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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호 작가 Jan 02. 2023

등산 속도? 인생 속도?

산을 뛰어 오르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40대 배나온 아재의 부러움 ㅎㅎ

마음이 울적한 날

하늘이 파아랗게 너무 맑은날

아무 할일이 없는 날

아내와 산 데이트 하고 싶은날

며칠간 과음으로 심신에 기름 때가 많이 낀날


나는 청계산에 간다. 


산을 오르며 내 속에 있는 버리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살펴보고 가차 없이 산에 버린다. 산에서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안되지만, 마음속의 쓰레기는 마음껏 버릴수 있다. 왜냐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 속의 욕지꺼리 들을 버리고 오기 딱 좋은 곳이 바로 산이다. 


버려야 또 채울수 있고 살아 갈수 있다. 

입으로 음식을 채워 넣고 뒷구멍으로 비워 내면서 사람은 연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음의 양식도 버리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지 않은 삶은 죽은 삶과 다를바 없다. 


산의 초입은 항상 넓고 완만한 길이다. 어떤 곳은 융단을 깔아 놓은듯 깔게가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산에서 호강할 일이다. 산을 처음 오를때는 누구나 다 같은 속도 같은 표정으로 하나 같이 즐겁다. 하지만 중간 중간 가파른 돌계단을 만날 때면 저마다 오르는 속도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뒤 멀리서 취~취~취~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작게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 알기에 구지 뒤돌아 보지 않았지만 내 신경은 온통 취~취~취~소리에 한동안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리가 내 귓등을 직격으로 때리고 나는 좁은 길 한편에 멈춰 섰다. 오르막 중간에 섰다가 다시 출발 하는건 왠만해서는 하면 안된다. 올라가는 템포를 잃게 되고 이것은 쉬는 것도 아니고 안쉬는 것도 아니고 전체 등반 흐름을 끊는 행위라 그러하다. 그리고, 항상 오르막을 자신의 속도로 치고 오르고 나면 등반자를 위한 소담한 쉼터가 있게 마련이다. 거기에서 쉬어야 초보 등반가 딱지를 땔수 있다 생각한다. (지극히 초보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ㅎㅎ)


아무튼 멈춰선 내 왼편으로 나이키 츄리닝 옷을 입은 사내가 뛰어 올라 간다. 등산화도 등산복도 물통도 하나 없다. 내 옆을 쌩~하고 지나가는 그가 내눈엔 쌩으로 등산하는 것 같아 보인다. 겉으론 "저~사내 대단하다"하지만 "속으로 저자식 왜 저리 급하게 올라가는 거야~!" 산에 쓰레기 버리러 왔다가 스스로 만든 쓰레기 하나를 마음속에 다시 던져 넣는다. 참 한심하다. 


오르막을 다 올라 의자가 마련된 곳에 마치 내가 이산의 주인이라도 된것 마냥 자리에 앉는다. 어디 말 붙일 사람도 없고 괜히 왔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문득 연금술사 책을 읽고 호기심이 생긴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오른다. 한달이상 예전 카톡릭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을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언가 때문에 걷는 다던데 나도 언젠가는 가고 싶다. 산에 오르는게 아니라 끝도 없는 길을 걷는 것이지만, 거기에도 마치 속도 경쟁하듯 걷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빠른놈은 빠르고 느린놈은 느리다. 남의 속도에 신경을 쓰게 되면 자신의 속도를 잃게 마련이고 남의 속도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 한다. 


2022년 한해동안 편히 잘 쉬었다. 하고 싶은것 하고, 놀고 싶은것 놀고, 먹고 싶은것 먹으며 한해 잘 지냈다. 2023년 한해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한해가 되도록 해보겠다. 나의 속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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