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14
"일단 응급실에 오는 환자를 보고 빨리 진단하고
처치하고 안정화시켜서 입원하면,
그 다음에는 입원한 과에서 잘하게 될 테지만,
저희가 그 환자를 계속 치료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덜 하고.
그리고 항상 새로운 환자, 새로운 질환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했는데, 그거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얘기죠."
"응급의료 체계라는 것은 처음에 만들어진 것은
나라에서 119를 통해서 자리를 잡았겠지만,
체계를 확립하고 국민들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응급의학과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된 거니까,
거기 초창기 멤버로서 일 했다는 것이
나중에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겠죠."
"응급의학은 여타 과 처럼 환자를 케어하고
퇴원할 때 까지 보는 과가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치료 시작, 임상과로 인계할 때까지
총책임을 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해요.
응급센터에 와서 충분한 치료를 받고
임상과로 안정된 상태로 가는 것을 저희가 하기 때문에,
환자 초기 처치의 중심은 응급의학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름 : 김영식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49번
수련병원 :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현근무지 : 분당제생병원
Q 맨 처음에 응급의학과라고 하는 것을 누구한테 소개 들으셨나요?
A 저는 서울 아산 병원에서 임경수 선생님께서 지도 교수이실 때, 이런 과도 있다는 것을 소개받고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서 알아보고, 이 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죠.
Q 임경수 선생님이 응급의학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신 건가요?
A 그렇죠. 제가 학생 때는 응급의학과라는 학문 자체가 없었으니까. 인턴 하면서 알게 된 거죠.
Q 같이 트레이닝받았던 분은 누구신가요?
A 이부수 선생님하고 같이 했죠.
Q 원래 친하셨습니까?
A 학생 때는 연배가 많이 차이 나시니까, 학생 때 접할 일은 없고. 인턴 끝나고 레지던트 할 때 처음 뵀어요.
Q 맨 처음 임경수 선생님께서 응급의학과가 어떤 과라고 소개해 주시던가요?
A 뭐 우리 학문적으로 알고 있는 그대로죠. 병원 전 단계서부터 환자를 치료하고 안정화해서 무사히 입원시키는 과정을 총괄하고 거기서 선두주자가 돼서 앞으로 우리나라 응급의료를 이끌어 갈 학문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그런 것이 제 성격이랑 맞고 그래서 관심을 갖고 있다가 어플라이를 했죠.
Q 어떤 부분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었나요?
A 일단 응급실에 오는 환자를 보고 빨리 진단하고 처치하고 안정화시켜서 입원하면, 그 다음에는 입원한 과에서 잘하게 될 테지만, 저희가 그 환자를 계속 치료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덜 하고. 그리고 항상 새로운 환자, 새로운 질환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했는데, 그거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얘기죠.
Q 선생님 들어오실 때, 윗년차로 안무업 선생님 한 분 계셨죠. 그리고 스텝 선생님은 임경수 선생님하고 황성오 선생님?
A 임경수 선생님 혼자 계셨고, 황성오 선생님이 제가 1년 차 때 오셨죠.
Q 임경수 선생님 무서우셨나요?
A 무섭진 않으시고, 그냥 생활 패턴이라는 것을 규칙적으로 하시니까 우리가 거기에 동화돼서 따라 하는 거죠.
Q 황성오 선생님은 엄하신 편이셨습니까?
A 황성오 선생님은 자율적이고, 임경수 선생님은 통솔하시는 스타일이시니까. 두 스타일이 잘 어울려져서 저희는 양쪽 스타일을 다 배운 거죠.
Q 선생님이랑 이부수 선생님 들어오시니까, 안무업 선생님이 좋아하셨겠어요?
A 글쎄 좋아했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혼자 있었을 때는 레지던트 일 안 해도 아무도 터치를 안 했을 텐데, 셋이 되니까, 의국 활동을 시작했어야 하니까.
