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혹은 하수구에 버려진 마스크, 긴 나무꼬치 등을 줍는 겨울밤 플로깅. 이 나무꼬치에는 맛있는 간식이 끼워져 있었겠지. 흐흐. 나는 나무꼬치에 꽂혀 있던 게 무슨 간식인지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잘 알고 있다. 요새 울 동네 아이들한테 엄청 인기 있는 탕후루^^. 아이들이 여기저기 버린 이 나무꼬치를 몇 번 줍고서, 나도 마침내 탕후루를 사먹었다. 무지 맛있다. ㅎㅎ
마스크를 줍줍하며 걷다가 다다른 동네 가게 앞. 가게문 바로 앞에 세로로 길쭉한 비닐뭉치 묶음 같은 게 있어서 ‘뭐지’하고 들여다보다가, 그 정체를 퍼뜩 깨닫고 빵터지고 말았다. 아니아니, 사장님~ ㅋㅋㅋ 너무 귀엽잖아요!
이 비닐봉지, 뽁뽁이에 쌓인 것은 무엇인고? 그 정체는? ㅎㅎㅎ
작년 늦가을까지 가게 앞 갈라진 아스팔트 바닥 틈에 피어있던 아욱꽃. 도시에 길들여지지 않았다고 할까, 뭐랄까 만만치 않은 야생의 느낌을 팍팍 전해주는 색감에, 키가 큰 식물. 잡초 같은 생김새가 좀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뽁뽁이랑 비닐을 겹겹으로 참 정성스럽게도 아욱꽃을 싸놓았다. 가게 바로 앞에 있으니 분명 맹추위에 아욱꽃이 죽지 말길 바라며 가게 사장님이 고이고이 씌워놓은 비닐뭉치렷다. 오. 아욱꽃은 안 죽고 살아서 내년에도 꽃을 피워주겠구나.
하얀 비닐더미의 정체는 아욱꽃이었네요. (작년 늦가을에 찍어둔 사진입니다.)
내가 크게 웃은 이유는 이 가게 사장님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사 오고 얼마 안 돼서였을 무렵 어느 날인가 내가 좀 피곤하고 예민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뭘 사러 이 가게에 갔었는데, 그날따라 사장님의 퉁명스러움이 불친절하게 느껴져서, 슬그머니 가게를 나와버렸었다. 아. 겨울이라고 이렇게 아욱꽃을 꼼꼼하게 싸놓으시다니, 사장님은 겉보기에는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한 분이로구나. 필요한 거 사러 간 것이었으니 그냥 사고 왔었으면 좋았을 것을. 체화되고 내면화된 나의 고객 감성을 많이 반성하였다.
얼마 전 <가장 외로운 선택>(김현수 외 5인, 2022년)이라는 책을 봤다. OECD 국가 중 부동의 악명높은 자살율 1위 한국의 자살에 대해 살핀 사회역학 책이다. 20대 청년층의 자살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긴 한데, 다른 세대의 자살도 다루고 있다. 20대 청년층 전체 사망자의 절반은 자살이 원인이다. 기초연금의 확대 시행 이후 노인 빈곤율이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널리 이미 알려진 바 그대로 한국의 전체 자살자 수 가운데 노인 인구는 압도적이다.
나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율에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근래 몇 년간 20대 여성 자살 증가율은 모든 연령층, 성별 가운데에서 가장 높다. 오랜 시간 여성운동 가까이 혹은 그 언저리에서 유한한 시간과 자원을 써온 나로서는 ‘페미니즘 열풍’ 이면에 놓인 이런 현실이 좀 많이 서글프기도 하고, 이런 실패에 책임감도 느낀다. 위기에 놓인 20대 여성과 관련해 그 배경을 분석한 부분을 <가장 외로운 선택>의 백미로 읽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 어떠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자살하는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 자살자의 전체 직종 가운데서는, 무직자를 제외하고, 서비스 직종이 가장 많다. 서비스직을 대하는 사람(고객)의 태도가 자주 심리적 압박이 될 때가 많다는 사실은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서비스직종은 흔히 ‘비숙련’ 직종 그러니까 해도 해도 숙련이 되지 않는다거나, 애초에 숙련된 기술, 지식 등이 별로 필요 없다고, 오로지 발휘해야 할 직업상의 덕목은 ‘친절’이라고, 은근히(때로 노골적으로) 사람 아래의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숙련이 필요한 감정노동이다. (대면)서비스 관련 일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면 사람을 대할 때 들어가는 ‘친절’ 감정을 훈련하고 통제, 관리하는 데에 들어가는 전문적인 품=정신적 소모를 체감할 것이다.
그런데 직접 대면을 해야하는 판매서비스직만큼, 보이지 않는 대면서비스 업무인 콜센터는 상황이 좋지 않다. 가령 일반 기업에서 전화 응대 업무 콜센터는 따로 떼어내어 외주화, 하청화한 곳이 많다. 그래서 말도 안 될 정도로 저임금이고, 사업자가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가 어렵다. 그럼 누가 콜센터에서 일하는가? 위계적인 노동시장에서 더 취약한 사람이 일한다. 미국의 콜센터는 영어를 쓰는 과거 영국의 피식민지 인도로 외주화된 지 오래고, 한국에서는 학력자본이 없거나 아직 갖추지 못한 이들, 또 경력단절이라 하는 많은 여성들이 콜센터에서 근무한다.
