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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Dec 24. 2021

소복소복 눈길 플로깅

플로깅 열일곱째날 

올 겨울 서울에 첫눈이 내리는 날 12월 18일. 함박눈이 내리는 오후에 눈을 맞으려 산책을 나갔다. 골목에 동네 아이들이 나와 있다. 눈이 와서 신났는지 꺄르르 꺄르르 웃는 소리가 좋다. 플로깅을 하려 했는데, 눈이 펑펑 와서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다. 눈이 좀 그치면 다시 저녁에 나오기로 하고 눈길 산책에 집중하기로 했다. 온통 하얀 세상이 쓰레기가 안 보인다. 잠시... ㅎㅎ

내친 김에 일단 골목을 벗어나 큰 길로 큰 길로... 자전거 있는 도심의 눈 풍경도 썩 괜찮다. 

 


걸으면서 요 며칠 쓰레기 배출 방법에 대해 알아본 걸 생각해봤다. 환경부에서 만든 '내손안의 분리배출'앱이 쓸 만하다. 분리배출의 4대 원칙 "비운다, 헹군다, 분리한다, 섞지 않는다"를 지키면 쉬운데, 앱에서 품목별로 배출법 검색을 하니 편리했다. 지난 번에 궁금했던 소형폐가전제품을 시험삼아 다시 찾아보니 역시 무상수거(일반 가정)라고 되어 있다. 플로깅하다 보니 소형폐가전쓰레기가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걷던 중 눈이 잦아들고 어느 집 감나무에 아직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봤다. 어릴 적 화투에서 홍싸리를 처음 봤을 때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멀리서 보니 홍싸리(등나무를 그린 거라 하는데 맞나 모르겠네?)같다. 감을 먹느라 새들이 왔다갔다 바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선 사진을 찍고 새들의 움직임을 쳐다본다. 


플로깅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싶은데 못 찍고 있다. 우선 한정된 시간에 쓰레기를 줍줍 하느라 여유가 없다. (초보 플로거 티가 팍팍 나는군) 두번째 이유는, 이게 크긴 한데, 쓰레기 사진이라 아름답지 못해 망설이게 된다. 기록이니까 당연히 주운 쓰레기 사진도 찍어두긴 했는데, 찍어둔 사진을 찬찬히 볼 때마다 마음수양을 해야 한다. 다큐에서 본 여성 아티스트 한 분은 주은 쓰레기를 모아 정말 멋진 콜라쥬를 만들고 작품 사진도 찍고 하던데, 나는 사실 창의성이 없는(현재 바닥난) 플로거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고민중이다. 


늦은 밤이 되어 눈이 그치고 플로깅을 하러 다시 나왔다. 소복소복 눈더미 아래 깔린 아이스팩 세 개를 주워서 주민센터 아이스팩수거함에 넣고, 총총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용하게 소복소복 눈발이 흩어진다. 유달리 인적 없는 오늘 밤에는 동네 냥이가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우리 동네에서 냥이가 이렇게 느릿느릿 걷는 건 처음 본다. 맨날 쫓기듯 걷거나 뛰어다닌다. 사람때문인지..

 


캣맘 캣대디들이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관리를 잘 하는데도 동네 인심이 좀 험악하다. 전에 냥이가 골목에서 울고 있자(아마도 영역다툼에 밀린 냥이 한 마리가 울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리 큰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귀가중이던 앞집 아저씨가 냅다 매질을 하려던 적이 있었다. 아저씨가 주차장 후미진 구석 쪽으로 갑자기 뛰어가더니 웬걸,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 나도 마침 귀가중이었는데 말리려다가 싸움이 났다. ( 냥이가 자신의 집앞에서 마냥 울고 있는 것이라면 신경이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그 때 냥이가 울고 있던 골목은 아저씨네 앞집 방향과는 반대편이다. ) 왜 같이 살아갈 순 없는 걸까? 왜 무조건 때리려 하고 위협하는 것일까? 문제가 생기면 왜 먼저 주위에 대한 폭력으로 해결하는 걸까?  


오늘의 정리 

아이스팩이 많이 그냥 버려져 있다. 골목골목 곳곳에.. 사람들이 별도의 아이스팩 수거함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지자체마다 쓰레기가 마구 투기되는 수거자리에 CCTV가 있긴 한데 그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CCTV가 있어도, 크고 작은 쓰레기가 배출일이 아닌 날도 배출방법도 다 어기고서 많이 나와 있다. 불법 투기를 했다고 해서 CCTV를 찍어서 실제 과태료 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갑자기 궁금해서 행정 정보공개를 찾아봤는데 잘 모르겠다. (이건 나중에 찾아보기로 하자.) 어르신들이 앱 깔기도 불편할 터이고, 배출가이드를 집집마다 나눠주고 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어떨지, CCTV보다 예산이 덜 들텐데 싶기도 하고, 플로거를 하다보니 청소행정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눈길 위 새 발자욱이 또렷하다. 세상은 여러 생명체가 같이 살아가는 거니까, 플로깅을 열심히 하자. 백일 기록 완성 목표를 향해! (자꾸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난다. 주변서도 소식을 듣게 된다. 걱정을 날리며 한 컷!) 다짐하며 오늘 플로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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