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깅 44번째
코로나에 확진된 가족이 많이 좋아졌다. 기저질환이 있어서 증상이 악화돼 입원을 앞둔 차에 치료제(라게브리오)를 먹고서 다행히 회복하게 되었다. 한숨 돌린다.
그사이 서울에서도 목련이 피었다. 떨어져 사는 가족이 몹시 앓고 있는 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다가 목련을 보았다.
아. 지난 겨울 이 목련나무 근처에서 깨진 유리조각을 주웠었지. 나무 아래 서서 가만히 올려다보니 목련이 은하수 같다. 진짜 봄이 왔구나. 어김없이! 자연이 아낌없이 주는 공짜 선물. 평정심을 되찾는다.
다음날 오후에 또 나가보니 여기저기 꽃이 피었다. 와 이 나무 밑에서도, 이 담 밑에서도 내가 플라스틱 음료컵이랑 꽁초를 주웠었는데! 물론 내가 줍고 안 치웠어도 꽃이야 피었겠지. 또 플로깅을 시작한 게 작년 12월이니까, 꽃이 꽃을 피우는 데에 내가 기여한 바는 미미하겠지. 그래도 뿌듯하다.
돌발 퀴즈
동네 쓰레기를 줍다 보면 특이한 현상을 보게 된다. 이를테면 배출일이 아닌 날, 이웃의 집 앞에 자기 집 쓰레기를 놓고 가는 이들이 내놓은 쓰레기. 대개 작은 공터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이웃집 앞인데, 이웃집 앞으로 와서, 배출시간 또한 어기고서 자기 집 쓰레기를 갖고 나온다.
과연 이 쓰레기는 분리수거가 잘 되어 있을까요, 아닐까요?
생활쓰레기는 자기 집 앞에 정해진 배출요일, 배출시간에 맞춰 버리는 게 기본원칙. (서울의 경우 대개 배출요일은 일주일에 3번이고 배출시간은 일몰 후이며 몇몇 구의 경우 예외)
기본원칙을 안 지켰으니까 당연히 분리수거가 잘 안 되있을 거라 짐작하시죠?
아뇨. 삑! 틀렸습니다^^. 예상과 달리 대부분 분리수거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깨끗하고 깔끔한 내 집안에...
플로깅하다가 여태까지 대여섯 번 정도 이런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 이들과 마주쳤다. 처음에는 몰라서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기본규칙을 쓴 큰 알림판이 내걸려도 몇 차례나 버젓이 되풀이하는 사람도 봤다. 몇 안 되는 사례에 주관적인 관찰결과이긴 하나, 놀랍게도, 이들의 쓰레기는 대부분 분리수거법을 매우 잘 지킨 쓰레기였다.
분리수거를 잘 한 쓰레기지만 기본규칙을 어기고 내놓은 쓰레기는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 분리수거 요령을 잘 지켜서 ‘동네 쓰레기터’(이웃집 앞 공터)에 투기된 쓰레기 위로, 지나가는 이들의 온갖 쓰레기가 하나둘 자연스레 쌓인다. 그러다가 마구잡이 쓰레기터가 된다.
나의 집 앞도 이런 ‘동네 쓰레기터’ 중 하나인데, 플로깅을 하면서 동네를 돌아보니까, 동네 골목 곳곳에 이렇게 ‘동네 쓰레기터’가 되고 만 곳이 꼭 있다. 누군가의 반지하 집 창문 앞, 누군가의 허름한 집 담벼락에 형성된 ‘동네 쓰레기터’가 있다.
이런 쓰레기터를 보는 게 좀 괴롭다. 어차피 나와 같은 동네서 사는 내 이웃인데 왜 이웃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을까.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도 전에 반지하에 산 적 있어서인지 창을 열었을 때 눈앞에 갖은 쓰레기를 봐야 하는 사람의 기분을 잠시나마 떠올려보게 된다. (위 사진 속 담벼락 쓰레기는 치웠지만 반지하 집 창문앞 쓰레기는 치우지 못했다. 창문앞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으면 사는 사람한테 도리어 방해가 될 수도 있어서..)
그래서 나는 기본원칙을 잘 안 지키는 이들과 만나면, 지금 여기다가 버리지 말고, 자기집 앞에 배출일과 시간을 지켜서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말한다. 되도록 정중하게 부탁하고 한 두 마디 짧게 상황을 설명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돌아오는 최종적 반응이 똑같다. 알겠다고 답하거나 아예 나의 말을 안 들은 척하고 가는데, 본인이 막 들고나온 쓰레기를 도로 들고 가는 사람이 없다.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예전에 언젠가 나도 배출일을 헛갈려서 집앞에 쓰레기를 내놓았는데 나도 도로 집으로 갖고 오진 않았다. 한 두 번 실수할 수도 있고 자기 집앞이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웃집 앞에 일부러 놓고가는 건 좀.. ㅜㅜ. ) 물론 이웃집 앞에 쓰레기를 놓고 가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잘 분리수거한 쓰레기를 버리려 애써 일부러 몇 걸음 더 걸어서, 자기 집 앞이 아닌 이웃집 앞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 도로 자기 집으로 갖고 가서 하루 기다려서 다음날 자기 집 앞에 내놓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어쩌면 쓰레기 문제는 더럽고 지저분한 집밖에 있는 게 아니라, 깨끗하고 깔끔한 내 집안에 있을지 모른다.
오늘의 정리
이제 둘 중 하나가 코로나를 걸리는 시대가 되었다는데, 이제 코로나를 풍토병처럼 관리하는 엔데믹 시대가 온다는데. 2020년 국내 첫 코로나 사망자를 기억해본다. 20년 넘게 폐쇄 병동에 장기 입원해 있던 정신장애인의 죽음. 병실 창문을 쇠창살로 막거나 창문을 열 수 없어서 환기가 불가능한 그런 가혹한 환경 속에 오랜 기간 투병하며 살아온 이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희생됐다.
일각에서는 건강한 사람들이 감염병을 가볍게 앓고 낫고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좀 더 분별력 있고 사려 깊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감염 재난이 가져다준 역설적 교훈은 언뜻 보면 관련 없어 보이는 생명과 생명, 삶과 삶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삶과 죽음도 한없이 가깝게 이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이웃, 타인, 생명체, 세계와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만나고 연결되고 싶다.
봄이 주는 따스한 위로를 받으며 그런 기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