또 과거 MB가 그토록 외치고 추진한 특성화고를 다니다가 현장실습생으로 나온 어린 고등학생들이 근무하기도 한다. 고객의 인터넷 서비스 해지를 막기 위한 전화통화 업무를 하던 콜센터 부서에 일하던 고3 여학생이 저수지에 몸을 던진 사건이 2017년에 있었다. 이 학생이 자살하기 3년 전에도 같은 업무를 하던 30대 여성 팀장이 자살을 했었다. 이 사건을 다룬 르포로는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허환주, 2019년)가 있는데 저자 허환주가 쓴 에필로그가 가슴 먹먹하다. 저자는 여학생이 투신한 저수지와 투신 전마지막으로 들렀던 카페를 찾아간 일화로 에필로그를 썼는데, 쓸쓸한 풍경 묘사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전에 나도 콜센터에서 알바를 해본 적이 있는데, 개인적 느낌으로는 아마도 내가 해본 갖가지 종류의 일 가운데 고된 육체노동이나 머리를 쓰는 연구나 글쓰기 등의 일보다도 훨씬 지치고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여성의 인권을 중시한다는 조직에서조차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피로도가 상당한 업무였다. 예전에 떠밀리다시피-아무도 원치 않는 일이고, 내가 유경험자라는 이유로- 후원 감사 전화를 연달아 백여 명 가까운 사람에게 한 100통 가까이 돌렸던 적이 있었다. 나의 전화를 받은 후원자가 나중에 조직의 리더에게 불평을 했다. “친절하긴 하나 기계적이라서 싫다”, "내가 이렇게나 후원을 하는데 나를 메뉴얼대로 대하는 것 같아 상당히 불쾌하다"고.세월이 꽤 흘렀지만,조직 리더가 나를 보호하기는커녕 “너를 위해, 너의 발전을 위해서 일부러 알려준다”며 친히 토시하나 안 빼고 옮겨 전해준, 나름 품격 있어 보이는 저런 말들이 쉬이 잊혀지지 않는 까닭은, 그때 그런 말들이 상처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마음 어딘가를 갉아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새는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전에 “사랑합니다. 고객님”과 같은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 대신에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따라 고객응대근로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안내멘트가 먼저 나온다. 얼마 전, 한 성숙한 인권단체에서는 누군가 한 두 사람에게 응대 업무를 시키는 대신에, 일하는 모두가 나눠서 후원자를 응대한다고 들었다.
신자유주의 태동(레이거니즘&대처리즘) 이래 40년. 전에 직접고용이 당연했던 많은 업무가 비정규의 저임금 노동으로 내몰리고 또 오직 싼임금으로 막대한 이득을 창출하기 위해 어떤 일이건 외주와 하청은 당연하고, 능력없으면 열악한 노동조건 뭐든 혼자 감내해야 한다고 보는 분위기도 아직 팽배하지만은, 한편으로는, 확실히 세상의 상식은 변해가고 있다.
지난 2022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 3352명. 하루 평균 36.6명. 하루 24시간이니까 나눠보면 1시간당 1.5명. 2시간에 3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국이 이렇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아직 이리 비루하다. 그래도 힘을 내어 바꾸고 싶다. 죽고 싶은 사람 내버려둬야지 어쩔수 있냐고, 못 배운 사람이 하는 일이 따로 있고 엘리트가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관습적으로 생각하고 관습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싶다.단지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낡은 사고방식과 행동으로사는 게 별로 흥미롭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아서다.
작년 마지막달에 새로 임명된 진실화해위원장이 2020년 하이에크소사이어티(현 시장경제학회) 포럼에서 전두환이 지어낸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ㅜㅜ, 그가 과연 하이에크의 책을 한 번 제대로 읽은 적이 있을까 못내 궁금하다. 하이에크는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 주창자로 알려져있고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건 맞지만, 나치즘과 파시즘의 광기가 유럽을 뒤덮을 때 문명으로 자유주의 가치를 지키려 한 그 나름대로 작은 공로도 있는 학자이지, 거짓을 옹호하지는 않았다.
어쨋거나 이리저리 사고회로를 따라온 오늘 나의 결론! 사람이 홀로 목숨을 끊는 사무치게 쓸쓸한 세계가 아니라, 그래도 살자고, 오늘 하루 잘 버티고, 기왕지사 사는 거 재미나게 살자고 손을 내미는 세계를 일구고 싶다.
지난 늦가을의 아욱꽃을 생각하며, 지난주 촛불에서 듣고 공감한 김수근 님의 감동적인 발언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혹시 시간이 나시면, 들어보시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수근 님의 발언은 10분 정도인데, 1:10(1시간 10분째)부터 1:20(1시간 20분째)까지에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