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깅 46번째
지난 겨울에 쓰레기를 줍고 치운 곳에서 아름답게 핀 봄꽃을 보고서, 뿌듯함과 기쁨을 느꼈다. 여운이 남아 있다. 이럴 때 낮에 산책하며 힐끗 본 화분 밑 소주병 조각들을 치워보자 싶어서 집을 나섰다. 봄꽃 다 지기 전에 여세를 몰아서 슬슬 나서볼까.
지난해 여름 흰 수국이 피던 자리. 동네 아주머니께서 댁 앞에 작은 공터에 원형 고무대야 등을 놓고 수국을 비롯해 각종 꽃, 작물을 키우는 곳이다. 여름에 강한 햇살이 내리쬐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주머니께서 나오셔서 호스로 물을 뿌리기도 하시고, 가을에는 주렁주렁 열린 가지, 고추를 수확하신다.
우리 동네는 생활권 녹지가 부족한 지역이라서, 이런 곳이 있다는 게 고맙고 좋다. 아주머니의 수국 화분 밑에 깨져 있는 소주병 두 병 조각들을 줍는다.
얼마 전 봄바람이 불 때, 한 브런치 작가님의 추천으로 고 임세원님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읽었다. 감명 깊고 가르침이 많은 책이다. (책 삽화도 참 멋지다. 추천해주신 작가님 감사합니다!)
2018년 마지막 날 임세원 선생님께서 아까운 목숨을 잃고 나서, 유족분들께서 임세원 선생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인터뷰를 하셨다. 임세원님, 임세원님의 유족 분들의 훌륭한 마음가짐과 언행을 본받고 싶다.
고 임세원 선생님께서는 병원 직원들을 구하고 돌아가셨지만 안타깝게도 의사자로 지정되지 못하신 듯 하다. 현재 법률로는 의사자(의사상자)가 되려면 직무 외 행위여야 하고 직접적 적극적 행위로 인정받아야 한다. 세월호 고 김관홍 잠수사님께서도 의롭게 돌아가셨지만 의사자가 되지 못했다고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으로 의로운 죽음에 대해 더 소중히 대하고 오래 널리 기억하길 바란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임세원 씀, 디자인 박지은, 일러스트 민아원, 2016년, 알키) 가운데 내 마음에 다가온 세 구절이 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려고 애쓴다. 그러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도 조금씩 친절해지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226쪽. (큰 글자책은 269쪽)
삶은 길을 찾을 것이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236쪽. (큰 글자책은 281쪽)
지금 이 순간 소멸하지 않고
살아 숨쉬는 나의 존재는
희망에 대한 가장 분명한 근거가 아닐까.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239쪽. (큰 글자책은 285쪽)
특히 위 첫 번째 구절은 정말 많이 공감이 된다. 내 생각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다 보면, -내 식으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강점, 장점을 위주로 보고 대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더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또 그렇게 하다 보면, 그들의 좋은 모습과 더불어, 그들의 좋은 모습과 닮았지만 현재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있는, 나의 어떤 좋은 모습(숨겨진 나의 강점과 장점)을 더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심리학적 근거?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그냥 제 체감입니다. ㅎㅎ)
오늘의 정리
흰 수국. 한중일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 서식하는 수국과 식물. 6~7월에 피고 물을 좋아하는 꽃. 꽃말은 변심 그리고 넓고 상냥한 마음이라고.
소주병 유리조각을 또 주우면서, 길어지는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사정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사람들이 꽤 되는구나, 나도 힘들고 모두가 힘들구나 싶다. 기운이 처진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고 나 자신과 남에게 친절해지려 노력해야지. 고 임세원 선생님 말씀처럼, 살아 숨쉬고 있는 나란 존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란 존재, 지금 이 순간 소멸하지 않고 있는 모든 존재가 앞으로 희망의 날들에 대한 분명한 증거겠죠!
올 여름도 눈부신 수국을 기대하며. 46번째 플로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