Q 세 분이 했던 의국생활을 얘기해주세요. 컨퍼런스 하고 당직. 당직 스케줄은 어땠나요?
A 당직은 시작하면서 100일 당직시킨다고 해서 1년 차들 번갈아 시키고. 안무업 선생님은 당직 잘 안 섰던 것 같고. 7, 8월 지나서는 물론 1년 차가 더 많이 서지만, 안무업 선생님도 가끔 서시면서 운영했던 것 같아요. 당직은 저희 때야 혼자서 당직하고 하는 건데 저희 과가 신생이니까 다른 과랑 많이 부딪혔죠.
Q 당시 원주 응급실은 어땠습니까? 몇 베드였나요?
A 한 20 베드 전후였던 것 같아요.
Q 환자도 많았죠?
A 환자 수가 많기보다는, 중환이 많았죠. 경환보다는 중환이 많았죠. 대부분 다른 응급실에서는 중환보다는 경환을 더 많이 보는데. 그래서 응급실에서는 중환자들만 온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Q 당시 응급의학과가 생기고 나서, 중환자나 외상환자에 대한 어떤 모탈리티(mortality; 사망률)가 확실히 나아진다고 느끼셨나요?
A 당연히 좋아지죠, 기존에는 인턴들 밖에 없던 시스템에서 인턴들이 치료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은 기본 처치나 검사하고 해당과 불러서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다 였는데. 초기 처치 이런 것을 하다 보니까 환자들 생존율도 나아지고, 다른 과에서 특히 자기네가 안 해도 다 해주니까 되게 좋아했죠.
Q 어떤 것을요?
A 일단 뭐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활력 징후를 잘 잡아줘서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살려두니까. 그리고 기본적으로 타과랑 연관된 것도 해결해주고. 이런 것을 해주다 보니까 외과계에서는 빨리 우리 과에 대한 적응도를 높여서 디펜던트를 해줬는데, 내과는 제가 2년 차 때까지 싸웠던 것 같아요. 환자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Q 내과랑 가장 크게 싸웠던 일이 (어떤 일이었나요)?
A 저는 싸우지 않아요. 안무업 선생님이 가끔 싸우시긴 했는데, 결국은 그쪽에서 시비 거는 거죠. 왜 내과 환자인데 우리가 먼저 보느냐. 결국은 그런 것도 센트럴 라인 잡고, 인투베이션하고 그런 거 하는 과정들을 우리가 침범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2년 정도 되니까 우리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고 안 내려 오더라고요. 그런 과도기가 2년 정도 걸리더라고요.
Q 영동이나 신촌하고 정기적인 교류가 있었나요?
A 술 마시러 가끔 모였죠. 학문적인 교류는 학술 대회 때 밖에 없었으니까.
Q 최옥경 선생님께서 치악산 앉은뱅이 주 얘기하시던데?
A 네 그 당시에는 삿갓주 라고 하는 술을 먹고 기분 좋게 취해서 많이 주무시고 가셨죠.
Q 원주에서도 많이 모임이 있었던가요?
A 네 초창기 지나서 의국원이 많이 생기니까 모임이 많아지죠.
Q 초창기 학술 대회 모습을 기억을 해보신다면 어땠나요?
A 그때는 사람이 적으니까, 대학 강당에서도 하고. 지금처럼 사람이 많지 않아서 서로 얼굴 다 알고 얘기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한몇 년 됐죠. 그러다가 한 10년 넘어가면서부터 너무 규모가 커지고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해서, 저희 같은 1기들은 따로 모이고. 그런 사이로 점점 커져 간 거죠.
Q 입학 기수로는 4기가 되시지 않습니까? 장석준 선생님, 이원재 선생님, 김성중 선생님 2기. 그러면 위에 선배분들하고는 되게 가족적으로 지내셨을 것 같아요?
A 네, 그 윗기 분들하고는 다 알고 개인적으로 만나고. 전체 숫자가 22명밖에 안 됐으니까.
