련을 하시고도 성남에 계속 오래 계셨네요?


A 2003년까지는 거기 있었습니다. 91년에 거기 인턴 들어갔고.




Q 거기 계시면서 터를 잡았다고 해야 할까요. 큰 소리를 치고?


A 응급실장도 하고 했죠. 그때 전공의가 매년 들어오지는 않았고, 전공의가 한 두 명 정도 같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작은 병원에 만족하고 있어서 안 오려고 했는데, 전화상으로 못 온다고 말씀드리기가 죄송하더라고요. 얼굴 다시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려고 왔는데, 말씀을 잘하셔서. 병원 비전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를 하시면서.




Q 2003년까지 성남 병원에 있을 때는 직속 후배라는 느낌이 있잖아요. 뭘 많이 전수를 해주고 싶으셨나요?


A 사실은 응급의학과 특징도 그렇고, 의사로서 질병 전반에 대해서 알고 진료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평상시에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점을 많이 강조를 했습니다. 한 분야를 깊게 파지는 못 하지만, 넓게 알 수 있는 과이기 때문에 그런 게 필요하다. 그리고 이후에 관심 분야가 따로 있으면 또 할 수 있고.




Q 응급의학과 초창기 하실 때는 후회하신 적이 있으세요? 아니면 이걸 하기를 정말 잘했다.


A 후회 많이 했죠. 응급의학과를 하면 의사로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급한 환자의 한 순간을 좀 해결하는 거고 끝까지 치료를 담당하거나 수술을 하거나 그럴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 것에 한계가 있다고 느낌을 받았어요.




Q 환자 중에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A 여러 환자들을 보는데. 저희 응급실장님이 외과 교수님이셨는데 제가 4년 차 때였을 거예요. 아침에 출근을 하시는데 가슴 통증이 있어서 응급실에 왔는데 AMI(acute myocardial infarction; 심근경색)였어요. 매니지를 하다가, 심정지가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심장 마사지도 하고, 그런 경우도 있었고. 다행히 출근시간이라 병원에 오셔서 바로 (처치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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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까 이제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딴 후에도 같은 병원에 계셨잖아요. 그래도 그때도 초창기이시긴 한데, 레지던트 하실 때는 조금 나은 인턴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런 존재감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존재감을 발휘하셨을 것 같은데. 전문의를 따고 나서는 다른 과랑 관계가 어떠셨나요?


A 제 기억에는 이렇게 일반적으로 인정해주는 응급의학과가 되기까지 꽤 한 동안은 원내에서도 인정을 못 받는. 역할에 대해서도 회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은 그런. 그때까지도 아마 저희 병원만 문제였는지 모르겠는데, 많이 정착을 못 한 상황이 오래갔습니다.


다행인 것은 어쨌든 학회 활동하시는 분들도 그랬고 정부에서도 응급의학과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좀 확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아마 필요성을 많이 제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착이 좀 돼왔던 것 같아요. 응급실 인턴을 하다 보니까 다른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실현이 되고, 이렇게 까지 많이 발전이 돼왔던 것 같아요.




Q 그럼 지금 30년 정도 되는데, 지금 이렇게 발전해 온 상황하고 앞으로 더 발전의 여지가 있을 거라고 믿나요?


A 물론이죠. 지금은 양적으로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각자 아주 전문적인 분야에서 많이 활동을 하시면서 인정받고 있는 것 같고. 저희는 초창기에는 뭘 어떻게 할지 잘 모르고, 굉장히 그냥 기본적인 입문만 하기도 벅찼었고.




Q 생각에 비해서 어디까지 와 있는 것 같아요?


A 아직도 좀 많이 발전할 여지가 많을 것 같아요. 또 훌륭한 후배들이 많은 것 같아요.




Q 본인이 생각하기에 응급의학과가 어떻게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것들이 좀 더 발전해주면 훨씬 응급실에서 일하기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있나요?


A 의학이 굉장히 다양하죠 요즘은. 일부분이긴 하지만 예를 들면, 응급실에 오게 되는 외상 환자도 있고 여러 사람도 있고 해서, 예방 쪽으로도 노력을 좀 했으면 좋겠다. 사건, 사고, 자살 예방 이런 활동도 했으면. 한 번 일어나고 나면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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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수님 지금 응급의학과에 지원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나요?


A 요즘은 본인들이 잘 판단을 해서 오는 것 같아요.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오기 때문에. 저희들이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된다라는 게 좀. 사람을 뽑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인턴을 하면 관찰을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판단이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Q 이번 1년 차들한테는 뭐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A 저희 1년 차는 지금 나이가 좀 많은데, 생각이 변할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Q 뽑으면서 해준 말은 없어요?


A 생각나는 말은 없는데, 어차피 같이 지내게 되니까 말로 하는 것보다 같이 지내면서.




Q 뭘 꼭 전수해주시고 싶은 게 있나요? 의학 지식 말고 살아온 경험?


A 직업이기 때문에 오래 해야 하잖아요. 개업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응급실 기준으로 따지면 근무도 이제 불규칙하고. 그렇기 때문에, 건강을 챙겨라. 좀 오래 하고 싶으면 운동도 좀 신경 써서 하는 게 좋지 않나.




Q 교수님은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위해 따로 하시는 게 있나요?


A 규칙적으로 음주를 좀 하고. 저는 집 근처에 산이 좀 있어서 자주 갑니다. 고전음악 같은 것 좀 듣고.




Q (응급의학을) 다시 하라고 하면 할 것 같나요?


A 네, 할 것 같습니다. 제가 한 것은 없지만, 오늘 같은 자리는 저에게는 영광스럽기도 하고.




Q 응급의학과는 멋있는 과입니까?


A 네, 그렇습니다.




Q 어떤 점에서?


A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나요? (웃음) 매일매일 출근할 때는 새롭게 각오를 하고 출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을 합니다. 항상 보람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멋있는 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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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1기 22명의 개척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인터뷰 모음 영상]

https://youtu.be/kUyoqRTj1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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