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깅 45번째
올봄 꽃샘추위 막바지 날. 강한 바람이 불고 영하 날씨로 꽁꽁 얼어붙은 날 정오. 길 한구석에 떨어진 아이스팩 몇 개를 주워 주민센터 재활용 수거함에 넣고 돌아오는데.
길에 흰 비둘기가 있다. 골목이지만 차가 꽤 오가는 도로.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찾느라 열중하고 있다. 이쁘네. 저만치 공원 쪽에는 집비둘기들이 무리 지어 있는데, 혼자 있다. 길바닥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앗. 흰 비둘기는 술 취한 사람들의 토사 찌꺼기를 쪼아 먹고 있다. 그리고 부서진 스티로폼 알갱이를 먹는 것 같았다. 다가가니 휙 날아가 버린다. 뭘 먹지하고 유심히 봤다. 스티로폼 알갱이가 아니라 뜯겨나간 과일 포장재(과일 흠이 안 나게 하려고 과일박스 아래에 까는 얇은 플라스틱 포장재) 작은 조각이었다.
2022년 3월 세계 최초로 사람 혈액에서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 몸에 미세플라스틱이 있다는 점은 이미 들은 것 같아서, 다시 뉴스를 읽어보니 혈액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오는 게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네덜란드자유대학 연구팀, 보건환경 학술지 <국제환경>에 실린 내용) 몸안에서 플라스틱이 혈액을 타고 이동하고, 장기축적되면 질병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올 4월에는 살아 있는 사람 폐에서 처음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폐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걸러지지 않고 뇌나 심장으로 간다고 한다. 산 사람의 폐에서 가장 많이 나온 입자는 페트병, 폴리프로필렌이다.
먹이사슬 최상위포식자가 사람이니까, 비둘기가 먹은 플라스틱도 흘러 흘러 벌써 내 몸으로 들어와 있으려나. 아니, 비둘기는 플라스틱을 먹고 영양실조로 죽게 된다는데. 십여년 전에 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먹이를 주지 말자고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벌이던 때가 좀 무색하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88올림픽 개막식 때 2400마리 흰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라 방사하던 TV중계를 보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던, 바로 엊그제 같은 내 어린 시절도 무색하다.
"플라스틱을 섭취한 물고기와 새는 결국 영양실조로 죽어요. 새와 물고기는 죽어서 몸이 썩어도 플라스틱 조각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바다를 떠돌며 크기가 점점 작아진 미세플라스틱은 조개와 굴, 소금에 섞여 있기도 해요. 이것이 다시 우리 식탁으로 돌아오기도 해요. 결국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우리 밥상으로 되돌아오는 셈이에요."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물건10> 34쪽 박경화 지음, 한겨레 출판 2019년
물고기의 경우 플라스틱 쓰레기와 더불어, 원전 온배수 문제도 있으니까 새보다 더 곤란한 상황이려나. 원전 온배수는 핵연료 냉각에 쓰였다가 바닷물에 방출되는 물인데 원전에서 생긴 에너지 중 3분의 2가 온배수 형태로 빠져나간다. 이 때문에 원전 근처 해수는 높아서(수온이 주변보다 7도 높음) 주변 바닷가에 어종이 줄었다.
지난주에 구독하는 노고지리 작가님 글에서 벌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보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올봄 꿀벌 수십억 마리가 사라졌다는데 벌이 줄어서 식물이 수정을 못 하게 되어 식량 생산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오늘 관련 뉴스가 또 나왔는데 무려 78억 마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자그마치 78억 마리다! 그렇지않아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파종을 못해 곡물 가격 폭등으로 식량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데 특히 아프리카, 중동과 같은 특정지역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소식을 더 들으며 살까.
몇 년 전 할머니 장례식을 치를 때, 아버지와 숙부님이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에 대한 다소 원망 섞인 추억이었다. 한국전쟁 끝나고 한 두 해 지났을 무렵 집에 먹을 쌀보리가 없고 고구마 몇 개가 남아 있어서 고구마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며칠 굶었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고, 할머니가 남은 고구마를 삶아서 다 나눠줘 버렸다. “그치. 그치.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엄마가 그 사람들한테 고구마를 줘버렸잖아.”
굶주림은 70여 년이나 전에 겪었어도 이토록 강렬하고 생생한 고통과 비참함으로 남아 있다. 기아는 식량공급량 감소나 부족이 아닌 전쟁이나 불평등-임금감소, 실업, 식량 가격 상승, 식량 배급 체계 미비 등-과 같이 수많은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나는 인재이다. 초봄에 먹을 게 없어 인간의 토사 찌꺼기나 플라스틱을 먹는 비둘기도 인재라면 인재를 겪고 있다.
오늘의 정리
낡은 시대는 이미 갔는데 새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전환의 시대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낡은 가치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계를 매일 마주한다.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새 가치를 받아들여서 어서 빨리 준비해도 모자란 시간인데.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 재개라니. 이동권 확보를 위해 시위하는 장애인들이 손배소를 당하고 공적으로 버젓이 혐오차별 부추김을 당하고..,, 하아..
섬뜩한 경고가 줄을 잇는데도 전과 마찬가지로 비루한 가치로 산다. 인간의 공존과 공동선, 존엄과 다양성 존중, 인간과 자연의 조화, 지속가능한 사회 등 이런 가치는 성장지상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간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서 자연 동식물뿐 아니라 건강약자들도 막심한 피해를 봐 왔는데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경제적으로만 더 풍요로운 내일을 꿈꾸고 약육강식의 논리로 산다. 러시아 푸틴이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여 놀라고 떨면서도, 원자력발전을 고집한다. (참고로, 원전 즉 핵발전과 핵폭탄의 원리는 같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플루토늄을 따로 뽑으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지만, 이런 배경으로 많은 나라가 아직 원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초예측-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정현옥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9년)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 미래의 첫째가는 위협으로 감염병을 들었다. 원서는 2018년에 나왔다. 2020년 코로나 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퍼지기 2년 전에 이미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경고를 했다.
인류가 성장(경제성장)을 위해 일으킨 전례 없는 생태적 사회적 변화로 인해, 주로 기업이 환경에 대한 비용부담을 지불하지 않고 거의 공짜로 발전해온 댓가로 인해, 지금 우리가 톡톡히 값을 치루고 있다. 코로나란 감염재난을 겪으면서 이제는 석학이나 환경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채가고 있다. 성장의 혜택은 여전히 누군가(특정지역, 특정집단 즉 역사적 사회적 약자들, 건강약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있거나 심지어 해를 입혔으며, 어쩌면 언젠가 가깝거나 먼 미래에 우리 모두가 다 같이 파국의 위기에 처할 거란 사실을.
오늘의 팁 - 플라스틱 과일 포장재 분리수거법
‘내손안의 분리배출’앱 Q&A를 찾아보니, 얇은 플라스틱 과일 포장재는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분리수거하지 말고, 종량제 봉투에 담는 게 좋다고 한다. 단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재활용 수거업체에서 재활용을 하지 않고 어차피 잔재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을 반영해 종량제 봉투에 넣는 게 좋을 듯 하다.
그리고 나의 플로깅 경험에 기초해 생각해보면, 플라스틱 과일 포장재는 종량제 봉투 안쪽으로 잘 밀어 넣어야 할 것 같다. 워낙 얇아서 여기저기 부서지거나 찢겨 길바닥에 휘날아다니는 것 같다. 새가 먹고 물고기가 먹고 끝내 우리가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