Q 1,2,3회 선배님들은 수료하고서도 시험을 바로 못 봤는데, 4기 선배님들은 4년 수료하시고 전문의 시험을 바로 볼 수 있었지 않습니까?
A 저희도 바로 본 것은 아니죠. 군대 훈련 갔다가 본격적으로. 우리가 2월 달에 아마 훈련소에 들어갈 때 까지도 전문의 시험을 볼지 말지 결정이 안돼서, 군대를 갔다 와서 시험 봐야겠구나 하고 편한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훈련소에 있는데, 시험을 보기로 했다고 해서 나와서 시험공부를 하고 봤는지가 헷갈리는데, 전문의 시험을 보게 돼서 전문의 자격을 따고 군대 들어가서 대위로 임관하게 됐죠.
Q 되게 운이 좋다고 느끼셨겠네요?
A 그렇죠. 신생 과가 보드 시험이 생긴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인데, 전공의를 하게 될 때도 전문의 시험이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른다고 하고 시작한 건데, 다행히 마치면서 시험을 볼 수 있었으니까 다행이죠. 만약 군대 3년 동안 기다리면서도 시험이 안 생겼다고 그러면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 될 뻔했지만, 응급의학과가 다 필요하니까 생기리라고 생각했지만, 확신이 없으니까 불안한 마음도 있긴 했었죠.
Q 전문의가 되고 나서 바로 분당 제생 병원으로?
A 그렇죠. 제대하고 바로 와서 시작한거지요.
Q 한 직장에(분당제생병원) 20년을 계셨는데요, 어떠십니까? 당시에는 응급의학과가 없던 병원에 생긴 건가요?
A 아니죠. 98년부터 응급의학과가 있었어요. 처음 개원할때부터. 이부수 선생님이 여기서 과를 운영하고 그전에 같은 의국 김선만 선생님이 초대 과장이었고. 그다음에 이부수 선생님이 합류해서 둘이 있다가 저까지 3명이 된 거죠.
Q 세 분이서 어떻게 근무하셨습니까?
A 그때는 뭐 3일에 한 번씩 했다가, 김선만 선생이 제가 와서 2달 있다가 개원해서 나갔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2명이서 섰다고 보면 되죠.
Q 무척 힘드셨겠네요?
A 그냥 저희는 그런 생활이 익숙해서 했는데, 요새 친구들은 못 하겠죠. 지금 생각해보면 둘이서 365일 커버한다는 것이 힘든 일인데. 어떻게 보면 지금은 전문의가 응급 센터 환자들을 다 케어하고 지켜봐야 하는데, 물론 경환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환자가 아주 많을 때도 아니었고 전문의 수가 적으니까 둘이서 풀 커버를 못 한다는 것을 다른 과에서 이해를 해서. 낮에 주로 환자를 보고 야간에는 다른 일을 보러 나가거나 집에서 쉬다가 콜 받고 나가는 것이 인정이 됐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때는 출퇴근하는 의사로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야간 당직 다 서고 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까, 국민들 한테는 좋은 거죠.
Q 그렇게 두 분이서 한 몇 년을 하셨어요?
A 그 다음에 2003년도에 하영록 선생님이 왔으니까, 아마 그때 하영록 선생님이 들어오면서 이부수 선생님이 강릉 아산 병원으로 갔으니까, 또 2명이서 했죠.
Q 여기 병원에서는 응급의학과에 대한 인식이 어땠습니까?
A 여기는 개원 초부터 응급의학과가 있었고 세팅을 다 했기 때문에, 응급의학과에서 하는 것 자체는 다 수용하고 알아서 하라는 그런 거지, 다른 과에서 자기 영역 요구하고 이런 것은 없어요.
Q 한 곳에 20년 계시면서 다른데 가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신 적은 없으세요?
A 초기에는 조금 여기저기서 옮겨 갈까 하는 그런 생각도 있었는데, 그런 결심 하기 전에 윗사람들이 다 나가버렸기 때문에 전공의들을 키워야 해서 못 나가니까 안 나가게 됐죠.
Q 전공의는 언제부터 받으셨나요?
A 2001년인가 2년인가.
Q 그럼 트레이닝으로 누가 처음이죠?
A 지금 부천 순천향대 병원에 있는 김호중 선생이 1기죠.
Q 맨 처음 레지던트 받을 때 남다른 감회가 있으셨겠어요?
A 그렇죠. 새로 식구가 늘고 나도 전공의를 수련시키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하는 얘기지만 우리 때랑 세대 차이가 난다고, 전공의가 지금은 더 심하겠지만. 우리 근무 형태랑 많이 다르니까 그런 점에서 세대가 바뀌었구나라는 것을 알고 과한 기대를 잃어버리게 됐죠.
Q 답변해주신 것을 보면 개척자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A 기존에 입원한 환자를 치료하거나 외래 온 환자를 치료하던 임상과에서 치료가 잘 된 아니면 치료하고 있는 사람을 자기가 아니더라도 누가 그런 것을 정리하고 환자를 인계해주는 그런 게 생겼다는 것을 처음 사람이 인지하게 된 것이 응급의학과가 생겼으니까 그런 거고, 그게 자리를 잡다 보니까 우리나라 119 구급체계도 자리 잡은 거니까. 어쨌든 응급의료 체계라는 것은 처음에 만들어진 것은 나라에서 119를 통해서 자리를 잡았겠지만, 체계를 확립하고 국민들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응급의학과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된 거니까, 거기 초창기 멤버로서 일 했다는 것이 나중에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겠죠.
Q 수련 기간 중에 정말 보람 있었던 일이 있었나요?
A 글쎄요. 다들 경험하시겠지만, CPR 해서 살리거나 그런 경우도 하지만. 치료 환자인데, 내가 그 환자를 빨리 진단해서 수술이나 시술해서 하고. 이 환자가 만약 인턴이 봤으면 살았을까 하는 것을 보면 도움이 좀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하죠.
Q 처음에 20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 회식 모이면 주로 무슨 얘기 하셨나요?
A 초창기 멤버들은 다 항상 그렇지만, 우리가 끝나고 전문의를 따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있을까가 관심사였고 전문의 시험이 확정이 안 되니까 언제 볼 수 있을까.
Q 작년에 2000명이 나왔는데, 20명 정도가 시작한 것이 지금은 100배가 커진 것이죠. 초창기 때 시작하시면서 생각했던 응급의학은 이런 거다라는 이상이나 꿈이 있었을 건데, 30년 동안 어느 정도 발전했을까요?
A 과거에 응급의학은 약간 새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초창기 분들이 전공의들 위주로 환자를 봤다면, 지금은 자의건 타의건 전문의가 환자를 보는 시스템으로 자꾸 바뀌어 가고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저도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경험이 있고 환자를 봤던 사람이 환자를 보면 더 빠른 시간에 처치를 할 수 있는데. 전공의들이 잘 본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경험이나 이런 것에서 전문의보다는 미숙한 부분이 있고. 지금 시스템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되, 전공의들이나 전문의들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을 하면 훨씬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전문의들도 나이를 먹어서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 하면서, 몸 관리하고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의사로서 계속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Q 선생님이 아랫년차로 누가 들어오셨나요?
A 제 밑에 1년 밑이 이강현 선생님. 그 아래가 김선만 선생님. 이진웅 선생님.
Q 아랫년차를 선생님이 혹시 (섭외)포섭을 하셨나요?
A 이강현선생님도 본인이 지원하신 경우고. 김선만, 이진웅 선생님도 초창기 멤버들은 스스로 자원해서 했지 우리가 꼬신 건 없었어요.
Q 오랜 시간이 지나고 올해 들어온 1년 차한테는 뭐라고 말씀해주셨나요?
A 세대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옛날처럼 잘할 수 있다고 말해주기보다는,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서도 환자를 보고 치료하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과이기 때문에 일하면서 긍지를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해라 라고.
Q 선생님이 우리나라 응급의학과에서 이거는 제일 처음 했을 거다라는 것이 있나요?
A 글쎄요. 아마 초창기다 보니까 스완간츠카테터로 혈류역학검사하는 것은 원주에서 제일 먼저 황성오 선생님 덕분에 시작했으니까, 그거는 좀 빨리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Q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응급의학의 전문성은 뭡니까?
A 응급의학은 여타 과 처럼 환자를 케어하고 퇴원할 때 까지 보는 과가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치료 시작, 임상과로 인계할 때까지 총책임을 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해요. 우리 과를 초기에 잠깐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 일에 자긍심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고요. 응급센터에 와서 충분한 치료를 받고 임상과로 안정된 상태로 가는 것을 저희가 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있어서 환자 초기 처치의 중심은 응급의학과라고 생각합니다.
Q 다시 하라고 해도 응급의학과 하시겠습니까?
A 환자를 계속 안 봐도 되는 점에서 저랑 잘 맞는 것 같습니다.
Q 응급의학의 장단점을 하나씩 꼽아 본다면?
A 장점은 남들 일할 때 쉴 수 있다는 것. 단점은 남들 쉴 때 우리는 일하는 것. 밤이나 휴일에. 또 우리가 환자를 끝까지 데리고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감정적인 소비가 덜 하고 환자를 치료하거나 하는 과정에서 보호자들한테 시달리거나 그런 게 없으니까 그런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Q 아주 친한 후배가 있다면 응급의학과를 권유하시겠어요?
A 제가 생각하기에 권유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매력 있는 과라고 알려줄 수는 있겠죠.
Q 당시에 선배들이 없는 신생과 레지던트셨는데, 장단점이 있다면?
A 다 초창기 전공의들을 했던 분들은 느꼈겠지만, 그 당시에는 순수하게 응급의학을 전공하고 전문의가 되신 분은 없었기 때문에, 환자를 보면서 궁금점을 물어볼 수가 없는 경우가 많죠. 왜냐하면 사부님들 모르는데, 저희가 물어보면 얼마나 민망하겠어요. 그니까 사부님들이 좋아하고 아는 것만 물어보게 되니까 환자를 보는데 편협해지는 게 있죠. 그러면 윗년차가 있어야지 물어볼 텐데, 없으니까 못 물어보고. 윗년차가 있어도 1년 차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냐 생각하면, 그런 걸 물어볼 수 없다는 게 그런 거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과 선배 전공의들한테 물어보거나 해야 하는데, 좀 자존심 상하죠.
Q 가장 큰 장점은?
A 장점은 아무도 없으니까 위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보통 의국에서 선배 전공의들하고 이것 저것 하는데, 우리 때는 스텝하고 우리 밖에 없으니까, 거의 의국 선배처럼 사부님들하고 지냈다는 게 추억이죠. 아마 저희 사부님들 다 똑같겠지만, 초창기 전공의들이 기억도 남고 정도 가고 그러는 게 오랜 시간 붙어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Q 1기 선배님들의 노고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차근차근 발전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어쨌든 어떤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초기에 첫 시작했던 사람들이 인정을 못 받고 자리를 못 잡았으면, 후배들도 인정받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런 거에 있어서는 30년이면 때가 됐죠 지금. 짧은 시기지만, 큰 영역을 관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초기에 저희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짧고 굵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A 다들 잘 아시겠지만 응급의학은 학문적으로 흥미롭고 여러 가지 새로운 것을 개발할 수 있는 넓은 분야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도 발전해왔지만. 앞으로 AI가 판을 쳐도 응급의학은 계속 발전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앞 날은 몸만 성하다면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다들 좋은,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응급의학과 1기 22명의 개척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인터뷰 모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